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해 3차 전국교사집회는 '검은 점'으로만 모였던 집회에서 교원노조와 단체도 합류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6개 교원단체가 갈등을 만들지 말고 공동안을 만들어 교육부와 국회를 만나라”라는 요구를 5만 명이 모였던 집회무대에서 당당히 외쳤던 사회자, 안지혜 선생님! 선생님이 전국교사집회를 다룬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대 박사과정 중으로 알고 있는데 전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택한 이유를 알고 싶어요.
반갑습니다. 저는 교육 행정을 전공하고 있어요. 교육행정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제반 여건에 관한 것을 다 다룹니다. 인사 관리부터 시작해서 재정, 교육법, 교육 정책 등 폭넓게 다루죠. 그래서 처음에 이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거창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세상을 바꾸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라는 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하하하!
Q. 박사 졸업논문으로 교사집회를 주제로 잡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일까요?
교사집회를 졸업논문으로 쓰겠다고 했더니 교수님들이 너무 정치적인 소재 아니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부모님들도 박사학위 논문은 꼬리표로 평생을 따라다닐 텐데 ‘집회’라는 예민한 주제를 잡느냐, 원래 쓰려던 ‘교사 리더십’ 같은 주제가 좋지 않냐며 걱정하셨죠.
하지만 제가 1인 시위를 하고 이런 사람은 못 되지만, 이 정도 문제는 나서도 되는 문제 아니냐며 교수님과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의미있는 사례이고, 누군가는 꼭 한 번 교사집회라는 상황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Q.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었나요?
운동이요? 수학과 회장은 했지만, 운동은 안 했어요! 저는 보수의 면모를 많이 가진 사람이에요. 저는 대학 때 ‘왜 운동을 해야 돼? 이걸 했을 때 우리한테 얻는 이익이 뭐야?’ 이런 것을 더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서 ‘교사가 약자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당연히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Q. ‘교사가 약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저는 악성 민원을 받아도 그렇게 크게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제 둘째 동생이 중등 미술교사인데 학부모로부터 “선생님 같은 사람이 우리 애 담임을 맡아서 우리한테 너무 미안하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해들었어요.
친한 친구도 중등 음악인데, 그 친구도 학생한테 계속 시달리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휴직을 한 적이 있어요. 제 동기 중에도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가는 걸 보면서 이러다가 언젠가는 제대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안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막 드는 거예요.
교사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교육부의 정책들은 수요자 맞춤형 정책들만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없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애초에 교사들이 뭉치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노동조합들이 이렇게 작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본인이 목소리를 못 낸다면 목소리를 내는 사람한테 힘이라도 돼주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조합에도 가입을 했죠. 주변에 좋은 전교조 선배 조합원들이 많으셨어요.
▲ 3차 전국교사집회(2023년 8월 5일) 사회를 보는 안지혜 선생님 © 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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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젊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이 정말 큰가 봅니다.
편차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광주는 꽤 전교조 조합원들이 많은 도시라, 이런 교권 침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학교들이 많거든요. 광주에 신규가 적어서인지 아니면 이런 적극적인 대응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주에서는 사실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못 봤어요. 광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어요. 서이초 사건이 터졌을 때 평일인데도 서이초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게 저는 이러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 발령받아서 아동학대 신고하겠다는 학부모들을 몇 번 경험했어요. 어느 학부모 한 분은 한글을 모르는 아이를 방과후에 남겨 공부를 시키려 했더니 “선생님이 뭔데 우리 애를 가르치려고 드시냐?” 이러시길래, 제가 너무 황당해서 “제가 가르치는 게 직업이라서요. 직업병인가 봐요, 어머님”하고 말씀드렸어요.
어떤 한 분은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며 학교에 식칼을 들고 교실에 방문하신 적도 있어요. 아침에 교실로 식칼을 들고 와서는 “내가 선생님 앞에서 죽겠다”며 자해하는 걸 저에게 보여주겠다며 위협하셨죠.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좀 문제를 안고 계셨어요.
그래도 이런 일 있으면 옆반의 선배 선생님들이 “너무 놀랐겠다. 오늘 수업할 수 있겠어?”라며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셨어요. 교장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고, 여러모로 도움도 많이 주시고요. 집회총괄을 맡아 정부청사에 드론 촬영허가 관련 공문을 보낼 때 학교 이름으로 공문을 보내도록 허락해 주셨고요. 집회에도 같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저는 첫발령지 이 학교에서 막내 대접을 이렇게 받지만 사실 대도시 학교에선 그만큼 케어를 못해주는 것도 있고, 각자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으니 옆반 민원까지는 도와줄 만큼 선생님들의 마음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서이초 선생님을 생각하며 제일 슬픈 건, 결국 옆반 선생님한테조차 말할 수 없어서 혼자 분노나 슬픔을 삭히고 있다가 그랬을 것 같아 그것이 가장 슬픈 부분이었어요. 왜냐면 그 학교는 그런 민원을 이 반만 받는 게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 옆반 선생님들도 각자의 민원을 엄청나게 견뎌냈어야 했고 각자가 신경 써야 되는 일이 많은데 어떻게 옆반까지 신경을 쓰겠어요?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날, 동학년과 함께 모였다잖아요. 그 자리에서 동학년이 더 힘든 이야기를 각자 하니까 이 선생님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자기 반에 돌아갔다잖아요. 본인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텐데 “다른 선생님들도 힘들구나”하면서 갔을 것 같아요.
