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학교는 바야흐로 ‘계기교육’의 계절이다. 제주 4.3사건부터 시작해 올해로 10주기가 된 세월호 참사,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과 6.25전쟁까지. 우리 현대사의 아프고 극적인 순간들은 유독 찬란한 봄과 여름에 집중되어, 배우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그러나 교과서도 없는 계기교육은 교사들에게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5.18과 4.3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완료되지 않은 대표적 사건이다. 4.16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사건들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은 대개 슬프고 복잡하며, 아직 격렬한 논쟁 중에 있어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들을 곤란하게 한다. 게다가 요즘은 민주시민교육을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이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러다 보니 계기교육은 다소 피상적이고 이벤트성이 강한 '자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내가 발령 첫해에 만든 5.18 수업자료가 그렇다. 당시 초3 담임이던 나는, 광주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열 살 학생들에게 5.18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어렵고 잔인한 부분을 최소화한 설명과 함께 5.18 정신을 상징하는 주먹밥 카드 도안을 만들었다. 이처럼 쉽고 친절한 설명과 재미있는 만들기 활동이 한 세트가 되어 1~2차시 안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계기교육 자료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많이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다. 놀이수업, 방탈출게임, 메타버스 등 점점 다양한 기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수업을 할 때마다 무언가 미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역사적 비극을 최대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떠먹여 주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 아이들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한 시간 수업을 잘했으니 된 것일까?
제주에서 수십 년간 4.3을 교육하고 있는 한상희 작가는 지난 3월 광주에서 있었던 그의 저서<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토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학교에서 4.3교육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는 4월이 아니라 그해 연말에 알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학교 내에서 평화와 책임의 구조가 얼마나 잘 정착되었는지가 4.3교육의 결과를 결정합니다."
즉, 계기교육이 진정으로 다루는 대상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다. 우리는 사회적 불의 또는 타인의 고통을 접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혐오와 반목 대신 치유와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의지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한 작가는 책의 마지막 장을 ‘회복적 정의’에 할애하며, 교실에서든 사회 전체에서든,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공동체가 회복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공동체가 파괴되는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면’한다. 둘째, 사건의 가해자 또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그 사건을 인정하고 ‘책임’을 인식한다. 셋째, 가해자와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은 피해자의 치유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참여’한다. 넷째,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치유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직면-책임-참여-화해'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화해다. 그래서 수많은 계기교육 수업이 앞의 단계들을 건너뛰고 성급하게 화해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초임교사인 내가 5.18에 대해 20분 정도 설명한 뒤 바로 주먹밥 카드를 만들자고 했던 것처럼. 그러나 주먹밥 카드에 '민주, 인권, 평화'라고 적는다고 그것들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하고 지난한 중간 과정, '책임'과 '참여'가 빠져 있다. 2014년의 세월호가 2022년의 이태원으로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증명하듯이, 책임과 참여가 빠진 화해는 가짜에 불과하다. 가짜 화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역시 “불쌍해요”와 같은 피상적인 타자화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현재 초등학교 현장은 재미와 즐거움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굴러가는 듯하다. 그래서 학생들의 눈물을 서둘러 닦아주고, 뭐든 '너무 슬프지 않게' 가르치려고 애쓴다. 나 역시 그 누구 못지않게 재미와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건 슬퍼하고 분노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직면은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을 슬픈 채로 두자. 책임과 참여는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을 어려운 채로 두자. 충분히 슬퍼하고 어려워한 뒤에야 우리는 진짜 화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또다시, 4월이 왔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4.16 계기수업이다. 나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 이를테면 노란 나비들이 창공으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이미지나 노란 풍선들이 가라앉은 배를 띄워 올리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대법원이 해경 지도부에게 무죄를 확정했다는 사실을, KBS가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단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직 많은 이들이 그때를 생각하며 눈물 흘린다는 사실도 전하고 싶다. 노란 리본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시민들은 아직도 유가족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비극을 섣부르게 봉합하고 화해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대신, 이 사회에서 '책임과 참여'가 정말로 어디까지 왔는지 함께 들여다보고 싶다. 그리고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생각을 한다. ‘이 수업이 쉽고 재미있지 않기를, 아주 슬프고 어려운 수업이 되기를’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