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일 있겠냐마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참 힘든 것이다.”
평생 농군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나보다 교직의 특성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특히, 학기 말이 되면 앞만 보고 달려온 학생도 교사도 지쳐 풀썩 주저앉고 싶어지곤 한다. 그래서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지고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빈번해지는 것도 이 시기다. 학생에게나 교사에게나 쉼과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바깥 사람들 눈에는 하나로 보이겠지만 교사들이 방학을 보내는 모습은 다양하다. 방학 중에도 계속 교육활동을 하거나 폐지된(?) 일직성 근무를 위해 정상 출근하거나, 생활기록부 작성 등의 업무를 하거나, 연수를 듣기 위해 출장을 가거나, 휴식을 위해 연가를 쓰기도 한다.
문제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연수(이하 41조 연수)다. 해마다 방학이 다가오면 41조 연수 관련 문의가 들어온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연수의 근거
‘41조 연수’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규정되어 있어 나이스 복무 상신 사유로 기재된다. 해당 조항에 의하면 ‘교원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소속 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 연수기관이나 근무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 1953년 교육공무원법과 함께 만들어진 이 조항은 문구가 일부 수정되었지만,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41조 연수’와 ‘연가’의 관계
41조 연수는 교사의 연가 사용 제한, 연가 보상비 미지급, 연가 저축 미적용, 통상 5일간의 학습휴가, 퇴직 전 1년 이내의 공로연수 불가의 이유로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불합리하다.
연가는 교원의 휴식권 등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이 목적이고, 공로연수는 퇴직 후 사회 적응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41조 연수는 교사로서의 전문성 함양이 기본 목적이다. 헌법의 교육적 권리와 의무를 구체화한 법률이 교육기본법인데 동법 제14조에 교사는 ‘교육자로서 품성과 자질(전문성)을 향상시킬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결국, 전문성 함양을 위한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연수는 교사의 법적 의무와 관련된 조항이기도 한 것이다.
‘41조 연수’ 불허(?)와 ‘일직성 근무’
학교장의 재량은 법률에 적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재량권이 주어진 목적과 한계를 벗어나면 재량권 일탈과 남용이 된다. 교사의 법적 직무는 교육활동이다. 이를 벗어나 학생 교육이 아닌 민원 응대 및 단순 문서처리 등을 위해 학생이 없는 학교에 출근하도록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오히려 법률에서 명시한 대로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교사가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전문성을 함양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기회를 앞장서서 보장해야 한다. 전교조가 12년의 싸움 끝에 일직성 근무를 폐지하는 단협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다수의 전교조 지부와 시도교육청이 맺은 단체협약에는 41조 연수를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승인’ 사항이라는 명목으로 특별한 사유 없이 일직성 근무 수행을 위해 41조 연수 불허 운운하는 것은 학교장의 재량권 범위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단협 위반이다.
여담이지만 ‘승인’과 ‘허가’는 법률에서 구분해서 사용한다. ‘허가’는 일반적으로 금지된 행위를 특정 상황에서 금지를 해제하는 것이고 ‘승인’은 일정한 행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41조 연수는 승인 사항이지 허가 사항이 아니다. 학교장의 승인권은 신청 절차상 하자가 있거나 ‘수업에 지장을 주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41조 연수 신청 시 상세 주소 입력?
간혹 학교에서 41조 연수를 신청할 때 구체적인 주소를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주소지를 벗어나 외출할 때는 조퇴나 외출을 쓰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위반하면 ‘근무지 이탈’이라는 무서운 말도 덧붙이기도 한다. 지부에서 교권 관련 일을 담당한 근 몇 년 동안 해를 거르지 않고 들어오는 질문이다.
이러한 요구를 하는 학교장이 있다면 법 조항을 점독(구두점까지 읽는 것)하도록 권하고 싶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서는 학교나 연수기관을 제외한 장소에서 연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해당 법의 취지가 ‘심도 있고 폭넓은 연수가 가능하도록 연수 장소의 제한을 열어주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법령과 규칙 어디에도 상세 주소를 적도록 제한하는 내용은 없다.
주 단위로 나누어 상신?
주 단위로 상신하여 결재를 득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굳이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 없다. 나이스에서 ‘요일 반복’ 기능을 활용하면 방학 기간 전체로 상신할 수 있고 ‘특정일 제외하기’나 ‘특정일 시간 조정하기’ 등이 가능하다.
국외 여행과 41조 연수
관련 법의 취지로 본다면 연수 장소가 국내로 한정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41조 연수를 활용한 국외 연수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수의 지역은 전교조 각 지부와 시도교육청의 단체협약으로 사전 계획서만 제출하면 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절차는 삭제되었다. 물론 연가를 사용하면 계획서 제출도 하지 않는다.
41조 연수는 방학에만 가능?
모든 교육청은 41조 연수를 휴업일이나 방학에만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교육과학기술부 시절이던 2012년, 교육부에서 만든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따른 근무지외 연수의 업무처리 요령」이다.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국장에 따르면 (->관련 기사) 교육부에 확인한 결과 이 문서는 여러 문제가 있어 폐기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사문화된 문서를 기반으로 교육청에서는 41조 연수를 방학 및 휴업일로 한정하고 있다. 이후 각 지부에서 단협 등을 통해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교육 당국에 바란다
작년(2023년) 통계에 따르면 경력 20년 이상 교사 명예퇴직은 16년 전보다 7.5배가 증가했다. 5년 미만 저경력 교사 퇴직도 2년 새 2배 증가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서이초 교사 순직 1주기를 앞두고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지만 몇 년 전부터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 지도와 학부모 민원으로 인한 어려움이 임계치에 다다른 듯한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일에는 노동자의 기본권인 연차휴가(연가)마저 ‘승인’이 아니라 ‘허가’에 준하는 통제를 받고 있다. 꼭 누가 강제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사 스스로 견디고 버티는 경우가 많다.
‘41조 연수’를 통해서라도 교사들이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자기 연수에 매진할 수 있기를 그래서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마음의 건강을 회복한 교사가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니 교육청과 학교장은 법률에도 없는 온갖 제한 조건을 만들어 붙일 생각 말고 ‘41조 연수’를 확대 적용할 방안부터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