청소년들 사이의 ‘혐오’가 연일 문제가 되고 있다. 혐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사회 곳곳에서 확산되어 왔다. 다만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문화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2010년대 초반에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일베식 혐오는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기초한 자기 정당화 논리와 목적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형식적인 경쟁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평등이나 배려라는 이름으로 지원하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복지나 평등정책의 대상자들을 ‘무임승차자’라며 비난했다.
여성은 과거의 차별을 빌미로 부당한 특혜를 누리는 집단으로, 5·18 유공자들은 공무원 시험 등에서 특혜를 받는 무임승차자로, 민주화운동 세력은 온갖 수혜를 누리며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위선자로 간주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불공정한 사회를 고발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로 여겼으며, 기성세대의 위선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갖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어떻게 저렇게 노골적으로 약자를 혐오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혐오를 혐오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기 정당화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정성 담론’에서 ‘의도 없는 유희’로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혐오 놀이는 공정성 같은 거창한 이념적 목표는 제거된 유희나 놀이에 가깝다. 그들에게 일베식 용어는 정치적·역사적 맥락이나 목적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는 유행어일 뿐이다. 특정한 용어의 어원이나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모른 채, 그냥 재미로, ‘친구들이 다 쓰니까’ 쓰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엄한 어조로 그 말이 얼마나 나쁜지 가르치거나 윤리적 태도만을 강변해서는 설득하기 어렵다. 상대를 언어적으로 자극하는 ‘긁는 문화’에 관용적인 또래 분위기까지 더해져, "장난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며 기성세대에 거부감만 갖기 십상이다.
뚜렷한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별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놀이’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훨씬 쉽게 확산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기도 하다. 이런 식의 놀이에 익숙해지면 누군가를 조롱하는 문화에 무감각해진다. 조롱이 일상이 된 문화에서는 특정 집단을 향한 ‘의도적인 혐오’나 ‘목적의식적인 공격’조차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의도적인 혐오 선동가들에게는 든든한 토양을 제공하는 셈이다. 또한, 조롱에 악의적인 의도가 없다고 해서 그 조롱이 낳는 부정적인 효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도 없는 놀이’라는 핑계가 혐오의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굴레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놓고 현장의 교사들과 꽤 오랜 시간 다양한 자리에서 토론을 나누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전히 교육의 힘을 믿는 교사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분들이 많았다. 인터넷의 혐오문화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학교 공간에서만큼은 혐오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닌 말로, 참혹한 국가폭력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도,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앞에 두고 ‘조롱해도 괜찮다’고 태연히 말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러한 교육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진짜 걸림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굴레 때문에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예컨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조롱·혐오 표현을 바로잡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토론에 부치려 하면, 일부 학부모들이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며 거세게 항의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학교 현장의 과잉 민원 문제와도 맥을 같이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코 ‘중립성’의 잣대를 들이댈 영역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교육의 중립성을 명시한 취지는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교육기본법 제6조)하지 말라는 것이지, 판결과 법률을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까지 언급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신군부 세력에 대한 법원의 확정판결로 확인된 역사적 진실이며, 법률(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헌정질서 파괴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으로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혐오 표현의 문제를 짚는 것은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공교육 본연의 임무인 인권·민주주의 가치 교육이다.
혐오에 대항하는 교육을 위하여
교육당국의 단호하고 책임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혐오에 단호히 대응하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호장치를 강구하고, 교사들이 가르쳐야 할 것을 소신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안전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교육부·교육청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 관리자 책임 강화, 법률 지원, 혐오표현과 현대사 관련 교육자료의 공식 제공 등의 조치들이 시급하다.
교육에 대해 말할 때마다 자칫 모든 사회 문제를 교육의 책임으로 돌리는 ‘교육만능주의’로 비칠까 조심스럽다. 사회 구조적인 책임이 더 큰 문제를 교육에 떠넘기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교육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청소년 혐오 문제만큼은 교육의 역할이 분명하고도 결정적이다. 온라인의 막대한 영향력에 조금이라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오프라인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2년에 걸친 초·중·고 교육 기간은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존중과 배려의 윤리, 인권과 민주주의의 감각을 배울 수 있도록 사회가 공적으로 보장하는 거의 마지막 기회다. 혐오문화의 확산을 막고 건강한 시민을 길러낼 이 기간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