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사 연수, 지원인가? 족쇄인가?

현경희 편집실장 | 기사입력 2024/05/10 [17:02]
특집기획
[기획] 교사 연수, 지원인가? 족쇄인가?
교사 연수 정책, 이제 '강요'에서 '지원'으로 방향 틀어야
현경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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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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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연수 정책, 이제 '강요'에서 '지원'으로 방향 틀어야


의무연수 클릭질의 자괴감

 

풍경 하나 :  법정의무연수를 1.5배속으로 틀어놓고 수업준비하다 중간중간 클릭질을 하는 교사

풍경 둘 :    “아뿔사! 연수 공지가 뜨자마자 30초 만에 연수신청이 마감되다니!”

                (전국국어교사모임 연수 신청을 한 교사의 말)

 

연수와 관련한 매우 다른 두 개의 풍경. 실제 존재하는 풍경이다.

 

김고종호(전북 지평선고) 교사는 의무·정책연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의무연수가 많이 늘어나 정작 듣고 싶은 연수를 들을 시간이 부족해요. 의무연수는 대부분 깊이 없이 매년 반복되는 온라인 연수이기에 클릭클릭하며 이수증 따는 데만 급급하게 돼죠. 정책연수도 교육부 정책을 홍보하는 연수가 많아, 정작 수업이나 생활지도 관련 연수를 들을 기회를 위축시키고 있어요”라며 의무·정책연수가 교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법정의무연수는 성폭력, 학교폭력, 교권침해 등 사회 사안이 생겨 법이 만들어질 때마다 들어오기에 매년 그 종류와 시간은 늘고 있다. 현재 각 시도연수원 ‘법정의무연수 패키지’에는 온라인 연수로만 27시간 가량 올라와 있고, 대면연수까지 합친다면 그 시간은 더 늘어난다. 

 

정책연수에 몰빵하는 교육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행을 타듯, 홍보되고 강제되는 정책연수도 현장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 아니기에 교사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

 

아래 이미지는 교육부가 교육청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2023년 시도교육청 평가 지표 편람>에서 ‘평가사항’을 워드크라우드로 만든 것이다.

 

 

‘연수’와 ‘실적’이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청 평가지표의 측정 내용으로는 ‘AI 디지털교과서 관련 연수 이수 교사 수, 학습부진아 학습능력향상 관련 연수 이수율, 통합지원 역량강화 연수 실적....’ 등등이다. 연수는 이렇게 정량평가에서 가장 손쉽게 정책을 학교로 디밀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이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연말 “김진표 국회의장님이 직접 발의해 교사들의 AI를 활용한 수업 역량을 키워주는 연수를 할 수 있도록 3년간 1조 7,500억 원이라는 큰 재원을 특별교부금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라며 “그래서 내년(2024년)부터 역대급 교원 연수가 시작되게 된다”라고 말했다.

 

장관 입에서 나온 ‘역대급’이라는 말은 무척 생소했다. 하지만 그의 의중을 알 수 있는 단어였다. 이렇게나 많은 돈을 들여 연수를 하게 된 것은 큰 성과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 지난해 12월 29일, '교사와 AI가 함께 이끄는 교실혁명' 주제의 교육부 4차 차담회  © 교육부

 

이 결과, 내년(2025년)부터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해야 하는 초등교사와 중·고등학교의 수학·영어·정보 교과 교사 15만 명을 대상으로 우선 연수를 추진한다. '학교로 찾아가는 연수'는 올해 3천 개를 시작으로 3년간, 모든 학교에서 받게 된다.

 

장관에게는 성과였지만, 교사에게는 연수 폭탄인 것이다. 보통교부금을 줄여 막대한 특별교부금을 만들어 교사 연수를 시키겠다는 교육부장관은 디지털에 진정 진심이다. 하지만, 이 진심에 교사들이 크게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디지털로 교실 혁명을 이루겠다는 교육부장관 버킷리스트에 대한 현장교사들의 공감지수는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수 지원' 불평등

한편, 대한민국 교원들은 지역에 상관없이 고르게 연수 지원을 받고 있을까? 교육공무원법 제 37조에는 ‘연수의 기회균등’에 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교육공무원에게는 연수기관에서 재교육을 받거나 연수할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지난해 교육희망 기획기사 ‘학습연구년 & 교사의 소진’(->기사 보기)에서도 짚었듯, 특별연수의 기회가 각 시도교육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기회 균등에는 연수비, 교재비의 균등도 포함될 수 있다.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자율연수비를 살펴봤다.

 

▲ 17개 시도교육청 자율연수비 현황. 같은 시도 내에서도 학교마다 편차가 큼.

 

충북 30만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육청에서 25만원의 자율연수비가 지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6만원), 서울·부산(15만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같은 시도 내에서도 학교마다 편차도 크다. 같은 교육공무원이지만 소속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연수 지원의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성장 열정' 세포를 살려라

앞서 15초 만에 마감된다는 전국국어교사모임(전국모) 연수의 비결을 송승훈 전국모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때 연수 신청이 미달이 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소모임 형태로 바꾸면서 연수가 되살아났어요. 한 반에 12명 정도 연수생들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소외되지 않고 서로 소통하며 공부하고 있죠. 이런 친밀한 관계가 연수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다. 다수의 교사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정책을 전달하기 위한 온라인 연수도 필요하지만, 결국 교사의 자발성과 교직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가장 큰 동력은 동료교사와의 교류를 통한 성장 의지였다.

 

지난해 10월, 한국교육개발원(->보고서 보기)은 우리나라 교원 연수제도 문제점으로 기관 중심 연수에 치중하여 현장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콘텐츠 학교 현실에 맞지 않는 연수 내용 경력단계별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의 부족 전문성 개발에 대한 보상 및 지원 부족 등을 언급했다.

 

법정의무연수는 경력에 따른 일몰제와 일정 시간을 넘지 못하게 하는 총량제로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 자리에 동료교사와 대면하여 수업과 생활지도를 논할 ‘시간’과 ‘예산’을 지원하는 연수 정책이 시급하다.

 

짧고 파편화된 연수가 아닌 6개월이나 1년 정도 긴 호흡으로 학교 밖에서 교직을 돌아보고 자기 성장을 할 수 있는 학습연구년과 같은 특별연수 대상자 확대도 교사들의 소진과 퇴직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사만큼 배움에 목말라하고 성장 열정을 가진 집단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교사들의 성장 열정 세포를 죽이는 ‘족쇄’ 성격의 연수 정책에서 ‘지원’ 성격의 연수 정책으로 이제 방향을 돌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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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진 2024/05/11 [06:20] 수정 | 삭제
  • 예체능 교사의 실기 실습과 관련한 학원비도 지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 연구보다 의미없는 법정연수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니... 속상합니다
  • 명아주 2024/05/10 [19:55] 수정 | 삭제
  • 깊이 공감하는 기사입니다. 교사동아리지원비를 늘리는게 어떤 연수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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