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5월 1일부터 코로나19 위기단계가 가장 낮은 단계인 '관심'으로 낮춰지며 '완전한 엔데믹'을 눈앞에 두고 있다. 4년 3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는 코로나19가 우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를 '교육희망 칼럼진'의 지상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총 3편으로 나눠 편집했다.
♦진행 : 현경희 편집실장
♦참가 필자 : 김동혁, 김현희, 박새별, 서부원, 이성우, 정소영, 정용주, 하병수, 한민호
[2편] 코로나 기간 중 겪거나 간접적으로 접한 에피소드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학부모 민원과 번아웃
[이성우] 교직경력 37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최근 몇 년의 학교살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 교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작년 서이초 사태가 지금의 교사 수난시대를 상징한다 하겠습니다. 저도 작년과 재작년에 이른바 ‘학부모 갑질’을 겪었습니다. 그간의 제 교직 삶에서 흔치 않은 고초였습니다. 이런 고초 때문에 우리 교사들이 힘든 것인데, 저는 이게 코로나19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무도한 학부모’의 이면엔 ‘망가진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학령기 이전 코로나 상황에서 잘 놀지 못한 아이들이 자기조절 역량을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학교에 들어오니 또래들과의 관계맺음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그것이 민원폭탄으로 이어져 교단의 번아웃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차단과 연결의 경험
[한민호] 담임을 할 때였어요. 제가 학교 일과 중에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이 된 거예요. 확진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상황이라 제 개인 짐들이 학교에 있었는데요. 어쩔 수 없이 보건 선생님으로부터 짐을 받고 학교에서 나가려고 하는 중에 반장이 저 멀리서 지나가는 게 보였어요.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들어 반장에게, “○○야, 샘 확진이야. 미안해.”라고 이야기했어요. 반장이 잘 안 들렸는지 저에게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어요. “○○야, 잠깐!! 잠깐!! 오지마!! 샘 확진이야!”라고 이야기하자, 반장이 놀라며 뒷걸음질을 치더라고요. 후에 나중에 반 애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되었어요. 반장이 담임샘을 걱정하지 않고, 차단한다고 놀리면서요.
집에서 격리를 하고 있는 중에, 학급 학생들이 제게 힘내라며 편지를 써서 톡으로 보내주었어요. 코로나 확진되었을 때에 모두로부터 차단되고 배제된다는 외로움으로 서글펐는데, 아이들이 참 고마웠어요. 그런데 격리가 끝나고 반가운 마음으로 학교에 복귀했는데, 바로 조퇴했어요. 많은 학생수와 귀를 뚫어버릴 듯한 소리에 어지럼증이 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코로나의 두려움, 서로 연결되고 관계 맺는 것의 소중함, 그리고 학교는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고, 시끄러운 공간이구나!
곤두박질친 문해력
[서부원] 직접 겪은 ‘웃픈’ 사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한국사 수업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발전 과정을 다루는 단원에서 ‘백제는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천도’라는 의미를 묻기에 '수도를 옮긴다'는 뜻이라고 했더니, 느닷없이 수도를 옮기는 일은 국가적 사업인데 왜 ‘개인 비용’을 들여 옮겼냐고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경험에 미루어 보면, 수업 중 적어도 세 명 중 한 명의 아이들이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소리’로 읽어낼 뿐, 거기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어휘력의 심각한 부족 탓으로 여겨집니다. 어휘력과 사고력은 정확하게 비례한다는데, 향후 상당한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어느 사회학자의 일갈처럼, 사회 문제에 관해 깊이 사고하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인 사회는 전체주의가 독버섯처럼 퍼지는 토양이 됩니다.
단절이 주는 위험
[김현희] 초등학교 6학년 쓰기 활동 중, 한 학생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내가 눈을 마주치자 연필이 없다고 속삭였어요. 주위 학생들에게 “연필 좀 빌려줄 사람?”하고 물었더니, 교실에는 침묵만 흘렀어요. 한 학생이 장난스레 “오~노! 코로나!”라고 말했고, 몇몇 아이들이 작게 웃었습니다. 저는 교사용 책상 서랍을 뒤져서 연필을 찾아 건넸습니다.
교실에서 친구에게 연필을 빌려주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우려스러웠습니다. 갓난아기에게 눈병이 났다고 장기간 안대를 씌우면 실명할 가능성이 크죠. 눈에 시각 자극이 유입되면 시신경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이는 뇌의 시신경 세포와 연결됩니다. 오랜 기간 시각 자극이 없으면 뇌의 시각피질에 있는 뇌세포가 연결되지 않아 아기는 실명합니다.
타인과의 단절을 기본값으로 인식하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타인의 상황과 처지를 자극으로 인식하는 뇌의 회로도 끊어지지 않을까, 고민이 됐습니다. 협업하고, 충돌하고, 상처와 갈등을 봉합하고 극복하는 과정은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기 때문이죠.
깊은 성찰 없이 엔데믹
[정용주] 코로나 기간 중 두 차례 토론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저는 토론회에서 학교의 기능과 교사의 역할, 그리고 우리가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할 교육적 경험은 무엇인가 등 보다 깊은 성찰을 다룰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실시간 수업을 확대하느냐, 등교를 확대하느냐'에 갇혀 있었어요.
저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 전달의 장이 아니라,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의 중요성을 학습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기획대담] 엔데믹 & 우리 교육 1_ 변화
☞ [기획대담] 엔데믹 & 우리 교육 2_ 에피소드
☞ [기획대담] 엔데믹 & 우리 교육 3_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