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가성비'만 따지는 유보통합, 교육·보육 다 망친다!

이혜정 교사 | 기사입력 2024/06/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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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가성비'만 따지는 유보통합, 교육·보육 다 망친다!
‘유보통합 일방적 추진 규탄’ 교사결의대회 현장발언 ②
이혜정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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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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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통합 일방적 추진 규탄’ 교사결의대회 현장발언 ②

▲ 이혜정 교사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아니죠. 안녕하지 못하셔서 여기에 모이셨죠? 저도 안녕하지 못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근무하는 공립유치원 교사 이혜정입니다.

  

선생님들. 지금 공립유치원 교사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실이 부족해서 방과후 겸용 교실을 사용하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침 돌봄·저녁 돌봄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나이스에 유아 학비, 채용 업무, 방과후 업무의 종류만 나열하는 것으로도 발언 시간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업무를 하느라 1, 2학급 병설 유치원에서는 업무시간에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은 사치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런 유치원 교사들에게 단설유치원은 교무실 공간이 부족하다며 교사 책상도 두 명이 한 개로 나눠 쓰라고 하는 곳이 허다합니다. 그냥 매일매일의 일상이 교권 침해의 현장입니다. 유치원은 지금도 이렇게 열악한데 지난해 유보통합을 밀어붙이며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보육 예산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는 방안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과 보육 모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유보통합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교육과 보육에 대한 투자 모두를 줄여 구조조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한 마디로 '가성비 유보통합', '기분내기식 유보통합'입니다. 이름은 통합인데, 교육예산은 그대로라니 기존의 유초중고 교육과 보육, 모두를 망치는 것 아닙니까?

  

어린이들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존중하지 않고, 교사가 본연의 역할인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가 저출생 타령을 하고, 예산도 주지 않으면서 유보통합을 하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님, 이주호 교육부 장관님! 저는 일개 소시민이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유아교육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바닥을 친 출생률은 어떻게 올리고 양질의 유보통합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교원 양성체계나 교육과정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의견수렴은 물론 사회적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유보통합 모델학교 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보통합 모델학교 사업에만 120억을 쏟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 모델학교는 어떤 모델입니까? 어떤 내용과 형태로 운영되는지 발표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모델학교 할 거야, 120억 쓸 거야"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 행정입니까?

  

만약 0~5세 영유아를 한 기관에 모아 운영하는 형태라면 그것은 그냥 어린이집 아닙니까? 모델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의 자격은 무엇인가요? 모델학교는 어떤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나요? 교육부의 속 시원한 답변이 듣고 싶습니다.

 

저는 너무 걱정됩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가성비 유보통합, 깜깜이 모델학교 지정이 영아 보육과 유아교육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결국 우리 어린이들을 하루 종일 기관에 머물게 하면서 보호자의 초인종 소리만 기다리는 하루를 보내게 하고, 장시간 노동에 지친 교사들은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들지는 않을지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선생님들 역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걱정이 정말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많이 슬프고 지칩니다. 저는 유아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너무 좋아 뒤늦게 교사가 되었습니다. 유아들이 집에서는 밤에 잠만 겨우 자고, 방학도 없이 365일 하루 종일 기관에 머물다가는 유아기부터 피로를 느끼며 자라게 될 것 같아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합니다.

  

하지만 미안해하고 걱정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에 우리가 오늘 여기에 이렇게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긍정적 생각’을 뜻하는 ‘원영적 사고’라는 말이 유행했지요.

  

저는 이 유보통합 상황을 걱정만 하지 않고, 긍정적인 ‘원영적 사고(긍정적 사고)’를 통해 함께 힘을 모으고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윤석열 정부 덕분에 집회하느라 서울 구경을 하니까 완전 럭키 전교조잖아! 교육부 덕분에 화가 나서 저혈압이 치료되었네! 완전 럭키 교사잖아!

 

저는 극 내향형인데 앞에 나와 발언하느라 1년 치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습니다. 덕분에 당분간 에너지가 없어서 푹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전 럭키 혜정이'가 됐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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