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마드에서 전교조 활동가로 ...박현경 지회장

현경희 편집실장 | 기사입력 2024/05/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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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마드에서 전교조 활동가로 ...박현경 지회장
충북지부 음성지회장의 다채로운 삶을 들여다 보다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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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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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부 음성지회장의 다채로운 삶을 들여다 보다

▲ 전국교사대회장에서 박현경 충북 음성지회장  © 현경희 편집실장


사람마다 빛깔을 갖고 있다. 단순한 빛깔, 오묘한 빛깔, 탁한 빛깔 등등. 충북 음성지회장인 박현경 교사는 다채로운 빛깔을 가진 사람이다. 열정적인 국어교사이자 전교조 활동가, 그리고 화가의 삶까지 농도있게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보았다.

 

Q. 반갑습니다, 박현경 선생님! 다른 조합원 선생님들로부터 ‘노마드 박현경’이라는 별칭을 들었습니다. 사연이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노마드'(유목민) 상태였어요. 교사가 되고 싶어 교원대에 입학했지만 교직에 다들 얽매이는 그 분위기가 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발령 받고는 한동안 봉쇄수녀원을 가려고 준비를 했어요. 방학 때는 봉쇄수녀원에 가서 한동안 지내기도 하고요. 보은의 카르투시오 수녀원인데, 프랑스에 모원(母院)이 있어요. 그래서 프랑스 본원도 찾아가 원장 수녀님과 면담도 하고, 불어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중간에 포기를 했어요.

 

교직을 천직이라 생각하지 않고, 매년 ‘이번 해가 나의 마지막 해가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서 교직 생활을 했어요. 현실에서 충족이 안 되는 그런 목마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종교적인 방향으로 해소하려 했다가, 이후 포기한 후로는 프랑스로 유학갈 결심을 했어요. 실제로 프랑스에 가서 한 달 동안 원룸에 살며 프랑스어 집중 과정도 듣고, 노숙인들을 위한 센터에서 봉사활동도 했죠.

 

프랑스 사람들과 섞여서 한 달간 살아보니 프랑스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류만 준비하면 갈 수 있는 상태일 때 마음이 복잡해서 산책을 하다 동네 카페를 자주 가게 되었어요.

 

그 카페 사장님이 바로 지금 남편이에요, 하하! 어차피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정을 붙일 마음이 없었는데 남편은 제가 처음 입고 온 옷, 앉은 자리, 주문한 메뉴까지 기억하더라고요. 그렇게 남편을 만난 후 프랑스 가는 것도 잊고 이렇게 주저앉았죠. 함께 있으니 떠날 이유가 없어지더라고요. 선배 한 분은 “너는 남편한테 떠난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떠나고 싶었는데 떠날 곳이 이제 생긴 거죠.

 

▲ 남편이 운영하는 카페 벽면에는 박현경 교사의 작품 여러 개가 걸려있다.   © 현경희

Q. 조합에 가입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2017년에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자율연수 휴직을 하고 다음 해에 그냥 자연인으로 살았어요. 자연인이자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만 살았죠.

 

그러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지역 사회 여러 모임에도 가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 노동운동하시는 분들도 알게 되었죠. 그 무렵 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이 있어서 집회도 같이 다니고요. 그렇게 노동자로서 각성이 된 상태에서 학교로 돌아갔죠.

 

특히 인권이나 노동 쪽으로 활동하시는 분들하고 조금 더 가까이 지냈어요. 복직해서는 ‘그런데 나는 왜 노조를 안 하지?’라고 묻게 되더라고요. 교육자 정체성과 함께 노동자 정체성을 스스로 깨달은 거죠. 그래서 전교조에 스스로 가입했어요.

 

가입원서를 써서 분회장님한테 드렸죠. 근데 돌이켜 보면 그 이전, 제가 수녀원 가겠다 했던 그 시절부터 저한테 좋은 영향을 준 사람, 닮고 싶은 사람 중에는 전교조 조합원이 많았어요. 그게 차곡차곡 쌓인 거겠죠.

 

Q. 가입한 지 5년차인데, 어떻게 지회장까지 하는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셨어요?

2021년에 충북지부 2030위원회에서 진행한 518 광주기행 때 만난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전교조의 여러 활동에 관심을 가졌어요. 제가 있었던 학교가 1인 분회였고, 당시 충북지부 2020 단체협약이 잘 지켜지는지 챙기는 데 책임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단체협약 책자도 열심히 읽고, 우리 학교에서 제대로 안 지키고 있는 부분은 말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단협 건으로 관리자에게 의사표현을 했고, 이후 복무 문제로도 갈등이 생기고 했죠. 참 힘들 때였는데 당시 지회장님이나 지부 교권 담당 선생님이 차분하게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때 선생님 한 분은 불안해 하는 제게 “오늘 어디 있어요? 선생님. 어디 있든 내가 거기로 갈게요. 오늘 꼭 만나요”하며 지지하고 위로해 주셨죠. 누구나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은 겪을 수 있는데 그럴 때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었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하시는 걸 내가 봤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하는구나' 그런 것도 배웠고요.

