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5월 1일부터 코로나19 위기단계가 가장 낮은 단계인 '관심'으로 낮춰지며 '완전한 엔데믹'을 눈앞에 두고 있다. 4년 3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는 코로나19가 우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를 '교육희망 칼럼진'의 지상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총 3편으로 나눠 편집했다.
♦진행 : 현경희 편집실장
♦참가 필자 : 김동혁, 김현희, 박새별, 서부원, 이성우, 정소영, 정용주, 하병수, 한민호
[3편] 엔데믹 시점에서 학교 현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엔데믹 후 교육당국이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심리적·사회적 어려움 누적된 학생들 지원 절실
[정소영] 팬데믹 시기,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 생활, 문화 체험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가정 돌봄이 잘되고 있는 학생은 부족한 수업도 사교육으로 채우고, 식사도 할 수 있고, 문화 체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학습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채우기 어렵고, 학교나 사회에서 제공하던 문화 체험의 기회도 사라졌습니다.
학습뿐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어려움이 누적된 학생들이 교실 곳곳에 보입니다. 학생들이 겪은 어려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특히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생들의 심리정서, 사회성, 학력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김현희] 같은 생각입니다. 팬데믹은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특히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학교의 생활, 놀이, 쉼, 관계 형성의 장소성이 희미해지자, 취약계층 아이들의 삶의 서사는 유독 납작해졌습니다.
미세먼지, 기후위기, 전염병 발생 등 언제 다시 위기 상황이 터질지 모릅니다. 어떤 재난 상황이 벌어져도 ‘모든 형편의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 장소, 교육적 장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한민호] 공감합니다. 정서 위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 급증했습니다. 가정에서의 훈육, 학교에서의 생활 교육 등을 SNS가 대신하였기 때문일까요? 교실에서 급우들과의 관계에서나, 수업 과정에서의 태도 면에서나 좀처럼 행동 조절이 안 되고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학생들과의 소통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데, 여전히 선생님들에게는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상담 선생님들의 수급이나 업무 경감도 충분하지 않고요. 그에 따라 즉각적인 변화 요구가 학생에게 주어지면서 더 큰 갈등이 벌어지게 되죠.
학교 규모를 더 축소하고 학급의 학생수를 더 줄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들을 더 충원하고 담임 선생님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행정 업무들을 간소화해서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으면 합니다.
[정용주]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교육 시스템에 전례 없는 도전을 제기했습니다. 사회적, 정서적, 지적 발달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교육의 본질적 목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사회적 반응은 주로 학력 격차의 문제에 집중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중요한 발달적 요소들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분명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전반적인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교육 당국은 학업 성취뿐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적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서 학생들의 정서적 건강을 증진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감정 교육에 더 많은 훈련을 받고, 학교는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합니다.
디지털에 매몰된 교육부
[하병수] 코로나 국면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의 수업결손과 정서적 지원은 교사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교사들은 일상적인 대면수업으로 돌아왔지만, 2년간의 누적된 학습 결손을 당장에 해소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교육부는 온라인 원격 수업의 한계를 성찰하기보다는 오히려 디지털 기술에 매몰된 미래교육 담론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경기도교육청도 '디지털 시민성'을 핵심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에듀테크 직무연수를 교사에게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시기에서 경험했듯이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감각적 자극과 정보의 과잉을 낳는 디지털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학생들의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유럽처럼 학생들에게 정보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합니다.
엔데믹 시대, 우리는 코로나 원격교육의 한계를 실감했듯이 디지털 교육의 한계를 명확히 해서 교육의 본질을 분명히 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이 기여해야 합니다.
[박새별] 동의합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원격수업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을 뿐, 이것이 대면수업의 대체자 혹은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학교로 들어온 디지털 기기는 교수학습과정을 보조하는 도구이지 이것이 교육의 목적이나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교육희망에 실린 김지연 선생님의 언급(기사보기)대로, 우리는 수업에 AI가 필요한 게 아니라, AI이외에도 여러 도구들을 이용하여 종합적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교육당국은 AI나 디지털교과서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시도교육청도 학교수업의 본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기기 구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관련기사) 교육부가 도구가 아닌 사람에, 기계나 프로그램이 아닌 교사와 학생에 다시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부터 학교에 디지털 교육을 도입했던 스웨덴은 6년 만에 다시 종이책과 연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역시 학교에서의 스마트기기, 모바일기기의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학습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서부원]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앞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적 환경 변화가 주요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서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실천 교육이 시급히 행해져야 함에도, 그러한 근본적인 대책은 뒤로 하고 ‘원격 수업의 효율화’ 따위의 대응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원격 수업이 가능하게 하는 하드웨어 구축에 혈안이 된 모양새입니다. 교실마다 무선 인터넷 중계기를 설치한 건 이미 오래고, 일부 교육청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학생 개개인에게 노트북과 태블릿피시를 보급하는 사업을 공약 실천이라는 이유로 강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노트북과 태블릿피시가 없어서 원격 수업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닌데도 막무가내입니다.
비유하자면, 화석 연료의 과도한 사용이 기후 위기를 불러온다며 내연기관 자동차를 줄여야 한다고 떠들어대면서도, 차량을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길이 막히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멀쩡한 산을 허물어 도로를 내고 넓히는 걸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교사들조차도 ‘이상’일 뿐이라고 토로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호소합니다.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이상’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이상’을 꿈꾸느냐고.
정부는 팬데믹을 막거나, 최소한 늦출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합니다. 무엇보다 학교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에 힘써야지, ‘감기약’을 처방하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돌려줘야
[이성우] 엔데믹 시점에서 저의 화두는 ‘놀이’입니다. 놀지 못하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도 망가집니다. 사실 이러한 망가짐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죠. 다만 코로나 시기에 증폭되었을 뿐입니다. 엔데믹 시점에서 학교교육이 주력해야 할 과제도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는 것입니다. 입시지옥으로 대변되는 한국 교육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한 성장 그리고 사회 발전을 위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돌려줘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마음껏 놀지 못하면 사회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김동혁] 코로나19 이후 교실에는 여전히 시험대형 좌석 배치가 일상입니다. 학교 안에서의 각종 오프라인 만남은 줄었고,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기기는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댈 시간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가 희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공 하나를 두고 이리 뒹굴고 저리 뛰어다니는 학생들의 함성소리 때문입니다. 교정 곳곳에 핀 봄꽃 아래에서 예쁜 꽃을 배경 삼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사진을 찍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만남의 싹을 틔우려는 장난 같은 작당 모의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 [기획대담] 엔데믹 & 우리 교육 1_ 변화
☞ [기획대담] 엔데믹 & 우리 교육 2_ 에피소드
☞ [기획대담] 엔데믹 & 우리 교육 3_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