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칼럼] 학교는 시민을 기르는가, 신민을 기르는가

조지훈 교사 | 기사입력 2024/06/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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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칼럼] 학교는 시민을 기르는가, 신민을 기르는가
『학생자치, 민주시민교육의 마중물』(임정훈)에서 찾은 학생자치 개선방향
조지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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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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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치, 민주시민교육의 마중물』(임정훈)에서 찾은 학생자치 개선방향

▲ 조지훈 교사

 

사라지는 '민주시민교육과'
지난 4월 총선 다음 날 아침, 5학년 학생들과 인사를 하다 자연스레 선거 결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학생들이 정당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낙동강 벨트’나 ‘출구조사’라는 용어를 쉽게 쓰는 걸 보고도 놀랐다. 정치와 선거에 관심을 갖는 5학년 학생들을 바라보다 몇 년만 지나면 이들이 나와 같은 ‘시민’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참정권이 없는 교사에 비해 정치에 더 깊이 관여하며 살아갈 ‘진짜 시민’일 거란 데에 생각이 미쳤다.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올해 6월, 제주도교육청은 도교육청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몇 가지 쟁점이 되는 사안이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띈 변화는 ‘민주시민교육과’가 사라진 점이었다. 5월에 있던 용역연구 최종 보고회에서 연구진은 민주시민교육과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일 뿐, 정책을 운영할 팀은 다른 과로 편입되어 유지될 거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존재하던 과를 다른 과로 편입시켰다는 외형상의 변화를 보며 민주시민교육의 비중이 낮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잔상처럼 남았다.

 

▲ 『학생자치, 민주시민교육의 마중물』  © 우리교육

『학생자치, 민주시민교육의 마중물』에서 본 '민주시민교육'

교육청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이 흔들린다면 학교에서라도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학생 자치’ 활동이 떠올랐다. 그런데 학생 자치 활동을 잘 운영되게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는 건지가 막막했다. 학생 자치가 왜 필요하고, 현재 어떤 점이 문제이며, 무엇부터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살펴보다 임정훈 교사의 『학생자치, 민주시민교육의 마중물』(2021, 우리교육)을 만났다.

 

저자인 임정훈 교사는 현재의 학생 자치 활동에는 ‘시민’이 없다고 말한다. 민주적인 ‘시민’을 기르겠다고 학생 자치를 도입하고 있지만 실상은 학교라는 시스템에 복종하는 ‘신민’을 육성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현행 학생 자치 체제의 문제 사례를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근거를 차례로 들며 책을 풀어나간다. 그중 초등학교의 현실과도 연결되는 문제를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전교어린이회’ -> ‘학생자치회’

저자는 전교어린이회라는 명칭이 주체성을 흔들고 대표해야 하는 대상을 오해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119-123p). 먼저 주체성을 저해한다는 문제가 있다. 중․고등학교의 학생자치회는 ‘학생회’로 불리는 것과 달리 유독 초등학교의 학생자치회는 ‘어린이’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어린이’라는 표현 자체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자칫 미성숙함·돌봄·시혜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주체성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로 인해 초등학교의 ‘전교어린이회’는 교사의 지도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주어 기능과 역할을 제한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다음으로 ‘전교’라는 표현에 문제를 제기한다. ‘전교’는 학생보다 학교를 부각하기에 자칫 ‘전교어린이회’라는 표현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의 명령을 따라 봉사하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학생자치회’, ‘학생자치회장’이라는 명칭을 제안한다. 조직이 대표하는 대상은 학교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해 ‘전교’라는 표현은 뺀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표현이 주는 주체성 결여의 느낌을 제거하고 스스로 조직을 운영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담기 위해 ‘자치’라는 말을 넣은 표현이다.

 

‘건의 사항’ -> ‘협의 사항’

학교에는 학생자치회에서 설치한 ‘건의함’을 볼 수 있다. 학생자치회장 선거에 입후보하는 학생들의 공약에서도 ‘건의’를 반영할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의사를 학교 결정권자에게 전달할 창구가 필요하다는 욕구가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고, 입후보한 학생들은 메신저 역할을 자처해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으로 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 ‘건의 사항’이라는 용어에 수직적인 관계가 담겨 있음을 지적한다(69-71p)

 

교사들은 의견이 있을 때 회의를 통해 해당 내용을 ‘협의’한다. 서로 협력해 의사소통한다는 정도로 해석되는 ‘협의’에는 동등한 관계에서 소통한다는 소통주체의 관계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건의’에는 제안하는 누군가와 이를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결정권자가 존재한다는 수직성이 드러난다. 학교에 적용해보면 건의사항을 제안하는 학생은 ‘을’이 되고 학교는 ‘갑’이 된다. 이에 저자는 ‘건의 사항’이라는 용어를 ‘협의 사항’으로 바꾸고, 학생자치회장단과 학교장 간의 간담회도 ‘협의회’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한다.