일반 직장에 간 친구들은 복사기 다루는 거 못 해도 가르쳐주는 그런 시기인데 교사들은 교실 하나를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사실 잘한다는 말보다는 보통 뭔가 잘 안 됐을 때 연락을 받는 게 더 많잖아요. 그러면 “내가 많이 부족한가 보다”며 자책을 많이 하게 되죠.
▲ 전국교사집회 운영진으로 참가한 모습 © 안지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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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사집회를 논문 주제로 잡은 건 사회자 경험이 크게 작용한 건가요?
3차 집회 때 사회를 맡으면서 운영진을 한 거고, 9월 4일과 16일 집회에도 운영진으로 참여했어요. 사회자 경험보다는 운영진 경험을 할 때 더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사회자일 때는 저한테 신경을 쓰느라 겨를이 없었거든요.
저는 사실 살면서 교사들이 집회를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노조 단위가 아닌 이런 비조합 상태로 교사 다수가 모여서 집회를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교사들이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첫 번째 모티브였어요. 왜냐하면 해외 논문을 낼 때,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주석조차 달지도 않고 ‘한국의 교사들은 보수적이다’, ‘한국의 교사들은 개인적인 판단을 주로 한다’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집회를 했잖아요. 다른 나라 교사처럼 집회가 일상시 되는 나라도 아닌데 몇 만이 모인 교사집회를 수차례 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순간이 아닌가, 이것을 논문으로 무조건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평일 집회라 모두에게 공격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처벌이 두렵지 않다라고 외치며 결국 집회를 성사시켰잖아요. 이제 누가 교사집단을 소극적인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또 막상 11차가 끝난 지금은 개인의 점집합으로 만난다는 게, 충분한 장점이 있었지만 조직이 아니기에 가지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 교사집회에서 동료들과 sns 계정 홍보를 하는 안지혜 선생님 © 안지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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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논문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예정이신가요?
기존에 관련 내용을 다룬 연구가 거의 없어, 어디까지 다루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우선 1부는 각 집회를 총괄했던 총괄자 또는 사회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면담을 통해 관리자가 아닌 일반 교사가 보이는 교사 리더십에 관한 부분을 다루거나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그들의 고민을 다루고 싶어요. 2부는 교사 집회에 집행부로서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3부는 교사집회에 집회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해요.
저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거든요. 교사들이 이렇게 따질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에 너무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집회를 하는 과정에서도 정치적이라는 말에 그렇게 사람들이 얽매였던 거나 어떤 노조들이 나서는 거에 망설인 것도 사실 다 정치적 중립성에 메인 문제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제가 과연 덤덤한 말투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좀 들어요.
그리고 집회참가자들이 참여한 동기가 뭘까 궁금한 것도 있어요. 외국교사들의 집회 동기는 보통 외적 보상들이거든요.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교사의 처우를 개선해달라거나.... 근데 우리도 처우 개선이긴 하지만 또 그 느낌은 다르다고 저는 판단했거든요. 교사들이 뭘 바꾸고 싶어, 법 연구회까지 만들어 가며 이런 집회를 하고 싶었나 그런 게 궁금했어요. 수십만 명이 넘는 교사가 행동을 했다는 그거 자체가 갖는 이유가 뭘까, 무엇이 교사를 움직였을까 이런 이야기를 논문에 담아보고 싶어요.
Q. 정치 얘기가 나왔으니 질문 드리면, 교총과 교사노조의 대표격인 분들의 이번 국회 진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부에서 ‘폴리티처(politeacher)’라고 하던데, 과연 이분들이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가지고 활동을 해 주실 건지 아니면 ‘폴리’에 중점을 두고, 자신이 ‘티처’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실지를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이분들이 무슨 목표로 어떤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가 저는 매우 궁금해요. 처음에 기사났을 때 “엥?”하며 물음표 2만 개는 머릿속에 뜨더라구요. 이분들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하실지가 저는 참 중요하다 생각해요.
Q. 집회 사회자 이외의 다른 일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운영팀에서 번역과 홍보일을 맡았어요. CNN 등 교사집회를 다루는 외국 언론 인터뷰에도 참여하고, 통역일도 도왔어요. 해외에도 교사집회를 알리고자 영문 인스타그램 (k-teachers)을 몇 분의 선생님들과 지금도 운영하고 있어요. 해외 언론뿐 아니라 해외 교사들도 우리나라의 교사집회에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집회 사회 후 어떤 일들이 일어나거나, 변화가 있었나요?
집회 사회를 본 후에 근무하는 학교로 간식이나 선물 등이 오기 시작했어요. 보낸 분 성함도 없이 그냥 ‘경기도에서’라고만 써서 편지와 간식을 보내시기도 하고, 책을 쓰신 분이 책 선물도 보내주셨어요. 학부모님들께서도 전화를 하시거나, 메시지로 응원의 말을 보내주셨어요. 9월 4일에 재량휴업일 지정을 두고 다른 학교들은 다툼이 많았는데 저희는 학부모회에서 먼저 플래카드를 달아주셨거든요. 선생님들을 무조건 응원한다고. 무척 감사했었죠.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사람도 아닌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변화를 마주하게 된 게 아닐까요? 살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받은 경험은 거의 처음이었고, 대외적인 매체에 등장하게 된 경험도 많지 않았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조금 더 반성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도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응원의 편지(왼쪽)와 학부모님들이 보낸 선물(오른쪽) © 안지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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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혜 선생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국교사집회의 과정과 가치를 잘 담은 논문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