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칼럼] 갑질 조장하는 ‘을질’ 방지 조례안

김민석 · 전교조 교권상담국장 | 기사입력 2024/06/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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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칼럼] 갑질 조장하는 ‘을질’ 방지 조례안
갑질 당해 신고해도 솜방망이 처벌만 하는 현실
갑질 문화 해소해야 할 의회가 도리어 갑질 조장
김민석 · 전교조 교권상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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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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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당해 신고해도 솜방망이 처벌만 하는 현실
갑질 문화 해소해야 할 의회가 도리어 갑질 조장

▲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국장  

 

깜짝 등장한 ‘을질’이라는 말

6월 12일, 충청남도 의회 교육위원회는 「충청남도교육청 갑질, 을질 및 직장 내 괴롭힘 예방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교육기관에서의 ‘을질’을 규정한 최초의 조례안이다.

 

놀랍다. 놀라운 일이다. 심박수 한껏 올려 준 충남도의회와 교육청에 박수를 보낸다. 의회와 교육청이 나서 ‘을질’ 근절 조례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을질’에 시달리셨다면 충남의 교장선생님께 깊은 위로를 보낸다.

 

‘갑질’! 내가 있는 상담실의 전화 너머 가장 많이 들려오는 말이다. 그런데, 깜짝 등장한 ‘을질’,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실효성 없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2014년, 모 항공사 부사장이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유턴시킨 뒤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 강요 등이 밝혀지면서 직장 내 ‘갑질’ 논란이 촉발했다.

 

갑질, 을질은 법적 용어는 아니다. 현행 법률에서는 갑질, 을질 개념을 정의하고 있지 않다. 일상에서 직위 또는 관계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흔히 ‘갑질’이라 부르고 있다.

 

2019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알게 되면 누구나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신고받은 사용자는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도록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실효성은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용자가 법률을 위반해도 처벌 조항이 없다. 위반한 사용자에게는 벌금이 아닌 1,000만 원 이하 과태료 부과가 전부이다.

 

형식적 수준의 갑질 처벌

학교와 같은 공공 기관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의 사각지대이다. '공무원에게는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정부의 해석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법 등 법률에서 ‘특별히 정한 규정이 없는 경우 공무원에게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라는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나는 잘못된 해석이다.

 

2019년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하는 대신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관별 갑질 신고 센터를 설치ㆍ운영하도록 했다. 2021년에는 공무원 징계 기준을 개정하여 갑질 행위를 국가공무원법에서 정한 ‘품위 유지 위반’으로 징계할 수 있도록 했다.

 

법률이 아닌 인사혁신처 갑질 근절 가이드 라인에 따라 17개 시도교육청은 갑질신고센터를 설치ㆍ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형식적 운영 수준이다.

 

갑질 신고해도 늑장과 솜방망이 처벌

지난 1월 4일 서울의 모 초등학교 교장이 흥분한 상태로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다짜고짜 “쌍놈 새끼”, “건방진 놈 새끼”, “나쁜 새끼” 등의 폭언을 교사에게 쏟아부었다. 흥분한 폭언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다. 기관의 장인 학교장의 폭언, 폭행은 말할 수 없는 충격이다. 교사는 불안, 우울, 수치감, 불면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은 아직도 학교장의 갑질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있다. 현재까지 어떠한 행정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사가 학교장에게 그렇게 심한 욕설과 폭력적 행동을 했다면 즉시 직위해제 후 품위유지 위반으로 중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학교장 보호 등의 명분으로 해당 교사는 다른 학교로 인사조치 되었을 것이다.

 

학교장의 폭언은 인사혁신처가 제시한 여덟 가지 갑질 유형 중 하나인 ‘비인격적 대우’에 해당한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갑질 판단에 수개월의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서울특별시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의 깊은 노고에 존경심을 표한다. 폭언 녹음 파일이 없었다면 기관장을 무고한 품위유지 위반 혐의로 교사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을 것이라는 현장 교사의 한숨이 귓가에 맴돈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의 내용이다. ‘복종의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공공 기관은 위계질서가 강한 기관이다. 더 나아가 초ㆍ중등교육법에서는 학교장에게 교직원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교장의 정당한 지도, 감독에 불응하면 징계 사유인 것이다.

 

지방자치법 위반하는 충남도의회

충청남도 조례안에서는 ‘정당한 업무지시나 요구 등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정당한 지시를 하는 교직원의 행위를 갑질 또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 부당하게 주장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을질’이라 정의했다. 조사 후 행위자에 대한 징계, 근무지 변경 등 조치를 교육감의 의무로 규정했다.

 

천천히 읽어 보시라. 숨은 의도가 보인다. 관리자에 대한 ‘갑질’ 신고, ‘을질’로 되치기당할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경고로 들린다.

 

학교장의 ‘정당한 업무지시나 요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학교장은 지도·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인격적 리더십으로 교직원을 변화시키는 학교장이 있지만, 주의 또는 경고장을 발부하는 학교장이 있다. 3회 이상의 경고장이면 학교장 직권 내신이 가능하다는 위협적 권력을 한껏 뽐내는 유형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조례는 지방정부의 고유사무에 한정해 제정할 수 있다. 법령의 위임이 없다면 중앙정부 사무를 조례로 정할 수 없다. 공무원의 징계에 관한 사항은 지방정부의 자치사무가 아니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에서 조례로 위임한 규정도 없다. 지방자치법 위반이다.

 

교육기관의 갑질 문화 해소에 앞장서야 할 충남 교육청과 충남 의회가 사실상 ‘갑질’을 조장하는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것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 것이다.

 

당장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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