 

우리 지역은 저연차 선생님들이 많으신데 불합리한 것을 당연하다 받아들이는 것들이 너무 많으세요. 저는 이럴 때 움찔움찔하는 거죠. 저거 말해줘야 하는데 하면서요. 그러던 차에 서이초 사건이 일어났어요. 교사집회에서 많은 역할은 못 했지만 조금조금씩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집회 무대에서 발언도 하게 되었죠. 학교 내에서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기여도 하지만, 또 그걸 넘어서서 조금 더 큰 역할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작년말 지회장 선거에도 나서게 되었어요.

 

▲ 2023년 음성충주지역 청년교사 교권연수를 진행하는 박현경 교사  © 박현경 교사 제공

 

Q. 지회장 선거 웹자보를 보았는데 특별하더군요.

네, ‘저는 대충하는 것을 배우지 못 했습니다’라고 썼죠.

 

저는 학교 현장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비뚤어지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학교 전체에 팽배해 있는 순종적, 보수적 분위기가 숨이 막혔죠. 그리고 사회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이 학교에서는 문제되는 것들이 많이 보였어요.

 

전교조 활동을 함으로써 제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속해 있는 이 공간의 짜여진 판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게 아니고 이 판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데 의미를 가지게 돼요. 조합원 된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건, 무식해서 용감할 수도 있지만요.

 

지회장 일은 쉽지만은 않은데 즐겁게 하고 있어요. 제가 늘 염두에 두는 건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전교조의 존재감을 가까운 데서 느끼게 해주는 지회장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오픈채팅방도 개설했고, 실제로 이걸 통해서 선생님들이 단협 위반 사례 제보도 해주셔서 신속하게 반응하고 대응도 하죠.

 

두 번째는 자판기 노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게 뭐냐면, 노조가 무조건 대리 역할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주인이 되고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관리자와 갈등이 있거나 단협 위반 사항이 있다해서 제가 슈퍼맨처럼 나가서 싸워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지회나 지부가 당연히 지원을 해야 하지만,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봐요. 소수의 활동가에 의존해서는 장기적 비전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조합원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까, 그러면서도 큰 부담을 주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하며 메시지 하나를 보내더라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 본인의 작품 앞에서 고양이 왕순이와 함께   © 현경희

 

▲ 자신의 삶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은 기간이 별로 없었다는 박현경 교사  © 박현경 교사 제공

 

Q.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계시고, 화가 박현경으로도 유명하시던데요.

제 인생에서 그림을 안 그린 기간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여기 손에 굳은살이 박혀있어요. 기억하기로 초등학교 전부터 박혀있었어요.

 

항상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재밌는 일이었고, 중학교 때는 전공을 하라는 제안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미술을 전공할 만한 가정 형편이 못 됐어요.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그림은 계속 그렸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한국교원대 신문에 만평을 꽤 오래 연재를 했죠.

 

그러다가 첫 전시는 2018년에 했어요. 자율연수 휴직한 상태에서 뭔가 의미 있는 걸 하고 싶어서 첫 전시를 했는데, 친정아버지와 2인전이었어요. 개인전은 다섯 번 했고, 단체전은 이보다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해졌죠. 처음에는 우리집 고양이 왕순이라든지 길가 풍경이라든지 이런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주로 담았는데 점점 가면서 담고 싶은 메시지가 많아졌어요.

 

예를 들면 저기 있는 그림 제목이 ‘천사’거든요. 천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땅으로 내려가고 있어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고, 사람에 대한 공감과 연민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요.

 

저 그림은 이태원 참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 거예요, 아들을 잃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서 그렸죠. 처음에는 저의 일상과 내면에 집중했다면 점점 세상 사람들을 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 남편이 운영하는 카페 내엔 박현경 교사의 작품을 담은 엽서가 판매되고 있다.     ©현경희

 

Q. 바쁘실 텐데 그림은 주로 언제 그리나요?

늦게 일어나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고요. 일찍 일어나면 4시에 일어나서 7시 정도까지 그려요. 관사가 학교 옆이라 출근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거든요.

 

보통 운동이나 다른 취미생활은 열심히 해야지라고 의지를 다져야 하게 되는데, 그림은 이제 그만 그려야 되겠다 해도 자꾸 하게 돼요. 전교조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계속하고 싶어요, 하하!!

 

교사가 되기까지, 교사가 된 이후에도 이곳저곳 노마드로 떠돌던 박현경 선생님은 이제 ‘국어교사, 전교조 활동가, 화가’, 이 세 가지가 현재 자신이 정착한 곳이라고 말했다.

 

‘대충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학교에서, 조합 내에서 진하게 이어질 것 같다.

 

▲ 충북지부 청년교사 연수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한 박현경 교사  © 현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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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미 2024/06/04 [14:14] 수정 | 삭제
  • 선생님 멋지십니다. 전교조 활동가지만 노마드의 마음을 계속 갖고 가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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