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락] '생'을 조금 '기부'하는 ‘생기부’

이재민 · 경기지부 부지부장(김포 고촌고) | 기사입력 2024/02/0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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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락] '생'을 조금 '기부'하는 ‘생기부’
입시 경쟁 지옥에 새우등 터지는 교사들
입시 수단이 아닌 진정으로 학생 성장을 기록하는 문서가 되길
이재민 · 경기지부 부지부장(김포 고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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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2/0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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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경쟁 지옥에 새우등 터지는 교사들
입시 수단이 아닌 진정으로 학생 성장을 기록하는 문서가 되길


선생님들의 야근 주범, 생활기록부

“오늘 야근하시는 분?”

“저요!”, “저도요!”

“네, 그러면 아홉 명 저녁 식사 배달시킬게요.”

 

이른바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 시즌’에 펼쳐지는 고등학교 교무실 풍경이다. 12명이 함께 생활하는 교무실에서 9명이 남아서 함께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는 이유는?

 

바로 생기부 작성 때문이다.

 

어마무시한 양의 생활기록부

고등학교 교사는 여러 학급에 수업을 들어간다. 만나는 아이들이 많다는 뜻은? 생기발랄한 아이들을 많이 본다는 뜻도 있지만, 엄청난 양의 생기부를 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지난해에 총 6개 학급을 들어가서 총 192명의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썼다. 그뿐 아니다. 담임 교사니까 자율, 진로, 행동발달 특기사항도 썼다. 동아리도 맡았으니까 동아리 특기사항도 썼다. 이렇게 한 명의 교사에게 요구하는 생기부 분량이 몇 글자인지 계산해보니 158,400자였다. 이는 A4 용지 105장 분량이다. 하하!!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교육청에서 모든 학생의 개별화를 강조한 이후로 더욱 고단해진 생기부 작업. 우리 선생님들도 모든 아이들의 활동을 세세하고 멋들어지게 써주고 싶지만 그 전에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고장 난다. 그리하여 ’(生)을 조금 기부하는 생기부‘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

 

 

입시 경쟁 지옥에 새우등 터지는 교사들

선생님들의 스트레스는 대입 관련 문서라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격화된다. 대입 전형 중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은 생기부가 당락의 주요 요소가 된다. 상위권 대학교의 경우 ’고등학교 생기부가 20쪽 이상은 되어야 합격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생기부의 양과 질은 중요하다. 이 때문에 학생,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례로 A학생이 1년간 활동한 내용을 모으니 쓸 수 있는 분량을 넘겼다. 담임 선생님이 고민했다. “아, 뭘 지우지?” 동료 선생님 왈, “그냥 선생님이 보시기에 덜 중요한 걸 지우세요.” 하자, A의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아유 쌤, 그러다가 민원 받아요. 애들이 수시 원서 접수 전에 생기부 들고 와서 자기 활동 왜 누락했냐고 울고불고해요.” 씁쓸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암만 돈독했어도 대학 입시 앞에서는 살벌해지는구나.

 

생활기록부에 대한 의문들

가끔 보면 학생의 글이 ’탄소 덩어리‘라면 선생님이 쓴 생기부는 ’다이아몬드‘다. 이게 학생 역량인지 교사의 글쓰기 역량인지 모르겠다. ’학생들의 역량은 대학에서 직접 판단해야 하지 않나? 왜 우리가 이렇게 입학사정관이 보기 좋게 만들어 줘야 하지?‘하는 의문이 생긴다.

 

친한 수학 선생님이 말했다. “생기부 쓸 때 국어 선생님들이 너무 부러워. 나는 정말 괴롭거든.” 아니다. 국어 선생님도 괴롭다. 아이들은 본인의 생기부에 내용을 추가하려고 정규 수업 활동 외에 심화 탐구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PPT를 만들어 꾸역꾸역 진로 관련 발표를 하며 “선생님, 이거 꼭 넣어 주세요!”한다. 나는 궁극적인 의문이 들었다. ’이거, 누가 행복한 거지? 생기부가 교사 고유의 영역은 맞나?‘

 

답은 뭘까?

생기부 작성이 힘겨워 하소연을 했으나 그렇다고 정시 확대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 과목당 월 1000만원 짜리 과외를 받는 강남 학생과, 사교육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어떻게 같은 출발선일 수 있겠나. 정시 확대는 사회경제적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그럼 생기부를 확대하나? 고등학교 교사들 죽어난다. 학생들이 직접 글을 써서 올리도록 하면? 아마 ’OO대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으로 생기부 써 드립니다!‘하는 업체와 학원이 횡행할 것이다. 대학에서 직접 학생들을 심층 면접으로 선발하면? 면접 학원에 학생들이 줄을 서겠구나.

 

아, 답이 없다! 결국 이 모든 고통이 끝나려면 대학 서열화가 해소되어야 한다. 학벌주의가 타파되어 ’파리1대학, 파리2대학‘처럼 집 가까운 대학에 들어가 진정한 배움을 얻는 사회가 도래해야 한다. 친구 머리를 밟아야 내가 올라가는 미친 경쟁 교육을 끝내야 한다. 대학 졸업 여부와 출신 대학으로 평생의 급여, 삶의 질이 달라지는 잔인한 사회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와, 고구마 캐려다가 무령왕릉 발견했다. 생기부 고통 말하다가 대학 평준화까지 왔다. 고등학교 교사도 ’교육‘을 하고 싶다. 더 이상 대학의 학생 선발을 돕는 보조자가 되기 싫다. 학생들 줄 세우는 역할 그만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생기부에 넣어 줄게. 이렇게 하면 생기부에 쓸 거 없어!“라고 회유, 협박(?)하며 현타를 느끼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진보적인 상상력과 진보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기부가 대학 입시 수단이 아닌, 진정으로 학생의 성장을 기록하는 문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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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알 2024/02/07 [09:52] 수정 | 삭제
  • 와.... 이거... 말투도, 접근법도... 모두... 제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간 건가? 싶었는데, 다 읽고 하트 누르니, 재민쌤 이름이 보이네요?ㅋㅋㅋㅋㅋㅋㅋ읽는 동안 속 시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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