 

‘임명장’ -> ‘당선증’

현재 학생자치회장은 선출직이다. 학생들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준비하고, 입후보한 학생이 공약을 제시해 선거운동을 하며, 학생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과정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154-161p).

 

교장은 임명직이다. 승진 제도에 따라 교장은 교감 자격을 획득한 교사, 혹은 장학사로 전문직 경험을 가진 이 중에서 임명된다. 그래서 교장은 임명장을 받는다. 한편 선출직에게는 당선증을 준다. 당선증을 주는 주체는 선거관리위원회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선출직인 학생자치회장에게 임명직인 교장이 ‘임명장’을 ‘수여’한다.

 

학교에서 학생자치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라면 절차 역시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선출된 학생자치회장에게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이름으로 ‘당선증’을 교부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를 잘 살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교육 3주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2013.2.15.)는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학교장이 학생과 교원, 학부모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학교를 구성하는 교육 3주체가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민주적인 절차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교육 3주체라는 개념이 오히려 학생들의 주체적 권리를 박탈함을 지적한다(254-272p).

 

학칙으로 일컬어지는 생활규정의 지배를 받는 것은 학생이다. 교사의 권리, 학부모의 권리에 관한 내용을 정할 때에는 학생이 개입할 수 없으나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정할 때에는 2주체가 참여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비판한다. 학생을 주체적인 시민으로 본다면 각 주체의 권력, 권한의 크기, 범위가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학생의 주체성을 훼손하는 '선서·다짐' 활동

저자는 교육당국이 강조하고 있는 학교 규칙 만들기, 다짐 만들기 등의 활동이 학생 길들이기 활동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265-272p).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협약이나 생활규정 다짐 캠페인 등의 구호를 살펴보면 교원이나 학부모를 제한하는 사항은 강제력이 없거나 미약한 선언인 반면, 학생들에게는 해당 내용들이 강력하게 작용될 수 있어 구속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선언 활동은 학생을 규칙에 길들이기 위한 활동이 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학생들의 다짐, 약속 활동들이 일제강점기 보통학교 학생들의 신사 참배와 닮았음을 지적한다. 신사에 바쳤던 서약을 학교의 협약으로 실시한다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제주지역 사례조사 결과

저자가 지적한 사례가 우리 학교, 우리 지역에도 적용되는 문제인지가 궁금했다. 몇 가지 사항은 검토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제주지역 초등학교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학생 생활규정(학생생활인권규정)과 자치활동에 관한 규정(자치활동에 관한 규정), 도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각 학교의 홍보자료 일부를 통해 학교의 사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전교학생자치회’ 혹은 ‘학생자치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도 ‘전교어린이회’, ‘학급어린이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 역시 많이 발견되었다. 홍보자료뿐만 아니라 교내 학칙(학생자치활동에 관한 규정)부터 ‘학생자치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해당 사례를 포함해 여전히 많은 초등학교에서 ‘전교’라는 용어는 유지되고 있다는 점 역시 발견되었다.

 

학생자치활동에 관한 규정을 통해서 각 학교에서 이뤄지는 학생 자치회장단의 임명 과정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유사했다. 학칙에는 ‘선거관리위원장이 제시한 개표 결과를 학교장이 결재하여 확정한다’는 내용이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하게 게재되어 있었다. 즉, 학생 선거 결과의 최종 결정권은 학교장에게 있음을 확인했다.

 

제주 지역의 모든 초등학교 자치활동 사례를 찾아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강의 흐름만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조사한 사례에서 찾을 수 있었던 공통점은 변화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학칙의 변화’라는 점이었다.

 

학교 규칙의 개정 절차는 다소 복잡하다.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당 내용을 판단할 소위원회를 구성해 검토한 뒤,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추진할 구심점이 필요한데, 결국 이는 교사의 몫이 된다.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여론을 구축해 필요한 절차를 밟아나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문제를 의식하는 교사’였다.

 

제주도교육청의 민주시민교육과가 구심점을 잃어버린 지금이다. 조직개편안은 최종보고회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포함한 설명회까지 마쳐 이제 도의회에 안건이 넘어간 상황이다. 학교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심 잡기의 첫 시작으로 자치 활동을 살펴보았고, 위와 같은 몇 가지 논의점을 발견했다.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지금의 교사들은 모두 경험하지 않은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지원하려하고, 수직적인 위계를 세우기보다 평등한 관계를 구축하려 노력한다. 경험하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건 새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책의 저자인 임정훈 교사는 기존의 학생 자치 방식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그 기원이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에 닿아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제는 틀을 벗어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을 열기 위해서는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을 걸어갈 교사와 권력의 이양에 동참할 학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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