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앞에서 애도한다
“수험생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수험생 여러분의 밝은 미래를 응원합니다.”
정치가 실종되고 정쟁만 남았다는 우리나라에서 여야가 한마음이 되는 기적은 수능 시험장 앞에서 일어난다. 나름 ‘진보’ 교육감도 예외 없다.
수능을 앞두고 각 정당의 지향 차이와 상관 없이 유권자인 수험생의 꿈을 응원하는 현수막 문구가 각종 정치인과 교육감들의 ‘이름’으로 붙어 있는 수능 시험장 학교 앞을 지나면서 나는 마음이 무겁다.
비행기와 비둘기마저 통제하는 수능일, 화려하지 않은 옷에 소리 안 나는 신발을 신고 방송에 따라 제발 아무 민원이 없기를 바라며 감독으로 복무해야 하는 중등 교사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것은 아니다. 수능 감독으로서의 힘듦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그보다는 더 깊은 슬픔이 있다. 상위의, 최상위의, 극상위 학생까지 가려 일렬종대로 수험생들을 세우고야 마는 수능의 폭력성이 아직도 이 사회에서 너무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무겁다. 누군가가 승리하면 다른 누군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경쟁 교육의 최정점인 수능을 수험생 모두가 잘 보기를 바라는 이 거대한 모순 앞에서 답답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외침에 응답하고자 했지만, 아직도 견고한 경쟁 교육 체제 앞에서 무기력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나는 애도한다.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 현장에서 애도한다
나는 특성화고 교사다. 청소년들이 일찍 찾은 꿈을 응원하는 곳이라는 직업계 고등학교, 이곳은 요즘 신입생 모집을 위한 경쟁이 뜨겁다.
황금돼지띠여서 많이 태어났다는 올해 고1 학생들 덕분에 2023년 신입생 모집은 나름 선방했는데, 2024년은 알 수 없다. 고등학교 입학생들이 확 줄어드는 데에다 중학생들이 직업계고 진학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특성화고마다 학급 감소를 걱정하는 형편이고, 몇 학교는 존폐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그래서 특성화고에서는 신입생 모집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 학교에 많이 오면 다른 특성화고가 미달일 테고, 다른 특성화고에 많이 가면 우리 학교가 미달이 되는 구조라는 걸 모두가 알지만 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홍보를 나갈 학생들을 꾸리고 홍보내용과 선물을 마련해 교사와 함께 조를 편성해 각 중학교로 홍보전을 나가느라 교사들도 학생들도 심신이 고달파진다.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이 안 되는 건 학교나 교사의 잘못이 아니건만 책임은 오롯이 신입생 미달인 특성화고 교사들에게로 돌아온다.
중학생들이 특성화고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갈 수 있는 변변한 일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성화고에 온 학생들은 그래서 이제 특성화고 전형으로 대학 갈 궁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계고의 이 홍보전은 수능일인 오늘 하루 쉬고 내일부터 다시 펼쳐질 것이다. 결말이 정해진 직업계고의 홍보전을 보며 나는 다시 애도한다.
그리고 나는 희망한다
십대의 꿈을 이야기하는 이맘때면 마음이 무겁다. 우리 사회는 십대 청소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일까?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고사하고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별로 없다. 각종 스펙으로 무장하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부모 세대보다 잘살 수 없다는 지금의 십대들. 그 부모들은 맞벌이를 하고 빚을 내면서 버텨왔지만 이제 그리 해도 현재의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경제 위기를 지나고 있다. 이대로 십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골고루 돌아갈까?
이 와중에 정부는 수능 중심 사교육을 강화할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았고, 일부 업종부터라도 주 52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든 부모들을 더 일하게 하려고 늘봄을 확대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학교에 있으라 한다. 교육과 노동이 더 힘들어지는 사회에서 입시 경쟁에 뛰어들었든 일찌감치 포기했든 간에 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거대한 경쟁 체제에 들어가서 버티는 청춘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다. 그래서 십대와 함께 살아가는 교사로서 나는 애도한다.
깊은 슬픔을 마주하는 애도의 끝에서 만난 것은 역설적으로 다시 꿈이다. 입시경쟁교육을 넘어서는 새로운 교육 체제를 세우는 꿈. 저마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찾아 노동할 수 있는 사회, 그 노동이 부동산보다 가치로운 사회를 세우는 꿈. 오래된 꿈이고, 많은 이들이 함께 꾼 꿈이다.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주인으로 살아가는 많은 교사들과 청소년들, 노동자들을 나는 만나왔다. 그 만남의 지점에 전교조가 있다. 우리들을 함께 꿈꾸게 하고 함께 나아가게 하는 건 우리들 자신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희망한다. 불평등 양극화 사회를 뒤집어 출생률 0.78명의 불모지를 다시 생존 가능한 땅으로 일구기를, 그 과정에서 오늘의 슬픔을 함께 하는 당신과 내가 더 큰 우리로 만나기를.
수능일인 오늘 하루도 우리 모두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