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전교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학기 늘봄학교 운영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오지연 기자
|
“학교 적응도 안 된 초등1학년 학생들이 3시까지 돌봄도 아닌 프로그램 운영으로 학교에 있으니 많이 힘들어합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준비없이 갑자기 늘봄이 들어와서 다양한 문제가 생기는데 그 민원을 담임교사가 다 받습니다. 하교 시 아이와 만나지 못한 학부모가 울면서 전화합니다.”
교육부가 새 학기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늘봄학교의 실상을 보여주는 현장교사들의 이야기다.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3월 4일부터 11일까지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2741개교 대상으로 실시한 ‘1학기 늘봄학교 실태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개학 첫날부터 시행된 늘봄학교가 정부가 공언했던 것과는 달리 인력과 공간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진행되어, 현장교사들에게도 늘봄업무가 부과되면서 정규교육과정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설문조사 결과, 늘봄학교는 공교육 현장에 큰 혼란과 파행을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오지연 기자
|
전교조는 12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늘봄학교 운영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답 없는 늘봄학교, 정책 폐기가 답이다”라며 “정부는 늘봄학교 정책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돌봄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라”라고 촉구했다.
해당 설문에는 일주일 동안 전체 늘봄학교의 22%에 달하는 611개교가 참여했다. 전교조는 이번 조사에서 ▲교사를 늘봄 강사로 투입하여 수업 준비에 차질 ▲공간 부족으로 교육과정 운영에 악영향 ▲무분별한 기간제 교사 채용으로 혼란 발생 ▲늘봄 수요조사와 실제 참여 인원 격차 발생 ▲각종 민원 증가 등의 파행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를 보면, 늘봄 프로그램에 투입된 강사 인력 중 교사가 53.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교원(교감, 정교사, 기간제 교사 등)에게 늘봄 행정 업무를 부과한 학교도 89.2%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강사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도서·벽지 소재 학교가 많은 지역일수록 늘봄 운영에 교사가 투입되는 파행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정부의 늘봄업무를 교사에게 부과하지 않겠다는 공언이 ‘거짓’인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전교조는 그동안 늘봄학교 관련 인력, 공간, 예산 문제 등이 산적해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늘봄을 강행했고, 불과 개학 일주일 만에 기존 정규교육과정 운영에도 차질을 빚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현장교사들은 “수업 후 곧바로 늘봄 프로그램 운영에 투입되면 다음 날 수업 준비도 불가능하고, 기존 담당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또한, 교실을 늘봄교실로 내줘야 하는 상황에서 담임교사들은 별도 업무 공간이 없어 복도에서 업무를 하거나 한글 미해독 학생들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추가 학습을 지도할 공간이 없어 방과 후 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조사에서 정부가 강행한 늘봄 업무 담당 기간제교사 배치가 전혀 현실성 없는 대책이었던 것도 확인됐다. 대부분 고연령이거나 저연차 교사여서 실제로 중견교사도 하기 버거운 늘봄 업무를 기간제 교사들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외에도 채용된 기간제교사마저도 업무 과다로 그만두거나 늘봄을 신청했던 1학년 학생들도 늘봄학교 참여를 취소하는 사례로 이어지기도 했다.
▲ 여는 말을 하는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 오지연 기자
|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졸속 추진하고 있는 늘봄학교로 인해 교육기관인 학교가 교육하기 힘든 곳이 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전교조 늘봄실태 조사에 응한 교사를 교육청이 나서서 색출했던 일에 대해서는 “우리 교사들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입틀막으로 답하는 정부가 늘봄학교 정책에 대한 우려를 전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에도 입틀막으로 답하는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교육부의 늘봄 강행은 신학기를 맞이하여 늘봄을 다급하게 추진해야 했던 학교 현장, 갑작스레 늘봄 업무를 떠맡아야 할 교직원, 학교 적응할 틈도 없이 장시간 교실에 머물러야 했던 학생들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위압적인 ‘행정 폭력’이다”라고 비판했다.
▲ 현장발언을 하는 조영국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실장 © 오지연 기자
|
이 자리에서 조영국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실장은 “학교·교사·교원노조(단체)의 의견을 모두 무시한 일방통행식 정책은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라면서 “수요 예측 실패와 실적 쌓기 위주 운영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부와 전교조의 실무협의에서 ‘늘봄학교 신청을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에 안내하겠다’라고 한 것과 다르게 강원도교육청은 늘봄 선도학교로 84개 초등학교를 강제로 지정한 바 있다.
전교조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학교에 모든 책임과 업무를 떠넘기는 늘봄학교는 돌봄의 공공성도, 교육의 질도 담보할 수 없는 정책으로 진정 정부가 돌봄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미 존재하는 지자체 돌봄 기관들과 학교 돌봄을 연계할 방안부터 마련하라”라면서 “교사와 학생 모두 숨 쉴 틈도 없는 늘봄학교를 중단하고, 현장의 우려를 해소할 특별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촉구했다.
앞으로 전교조는 각종 파행 사례에 적극 대응하면서 늘봄학교 전면 도입 저지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