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수 교사의 마지막 수업에 참여한 1989년 제자들 ©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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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제자들이 마지막 수업에 함께하다
8월 27일, 창밖으로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찬 성남시의 한 중학교 교실. 이 교실에는 매우 특별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실 뒤편에는 중년 남성 5명이 수업을 참관하고 있고, 벽면에는 ‘38년 참교육의 여정, 박동수 선생님 마지막 수업 및 은퇴기념식’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 수업은 8월 31일자로 정년을 맞이하는 박동수 교사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 자리에는 박 교사가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이유로 해직 당할 당시 풍생고등학교 반장이었던 김동엽 씨와 박 교사가 학교 밖 활동으로 지도하던 풍물동아리 ‘해동머리’의 제자 4명도 함께 자리했다. 김동엽 씨는 1989년 당시 박 교사의 해직 탄압에 항의하며 풍생고에서 징계 철회 집회를 주도했던 제자이다. 10대의 제자, 20대의 신규교사로 끈끈하게 만났던 이들이 35년이 흘러 다시 교실에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했다.
▲ 박동수 교사의 마지막 수업에서 35년 제자와 현재의 제자가 함께 만났다. ©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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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작성한 롤링 페이퍼 © 박동수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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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사는 ‘직업인으로서의 권리’를 마지막 수업 주제로 삼고,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할 경우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설명했다. 박 교사는 모든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등 각종 법률에 의해 보호받고, 권리를 침해 당했을 경우에는 관렵법의 절차에 따라 도움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퇴임을 앞둔 마지막 수업인 만큼 수업 후반 15분은 학생들이 박 교사에게 전할 롤링 페이퍼를 작성할 시간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알록달록 색연필로 박 교사의 캐리커쳐를 그리거나,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애틋한 마음을 종이 위에 꼭꼭 눌러 담아 글로 표현했다. 교실에는 전교조 노래패 연합의 ‘함께하는 세상’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수업 후에는 과거와 현재의 제자들이 박 교사를 가운데 두고 35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같은 제자로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 1990년 '스승의 날' 풍생고 모습. 풍생고 학생회에서 1989년 해직된 박동수 교사를 학교로 초대해 '스승의 날' 행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학교 측은 교문을 막고 박 교사의 출입을 막았다. 교문을 들어서지 못한 박 교사의 손을 제자인 김동엽 씨가 잡고 교문 앞을 걸어나오고 있다. © 박동수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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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년이 흐른 뒤 다시 함께 선 박동수 교사와 제자인 김동엽 씨 ©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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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과 은퇴기념식을 주도적으로 준비한 김동엽 씨에게 박 교사를 잊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선생님과 학교에서 지낸 시간은 불과 고등학교 2학년 한 학기에 불과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등의 제가 갖고 있던 세속적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으셨죠. 그냥 공부만 하는 학생에서 사회와 역사, 정의, 민주적인 삶 이런 것들을 대화를 통해서 많이 깨치게 하셨습니다”라며 박 교사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이야기했다.
김동엽 씨는 박 교사 해직 이후 학교에서 낙인이 찍히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김동엽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성남에서 활발히 청년활동과 지역운동을 하며 박 교사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긍정적인 사회운동으로 십분 전환하였고, 현재도 지역운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박동수 교사
마지막 수업 후에는 인근 지역자활센터로 자리를 옮겨 은퇴기념식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가족, 제자, 전교조 및 지역사회 활동가들 30여 명이 자리했다. 박 교사가 전교조와 지역 연대활동에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지를 참석 인물들의 면면을 보고도 판단할 수 있었다.
전현철 초대 성남지회장은 축사에서 “박동수 선생님은 운동의 지속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시다. 전교조 역사에서도 선두에 서는 선생님이셨다.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하며 동심을 갖고 있는 선생님”이라며 박 교사의 교직 생애를 되짚었다.
▲ '스승의 은혜'를 함께 부르는 참석자들 ©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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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사는 은퇴기념식 마지막 발언에서 “땀을 흘리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줄곧 고민했습니다. 거리의 교사로 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동지들로부터 얻었습니다”라며 끈끈한 동지애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이 빚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교사 운동은 마무리하지만 제가 가는 길이 조금 서툴더라도 함께하는 동지들이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앞으로 교사로 지내며 하지 못했던 다양한 지역운동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박 교사는 역사를 거스르며 교육과 민주화를 퇴행시키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주는 퇴직교원 포상훈장은 받을 수 없다며 포기 서약서를 제출하고, 8월 말을 끝으로 38년간의 교직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 은퇴기념식에 함께한 참석자들 ©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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