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죽음의 현장실습 폐지 촉구 및 범법 교육부장관 고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학선 씨 (중앙) © 이영주 서울지부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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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교육부 장관님
대구에서 올라온 이학선입니다. 저는 2018년에 경북기계공고를 졸업했습니다. 현장실습도 하고, 산업기능요원도 마쳤습니다.
뉴스를 보면 저를 비롯한 ‘실업계’ 학생들의 이야기는 단 한가지 소식으로만 세상에 알려집니다. 현장실습생의 죽음입니다. 죽어서야 겨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현실입니다. 입시철마다 정시가 공정하냐, 수시가 공정하냐 온 나라가 떠들썩한 모습과 참 비교됩니다.
사고가 터지고 교육부가 내놓는 대책이라는 건 늘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나온 대책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까? 왜 언제나 대책은 무마됩니까? ‘취업률’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다면서, 학생도 학교도 학부모도 취업을 원한다는 식입니다. 여야도 정권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동안 또래 친구들은 심하면 죽거나 다치고, 모두가 어려움과 두려움을 감내해 왔습니다.
일부 학생과 졸업생이 현장실습 폐지를 반대하고 있긴 합니다. 교육부는 그런 여론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들이 그런 현장실습에 가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는 거겠습니까? 위험하더라도 굶을 수 없다는 호소입니다. ‘폐지가 아니라 개선’ 또는 제대로 된 실습 교육을 받고 싶다는 것도 결국 기술을 익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장실습에 가지 않으면 알바를 해야 한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불안정한 노동 외에 내 삶을 지탱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발 딛고 설 공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주호 장관님, 치사하게 그 불안 뒤에 숨으실 겁니까? 정말로 학생들이 취업을 원하니까, 현장실습 계속 강행하겠다고 말할 겁니까. 계속 그렇게 무마하실 겁니까?
장관님. 우리의 요구가 취업이라는 건 틀렸습니다. 우리는 나이에 맞지 않게 그저 일찍이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좋은 삶을 원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원합니다. 일찍부터 근근이 살아남는 법 말고, 꿈의 넓이를 늘리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졸업한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후배들의 앞길은 좀 달라야 하는거 아닙니까?
코넬대학교 나오신 이주호 장관님. 교육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양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펼칠 수 있게 지도를 쥐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의 직업교육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제대로 할 수는 있는 건지 의문까지 듭니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이 정말 교육입니까?
값싼 노동에 불과합니다.
내 밥벌이 내가 못하면 인생 무너질 것 같다고. 그렇게 일찍 철든 학생들을 ‘나쁜 일자리’에 던져넣는 일입니다. 제가 처음 공장에 갔을 때, 옆 부서 대리님이 어디 2만 원만 대신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넣고보니 불법 토토 사이트였습니다. 단속 당할까봐 고등학생이던 저한테 시켰습니다.
이게 교육입니까?
실습이 아무리 그 모양이라도 뛰쳐나오면 학교에선 패배자가 됩니다. 졸업을 하고도 참고 견디며 계속 일하면 시간은 속절없이 흐릅니다. 남학생이라면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몇 년씩 눈치보며 일하기도 합니다. 배운 대로 성실했을 뿐인데, 지나고 보면 청춘도, 스펙도 제대로 써내려 간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던져진 대로 살게 되는, 이거야말로 불공정 아닙니까?
학생 때 운이 좋았으면 다릅니까?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 가도 백혈병에 걸려 돌아오는 현실입니다. 바늘구멍을 통과해도 이런데, 아니면 오죽하겠습니까.
다들 잘 아시는 종이공장 소년의 메모장을 보고 그날 새벽에 잠을 못 잤습니다. 어린 글씨로, 목표와 인생계획이 빼곡하게 써 있었습니다. 그 순진한 바람대로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온다고 진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당연한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내 자식이 죽거나 다쳐오면 그 부모는 견딜 수 없이 문드러집니다. 일터에서 그렇게 된 자식을 보면서 하나같이 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 미안하다고 가슴을 쥐어뜯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퇴직금 50억 원을 선사하고, 또 어떤 부모는 세금조차 내지 않으면서 아파트며 주식을 물려줍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죽거나 다치고,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일이 어제오늘 일입니까. 근데 왜 반복됩니까. 왜 바뀌지 않습니까. 높으신 분들의 자식은 결코 겪지 않을 일이라서, 다른 세상의 일이라 그렇다 하면 틀린 말입니까? 대학입시는 계급을 결정하는 사건이라 매년 그렇게 시끄러운데, 왜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습니까.
이미 계급이 정해져 있어 그렇습니까?
현장실습 문제 복잡합니다. 임금격차부터 비정규직 문제까지 안 얽혀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손대기 싫으시겠죠. 얼마나 골이 아프겠습니까. 근데 그렇다고 안 하실 겁니까. 계속 선생님이랑 애들한테 일자리 문제 떠넘길 겁니까. 직업계고를 언제까지 인력사무소 취급할 겁니까. 오늘 이 기자회견은 장관님 고발하는 기자회견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니까 고발당하는 겁니다.
청사에 계신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 대통령께서 장관님께서 저보다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이 좋든 나쁘든. 어떤 경우에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확충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거. 너무 당연한 정부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나서지 않는 건 결국 태도의 문제입니다. 뜯어고치려면 시끄럽고 복잡해서 묻어두겠다는 계산입니다.
이게 안정된 사회입니까?
오늘 할 말 준비하던 중에 재밌는 짤을 봤습니다. '사회초년생 신종 유괴 현장'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도 인상깊어서 얘기하자면, 웬 아저씨가 꿈과 미래가 있는 회사로 가자며 손목을 낚아채 데리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앞 봉고차에는 '저렴한 노예 상시채용'이란 글자가 써붙어 있었습니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림 그린 사람이 그 아저씨 주 수입원은 정부지원사업이라 하더라고요. 정책이 어떻길래, 그 아저씨는 나라가 던져주는 청년들 피빨아서 먹고 사는 겁니까. 제대로 된 일터를 만들기보다, 블랙기업에서 발 못 빼게 하는 게 여야없이 이어지는 소위 '청년정책' 아닙니까.
옳은 것과 쉬운 것이 있으면 옳은 것을 골라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받지 않는 진짜 안정은 옳지만 어렵고, 시끄러워 묻어두는 가짜 안정은 틀렸지만 쉽습니다. 현장실습 폐지는 진짜 안정과 옳은 변화의 시작입니다.
끝으로 오늘의 고발은 장관님이란 사람이 미워서 하는 게 아닙니다. 방향을 바로잡고 태도를 바꾸실 용기만 있다면, 기꺼이 돕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게 애국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자리 초대해주시고, 긴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