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부터 전국 2,741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 운영이 시작되었다. 강원지역에서도 84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로 지정되어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바쁜 학기 초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3월 4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늘봄학교 운영 실태조사’에 많은 강원지역 선생님들이 응답했다. 이것은 그만큼 강원 늘봄학교가 ‘문제 종합세트’이기 때문이다. 누가 늘봄학교의 파행 사례를 찾는다면, “강원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강제지정된 늘봄학교
먼저 늘봄학교 지정 강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올해부터 정책적으로 늘봄을 ‘전면 실시’하는 전남과 부산을 제외하고 ‘선도 시범학교’의 형태로 늘봄을 운영하는 지역 중에 학교 신청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학교를 지정해 늘봄을 강제한 곳은 강원이 유일하다.
교육부는 전교조와 실무 협의에서 늘봄학교 신청과 관련해 학교가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에 안내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강원교육청은 아예 신청도 받지 않고 늘봄 선도학교를 강제 지정했다.
강원 교사들은 새학기를 준비하면서 속한 학교가 늘봄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일방 통보받았다. 노동조합, 학교, 현장교사 등의 의견을 모두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체계없는 늘봄학교
늘봄학교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예산 몇 푼 쥐어주고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늘봄학교가 기존의 방과후학교와 돌봄학교를 일원화하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 방과후는 방과후대로, 돌봄은 돌봄대로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추가로 늘봄학교라는 프로그램만 더 보태져 3개의 프로그램이 체계 없이 중구난방으로 돌아가고 있다.
▲ 강원교육청 늘봄학교팀 업무분장. ‘돌봄’과 ‘방과후수업’업무를 별도의 업무로 구분하고 있다.
|
도교육청의 계획도 이름만 늘봄학교일 뿐 ‘늘봄학교(초등돌봄)’, ‘늘봄학교(방과후학교)’, ‘늘봄학교(맞춤형프로그램)’ 세 가지 계획이 따로따로 공문으로 시행되어, 학교는 늘봄학교라는 하나의 계획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 가지 사업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교사에게 부과되는 늘봄 업무
교육부와 교육청은 ‘방과후’, ‘돌봄’을 포함해 ‘늘봄학교’ 업무에서 교사를 배제하기 위해 차질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계속 강조했다. 과도기적 조치로 한시적 정원외 기간제교사를 늘봄 기간제교사로 배치해 기존 교원에게 업무를 부과하지 않고, 2학기부터는 행정실무 인력을 배치해 모든 교사에게 늘봄학교 업무를 분리한다고 밝혔다.
강원교육청은 기존 방과후와 돌봄업무를 포함해 늘봄 업무를 모두 늘봄 기간제교사가 담당하도록 안내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다. 세 가지 프로그램이 따로 돌고 있는 것처럼 방과후와 돌봄 업무는 기존 교원에게 그대로 전가되었다. 심지어는 기존 교원 중 늘봄부장까지 임명하는 사례도 확인되었다.
강원교육청은 2월 셋째 주에서야 늘봄 업무를 담당할 기간제교사 채용을 시작했다. 새학기 시작 1주일 전까지도 늘봄 기간제교사는 3분의 2정도밖에 채용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 교육부 차관이 춘천에 방문해 현장점검을 했는데, 이때까지도 도교육청은 늘봄이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다고만 했다. 결국에는 새학년 시작 때까지도 전부 채용을 못 해, 채용이 진행 중이다. 또 제때 채용된 사람이라 해도 3월 4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 전 준비는 모두 기존 교사들이 할 수밖에 없었다.
3월부터 근무하는 기간제교사 중에서도 초등교사는 많지 않고, 이미 중등에서 정년퇴직한 60대 교사나, 교원 자격을 갖고 있지만 학교 근무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존 교사들에게 다시 방과후, 돌봄 업무가 넘어간 경우도 많았다. 또 이런 업무가 학교 경험이 없는 기간제교사에게 만만한 일일 리 없다. 늘봄 기간제교사가 1주일 만에 사직원을 내고 그만두는 학교도 속출하고 있다.
공문 협박으로 땜질하며 가는 늘봄
강원교육청은 2월 27일 학교로 공문을 보내, 교사를 투입해서라도 3월 4일부터 늘봄 맞춤형 프로그램을 반드시 운영하라고 통보했다. 2일 만에 프로그램 강사를 구할 수 있을까? 교감이 1·2학년 담임교사를 찾아가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늘봄에 들어가 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아무도 못 들어가겠다고 한 곳도 있다. 학교들이 2일 만에 준비를 못 한다고 교육청에 보고를 하니, 강원교육청은 준비 안 된 학교 명단을 문서로 만들어서 “여기는 집중점검 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내용을 다음 날 다시 공문으로 내려보낸다. 결국에는 교감·교장이 담당하거나 교사들이 조를 짜서 돌아가면서 땜질하며 늘봄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
교사들이 늘봄에 땜질식으로 투입되는 건 우리 아이 선생님이 전날에 제대로 수업 준비를 못하고 수업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가 수업 끝난 뒤 선생님과 상담하고 함께 관계를 맺는 시간이 없어진다는 뜻이고,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는지 보호자와 상담하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지난 3월 4일, 전교조 강원지부는 신경호 강원교육감이 늘봄학교 현장점검을 하는 곳에서 항의 피케팅을 했다. 이때 교육감은 “교사들이 사랑으로 봐주면 될 일을 과하게 문제 삼는다. 교사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하라. 교사들 남아돌면 그때 가서 ‘아이 저한테 맡겨주세요’ 할 거다”는 막말을 했다. 지역 공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육감이 제대로 된 학교 운영보다 실적 거양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늘봄 파행 사례들
교사는 학생을 교육하는 게 법적인 임무이다. 기간제교사도 ‘교사’이기에 늘봄학교 계획과 관리 업무를 시키기 위해 비정규직 교사를 채용한다는 건 사실 원칙적으로 맞지 않다. 늘봄 기간제교사도 교사이기 때문에 업무로 늘봄을 담당하지만, 주당 12시간 정도 교과전담으로 정규수업을 한다. 초등교사를 구할 수 없어 중등교원 자격 소지자를 임용한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 경우는 학생들에게 교원자격검정령 상의 표시 과목이 아닌 비전공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늘봄학교 운영하겠다고 중등 교원자격 소지자에게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 수업을 하게 하는 것이다.
