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칼럼]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이라 쓰고 '책임전가'라 읽는다

김동혁 교사 | 기사입력 2024/05/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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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혁 칼럼]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이라 쓰고 '책임전가'라 읽는다
‘차량 안전점검표’는 누가 담당해야 하나?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전가당할 제물에 오를 자를 선정하라는 공문인가?
김동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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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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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안전점검표’는 누가 담당해야 하나?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전가당할 제물에 오를 자를 선정하라는 공문인가?

▲ 김동혁 교사


교내 메신저를 통해 현장체험학습 관련 공문을 받았다. 제목은 ‘2024년도 광주정신 역사탐방 프로그램(중1) 5월 운영방법 안내(현장탐방)’ 이다.

 

공문에는 해당 프로그램을 신청할 경우 학급별로 강사 1명과 운송차량 1대(40인승 이상 버스)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인솔교사 역할로 사전안전교육, 임장지도, 인원파악을 명시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협조사항이었다. 협조사항에 담당자 명시 없이 현장체험학습 출발 전 ‘차량 안전점검표’ 작성 후 제출로 되어 있다.

 

'어! 이것 봐라'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설마, 설마, 또 책임 회피를 위한 전시행정 스킬 발동인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얼른 운영계획 파일 내 붙임공문을 보았다. 붙임공문에는 차량 안전 점검표 아래 학교명·점검자 서명란이 있고, 4가지를 점검하도록 했다.

 

첫째, 운전자

- 운전 자격 요건 확인, 운전자 탑승 여부

- 운전자 음주여부 확인

 

둘째, 차량 외부

- 앞타이어 재생타이어 사용 여부(앞 타이어 재생사용은 불법-대형 사고 원인)

- 차량외부 회사명 등 표시 여부

- 타이어 마모, 균열 상태 확인 여부

- 타이어 생산연도 적정 여부(보통 3~4년 이내)

 

셋째, 차량 내부

- 회사명, 운전자, 연락처 등 비치 여부

- 소화기 비치 여부

- 비상탈출용 망치 비치 여부

- 불법구조변경 여부(테이블 설치 등)

 

넷째, 운전자 교육

- 운전자는 출발 및 재출발 시 반드시 안전벨트 착용토록 안내 방송 실시

- 급출발. 급제동 및 대열 운영 금지

(목적지 및 중간 경유지, 운행경로 등 운전자에게 사전 안내 실시)

- 내리막길 저단기어(엔진브레이크) 사용 및 풋브레이크 연속 사용 금지

(브레이크 파열에 따른 대형사고 유발원인)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시교육청 담당자는 이 파일을 내려보내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학교 현장의 교사나 행정직원, 공무직원들 중에 재생타이어 유무, 마모 균열 상태 여부, 타이어 생산연도 파악, 불법 구조 변경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가 과연 있다고 생각할까? 그리고 그들의 직무에 이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리막길 저단기어 사용 교육을 운전자에게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학교 현장 구성원 중에 이런 점검을 할 수 있는 이가 있다고 믿고, 또 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문을 시행했다면 해당 직원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만약 학교 현장 구성원 중에 이런 점검을 할 수 있는 이가 없고, 또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고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기우에 빠지지 말고 그냥 대충 서명하고 내라는 식이었다면 사악한 것이다.

 

또한, 차량안전점검표 점검자 이름과 서명란의 공백은 학교 내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 그리고 각 실의 공무직들과 제로섬 갈등을 유발한다. 누구도 제도적으로 해당 업무를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로 부여받지 않았으며, 그에 따른 보수와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시간과 여건도 제공받지 않았다.

 

그저 실질적인 버스 안전 점검은 도외시한 채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전가당할 꼬리자르기의 제물에 오를 자를 선정하라는 공문을 앞에 두고 힘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 약한 사람이 지거나, 힘 약한 사람이 지거나 행사 자체가 취소되거나 한다.

 

2005년 교직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전교조에서 분회 선생님들과 함께 자기 학교 급식 재료 검수하는 법을 배웠다.

 

부정한 관리자들이 업자들과 짜고, 수박 개수를 속이기 위해 수박을 한 통 두 통 받지 않고 쪼개서 받는 경우가 있었다. 중국산 기계로 깐 마늘을 국내산 마늘로 속여서 들어올 수 있으니 깐 마늘은 가급적 피하도록 하고 원산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물품이 들어오면 일단 뒤집어 엎어놓고 검사해야 한다 등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교사의 업무가 아니었던 것들도 학생들의 안전과 질 높은 교육, 투명하고 청렴한 학교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나서서 배웠다. 호의였고, 선의였고, 기부였다. 공적 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열정페이와 재능기부를 통해 대신하였다.

 

그런데 호의를 계속 반복하니 이를 의무로 여긴다. 공적 시스템이 하지 못한 부분들을 교사들이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재능기부와 열정페이로 감당해오자, 이를 행정당국이 당연한 것처럼 강요하고 있다. 나아가 자신들이 마땅히 만들어야할 안전시스템을 허술하게 내버려 둔 채, 모든 책임을 교사들에게 전가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현장체험학습 안점점검의 비현실성을 문제제기해 왔다. 그러나 교육행정당국은 매번 돈이 없다, 인력이 없다, 사고나지 않는다, 다른 학교는 그냥 하는데 왜 까탈스럽게 그러냐는 식으로 문제제기를 뭉개왔다. 사고나면 꼬리자르고 또 비현실적인 매뉴얼과 두꺼운 서류뭉치만 한가득 내려보내며 교육행정당국은 아무 문제 없다며 대국민 허위선전을 할 뿐이다.

 

학교 현장에선 지금도 그저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며 불안한 현장체험학습을 나가고 있다. 과연, 이 불안함을 안고 현장체험학습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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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무가아니다 2024/05/21 [14:47] 수정 | 삭제
  • 양주초에서 운영위가 체험학습을 진행하지 않는 교사들을 직무유기와 아동학대로 고소한다는 기사를 듣고 기가 찼습니다. 저정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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