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기기, 분실·파손 책임은 누가?
“3월은 잔인한 달”
동료 선생님이 업무처리를 하다 허겁지겁 수업에 들어가며 툭 던진 농담이 시인의 언어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늘 그렇듯 ‘새로운 정책 보여주기’ 강박증을 가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교육 당국은 설익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밀어붙인다. 그 정책들을 고군분투하며 현장에 녹여내는 교사들 덕분(?)에 어떻게 어떻게 대한민국 학교는 굴러간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까? 이번엔 학교 여건과 주체들의 준비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을 위해 올해까지 16만 5천 명의 교사 연수를 실시한단다.
그런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스크린 중독’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정책들을 도입하고 있고 유네스코도 ‘2023 세계 교육 현황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기술 사용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지난해 2월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걸고 디지털 기반 교육을 몰아치고 있다.
안민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1월 기준 정부는 1조 6,257억 원을 투자하여 학생용 스마트기기 329만 대를 보급했으며 향후 3년간 추가로 1조 186억을 투입한다고 한다.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의 부정적인 영향은 검증의 영역이니 이는 차치하고라도 이 엄청난 양의 학교 물품을 누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디지털 기기는 기존 다른 비품들에 비해 분실과 파손의 가능성도 높다.
현재 각 시도별로 밝히고 있는 유지보수 방안은 제각각이다. 더 큰 문제는 ‘분실과 파손 시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이다. 이 문제로 이미 많은 학교에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전교생 500명이 넘는 한 초등학교에서 태블릿PC 3대를 분실한 일에 대한 책임 문제로 전교조 충남지부에 교권 상담이 접수되었다. 감사관실 주무관, 학교장, 행정실장은 당연하다는 듯 기자재 담당 선생님에게 책임을 물었다. ‘규정’대로 교사가 변상하라는 것이었다.
해당 선생님은 한 학급의 담임교사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스마트기기 보관함의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기기 사용을 희망하는 교사에게만 공유했으며 보안 유지를 당부했다. 대장을 만들어 기기 사용 시 작성하도록 안내도 마쳤다. 정말 오롯이 교사가 책임져야 할까? 하나씩 따져보자.
중과실과 고의가 아니면 변상 책임을 묻지 않아야
각 시도 「교육비특별회계 소관 물품관리 조례」에 따르면 학교의 물품은 아래와 같이 분류하여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위 조례는 행정안전부 매뉴얼을 토대로 제정된 것이어서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서 교육활동 관련 업무와 행정사무를 명확하게 구분해 놓은 학교조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해당 조례를 근거로 일부 학교에서 교사를 분임물품출납원으로 무분별하게 임명하고 물품의 출납, 유지보수, 보관 등의 책임을 부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위법성이 다분하다.
그렇다면 물품을 사용하는 교사에게는 어떤 책무가 부여될까? 「회계직원책임법」에 따르면 ‘물품을 사용하는 공무원’은 재산상 손해를 끼치는 경우(분실, 훼손) 변상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법령이나 그 밖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 한한다. 이는 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손해 배상 책임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일관되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국가배상법 제2조」에도 공무원이 ‘고의 또는 중과실’일 경우에만 해당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법적 보호망 없이 사사건건 공무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보신주의와 소극적 직무수행이 가장 쉬운 선택지가 된다. 따라서 위 사례처럼 당사자가 전용해 사용하는 물품도 아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주의 의무를 다했으며 고의나 중과실은 더더욱 아닌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분실 책임을 전적으로 교사에게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번 사안은 해당 선생님과 지부에서 공동 대응해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빈약한 물품관리 업무를 교사에게서 떼어내야 한다. 좀 더 단기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예비비 편성
실제 학교에서 일어나는 분실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통상적인 범위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실과 훼손에 대해 예비비를 편성한다. 예비비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면 구성원 간에 책임 공방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보관 및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 마련
디지털 교과서 수업을 위해 정부는 2027년까지 모든 학생 1인당 1기기를 보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수백만 대의 스마트기기가 추가로 학교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 기기들의 유지보수 및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은 학교의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유지보수는 전문적인 인력을 배치한 교육청통합지원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배상책임공제 보장 대상 확대 요구
교사들이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 학교에서 교칙에 의거 교사가 수거 및 관리하는 학생 휴대폰이 분실 및 파손 피해가 있으면 학교당 연간 2천만 원 한도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학교안전공제중앙회의 학교배상책임공제 특별약관을 통해서다.
관련 법령과 약관을 개정해 교육활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사의 다양한 배상 책임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본 제도의 취지가 제삼자에 대한 학교장의 법률적 배상 책임에 관한 공제이긴 하지만 각 시도교육청의 요구가 있다면 학교안전공제중앙회 측에서 검토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각 지부 단협에서 의제로 검토해 볼 만한 사안이다.
복잡한 교육 문제, 간단한 해결?
우치다 타쓰루 교수는 그의 책 <교사를 춤추게 하라>에서 “교육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이런 것은 간단하다’는 솔루션에 매료된다. 그리고 사태는 한층 악화된다. 이는 마치 서로 얽힌 실타래를 푼다고 갑자기 잡아당기거나 가위로 잘라도 사태는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말한다.
교육부는 여러 교육적 난제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디지털 기반 교육을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과연 ‘기초학력 저하, 자퇴 확산, 문제행동 아동 증가’ 등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소위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은 충분히 검증되고 준비된 정책일까? 교육활동이 법적 직무인 교사에게 수많은 전자기기 관리를 부담 지우는 것이 '미래 교육'이고 '교육혁신'일까?
기기 보급보다 더 큰 문제인 유지·보수·관리에 대한 명확한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현장에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가득하다. 무슨 정책이든 학교에서 매일 아이들을 만나며 건강한 삶과 학습의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책은 신중하게 펼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