중등 상업교과 교원 자격 소지자, 중등 중국어 교원 자격 소지자가 초등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해야 할까? 한 중등 교원 자격 소지자는 학교에서 도덕 수업을 요청해, 전혀 모르는 과목이어서 3월 3주까지 준비 기간을 요청했다. 학생들은 그때가 되어서야 처음 도덕 수업을 하게 된다. 늘봄 기간제 교사를 대신해 다른 담임교사들이 평가계획을 대신 짜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파행 사례들은 바로 학생들의 학습권 피해로 돌아간다. 채용된 중등 기간제 교사들도 초등학교 근무 경력은 80%만 인정되어 호봉 승급에도 손해를 보고 있다.
공간 문제도 심각하다. 학생 하교 후에 교실은 유휴공간이 아니다. 교실은 교육공간이면서 준비공간이다. 강원교육청이 공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한 교실당 500만 원씩 줄 테니 책걸상과 노트북을 사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걸 일반화하면 좋을 사례라며 늘봄계획서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강원지역 교사들은 크게 분노했다. “이러려면 늘봄을 교육청에서 해라, 장학사들 노트북 사주고 복도에서 일하라고 하고 거기서 돌봄해라”라며 성토가 이어졌다.
늘봄은 아동학대 행위
다음으로 늘봄학교 정책은 그 자체가 아동학대이다.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이 입학 첫 주부터 오전에는 정규수업, 오후에는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2시간을 더 앉아 있다보니 6시간씩 계속 같은 교실에서 앉아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다고 집에 보내달라고 울음을 터트린 일들이 부지기수로 확인되고 있다. 6교시(오후 3시)까지 같은 교실에 계속 앉아 있는 건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해도 힘든 일이다. 강원교육청은 초1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며 이런 일들이 부적응에 따른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늘봄은 예산낭비 정책
늘봄학교는 수요 예측 실패와 실적 쌓기 위주 운영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늘봄학교는 교육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서비스이다. 국가가 신청만 하면 무료로 다 제공해준다고 하니 많은 보호자들이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은 신청을 해두었다. 학교에서는 교육당국의 등쌀에 입학식 당일에도 추가로 신청을 받아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추가로 편성했다. 1학년 신입생이 5개 반인데, 늘봄 맞춤형 프로그램도 5개 반이 개설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입학식 당일에 만든 반에 제때 강사가 채용되었을 리 없으니 결국 교사를 늘봄강사로 투입한다. 유휴공간이 없는 학교는 1학년 담임교사들은 교실을 내주고 학교 빈 곳을 떠돌아다닌다. 다음날 수업 준비나 보호자와 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같은 시간 원래 1시부터 돌봄을 운영하는 1학년 담당 초등돌봄전담사는 학생이 없어서 3시까지 단순 대기를 하고 있다. 정부 발표와는 다르게 프로그램이 땜질로 운영되며, 아이들도 무리한 상황에 몰린다는 것을 알게 된 보호자들은 1주일 만에 많은 수가 늘봄 프로그램을 취소했다.
결국 실제 늘봄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은 각 반 당 6∼7명씩만 남았다. 이미 만들어진 반이기에 이런 상황에도 개설된 반을 없앨 수도 없다. 담임교사는 교실에서 쫓겨나고, 돌봄전담사는 학생이 없어서 2시간을 대기하고, 강사가 없어서 교사가 돌아가며 땜질하는데, 한 반당 몇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막대한 강사는 예산을 들여 채용하고 있다. 엄청난 예산 낭비인 것이다.
체계적인 지자체 돌봄체계 절실
지금 정부가 말하는 늘봄학교 정책은 모든 학교에 원하는 모든 학생들이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학원을 차려주겠다는 것이다.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늘봄은 실제로 예산만 내려왔지 정규 인력 충원도, 내용도 없다. 다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담임교사 쫒아내서 학교를 떠돌게 하고, 임시로 비정규직 교사 뽑아서 업무시키고, 교사들이 학생 교육은 못 하고 여기저기 땜질하고, 초단시간 일하는 노동자만 그때그때 뽑았다 잘랐다하고, 민간에다 외주주고 위탁 주고, 이러면서 국가가 책임지고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다. 정책은 이미 실패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저녁에도 자신의 자녀를 직접 돌보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인력과 공간도 없이, 지금처럼 학교에서 교사 땜질로 늘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눈속임이다. 시장에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학생들을 학교에 남겼지만 사실상 방치하는 것이다. 정부는 학교를 중심으로 돌봄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은 학교에서, 돌봄은 지자체'에서 책임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