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연구년은 시혜적 지원인가?
몇 년 전, 모 교육청 학습연구년 교사들의 결과보고회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1년간의 연구년을 끝낸 교사들의 표정은 학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환한 표정이었다. 유급으로 1년간 학교 밖을 떠나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행복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학습연구년 참여 경험이 있는 교사들을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참여 교사들은 ‘교직에 대한 만족도와 사기가 높아지고, 학교 복귀 후 교육활동에 열정을 다하고 가르침에 몰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학습연구년은 스스로 수립한 연구계획에 따라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자, 교직생활로 인한 소진을 만회할 수 있는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된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모든 교사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연구년은 교원연수 중 ‘특별연수’에 해당한다.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 제13조에서 ‘특별연수 대상자는 근무실적이 우수하고 필요한 학력 및 경력을 갖춘 사람 중에서 선발하고,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가 우수한 사람 중에서 선발’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선발에 선발을 거듭해 시혜를 베푸는 인상의 규정이다.
각 시도교육청의 2024년 학습연구년 선발 인원을 살펴보았다. 지역에 따라 선발 인원이 큰 차이를 보였다. 지역 교사 수 대비 0.04%에서 0.45%까지 다양했다. 같은 국가공무원이라도 동일한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연구년 프로그램의 질이나 내용도 천차만별이었다.
▲ 2024년 전국 시도교육청 학습연구년 교사 선발 인원 및 교사 수 대비 퍼센티지. 지역마다 선발 인원수의 차이가 크다. (서울은 6개월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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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연수휴직도 왜이리 인색한가?
대학교수들은 자유로운 연구와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유급 안식년을 7년마다 신청할 수 있다. 공무원도 무급이지만 자기개발휴직이 존재한다. 공무원은 5년 이상의 경력이면 자기개발휴직을 쓸 수 있고, 10년마다 1번씩 가능하다(공무원임용령 제57조의 10). 예를 들어, 30년 이상을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3번의 자기개발휴직이 가능하다.
하지만, 교사들은 어떨까? 교사는 재직기간 10년 이상일 때 교직생애 단 한 차례(1년 이내)로 한정하고 있다(교육공무원법 제44조).
교수처럼 유급도 아니며, 공무원처럼 여러 차례 자율연수휴직을 쓸 수도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전문성, 품성, 자질을 강하게 요구받지만 정작 국가로부터의 지원이나 혜택은 여러모로 미비하다. 교육기본법(제14조)에서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교사의 법적 의무로 정해 두고,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이처럼 교사 전문성 개발을 위한 재정과 기회를 인색하게 설정하고, 교사 개인의 특성을 배려하지 않은 소극적이고 통제 중심의 교원 전문성개발 정책을 펴고 있다. 의무연수는 많아 교사들을 ‘수동적 관객’으로 연수에 참여하게 하고, 연수내용은 현장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세계 수준의 교육 체제를 갖추려 노력하는 싱가포르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교직 경력주기에 따라 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이나 요구에 맞춰 섬세하면서도 체계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신규교사에게는 ‘수업시수 적정화, 담임배치 최소화, 멘토링제’를, 12세 이하의 자녀를 둔 교사에게는 ‘유연근무제’를, 6년 이상 경력 교사에게는 자기 발전기회를 위한 재정적 지원과 독립적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며 전문성 개발에 힘쓰도록 맞춤 지원하고 있다. 교직 생애주기를 고려해 개인의 필요를 배려하며, 아낌없는 재정 지원과 체계적인 전문성 개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교사의 소진과 전문성 개발을 챙기는 교원 정책 필요
우리나라는 우수한 인재인 교사를 학교에 뽑아 놓고, 전문성 개발을 지원하는 재원도, 시스템도, 의지도 무척 미비하다.
사람은 성장하려는 욕구가 있다. 하물며 배움의 장에 있는 교사들의 성장 욕구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누릴 수 있는 학습연구년제가 아니라 교직 생애에서 누구나 한 번씩은 학습연구년을 신청할 수 있고, 10년마다 1번씩 ‘자율연수휴직’도 낼 수 있어야 한다. 전교조는 이미 지난 2000년 당시, 교육부와 단체 협약에서 급여 100%를 보장하는 ‘자율연수휴직제’ 도입을 체결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제도화하지 않았다.
소진한 교사에게 충전의 기회를, 전문성 개발을 원하는 교사에게 성장의 기회를 지원하는 것은 교사 개인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국가와 교육부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법 개정과 섬세한 연수시스템 정비, 재원 확보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 교사들의 교직에 대한 만족도는 날로 떨어지고 있고, 자긍심도 바닥을 치고 있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 학교의 앞날은 어둡다.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