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선생이라 좋았다.
아이들과 책으로 만나는 일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학교가 아닌 시골에서 책방지기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작은 한옥 마당 모퉁이에서 사시사철 꽃을 가꾸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은퇴 후에는 꽃을 가꾸며 살겠다는 소망으로 시골 땅을 구입했다. 그 땅에서 7년 정도 주말 텃밭을 가꾸며 지내던 중 뜻밖에 뇌 수술을 받게 되었고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교직에서 퇴임하게 되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서 전교조 활동이나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모임 활동을 좋아했다. 그런데 학교로 출근할 수 없다면 내가 있는 자리에 책과 사람을 모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책방카페 바이허니>가 만들어졌다.
시골에 책방이라니? 대부분의 지인들은 안될 거라고, 심사숙고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후배교사 몇은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도와주기도 했다. 선생님이라면 가능하고, 선생님이니까 해야 한다고. 객관적 근거는 당연히 없었다. 그냥 자신들의 꿈도 나에게 슬쩍 얹어서 팍팍한 학교생활 외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고싶었다는 고백을 나중에 들었다.
‘책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을 시작했다. 나의 소망에 친구들의 소망까지 버무려 담다 보니 설계 회의만 6개월이 걸렸다. 책을 위한 공간 한 층, 담소를 위한 공간 한 층, 생활을 위한 주택 한 층. 독서모임과 소규모 강좌를 위한 별도의 공간. 작가 초청 강연회를 할 공간. 사시사철 꽃이 피어날 정원 등. 자그마한 터에서 하고 싶은 일은 어찌 그다지도 많은지 설계자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는데,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그 많은 소망을 담고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롭게 ‘책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 책방의 책들은 대체로 표지가 보이도록 전시한다. ©박태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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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든 책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책방과 카페를 겸하고 있으니 커피 마시러 왔던 분이 책을 사기도 하고, 책을 보러 오신 분이 차를 드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책방 바이허니의 서가는 대체로 표지 앞면이 보이게 전시한다. 책의 표지는 책에서 전하고 싶은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실제로 표지의 매력에 끌려 책을 집어 드는 독자분들이 제법 많다.
바이허니를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전·현직 교사들이다. 선배교사가 운영하는 공간이니 도와주고 싶어서도 오고, 와보니 언니 집처럼 편안하고 재밌어서 친구랑 손잡고 또 찾아오기도 하고 학교의 문학답사 기획으로 학생들과 방문하기도 한다.
▲ 책방 바이허니에서는 4개의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 박태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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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바이허니는 ‘꼰대탈출 아저씨 독서클럽’을 비롯해 4개의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평일 낮에 모이는 ‘줌마 독서클럽’, 평일 저녁에 직장인들의 모임 ‘북테라피’, 금요일 오전에 모이는 ‘시읽기 모임’. 책방 바이허니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6년째 책방 바이허니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있는 독서모임이다.
책방 바이허니는 지역서점이다. 지역의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고 깊어지고 싶어서 책방 한쪽엔 울산 작가 코너를 따로 두고 울산 작가들이 출판한 책을 따로 전시하고 있다. 또 울산작가들의 신간이 나오면 책방 네트워크를 통해 홍보하고 작가초청 북토크도 진행한다.
▲ 친구인 강미희(전교조 퇴직교사. 필명 강미) 교사와 함께 쓴 책방 운영기 <동네책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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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바이허니에서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성장한다.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각자의 재주를 내어놓고 강좌를 개설하면 그 강좌의 수강생이 또 다른 재주로 다른 강좌를 개설하여 강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진행되는 강좌가 커피인문학교실, 주역강좌, 타로강좌, 글쓰기 교실, 사진교실, 어반스케치 등등 다양한 강좌가 이어진다.
책방 바이허니 한쪽엔 작은 갤러리를 두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의 귀한 작품들이 전시 기회를 얻지 못해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들이 너무도 많아서 무료로 빌려드리는데 유화, 수채화, 어반스케치, 민화, 사진, 솟대, 토우, 자수작품 등 참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면서 바이허니 공간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덕을 보고 있다.
책방 바이허니가 위치한 곳은 울산과 경주의 경계에 있는 울주군 두동면이다. 두 도시 어디서든 중심에서 떨어진 오지마을이다 보니 인구가 적고 공공 문화시설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신라시대의 국보 반구대암각화, 치산서원 등 유적지가 보존되어 있고 자연환경이 쾌적하여 은퇴한 세대들이 많이 이주해오고 있는 아름다운 전원마을이다.
다행히 울주군에서 민간시설을 이용한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정책 –문화 이음 제도-을 펼치고 있어 책방 바이허니도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바이허니의 소규모 모임공간이 인근학교 학부모모임, 우쿨렐레 모임, 요가 연습장, 꽃꽂이 교실, 정원음악회 등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책방지기의 삶이 지역에 스며들고 있다.
내 인생계획에 책방지기는 없었지만, 세상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다만 내 앞에 닥친 일에 기꺼이 순응하고 맞추어 살아갈밖에. 오늘도 새로나온 책 중에 어떤 책을 바이허니에 들여놓을까, 어떤 책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할까 ...... 살펴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