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공교육 멈춤의 날’, 수능일
전 국가적 비상일인 수능일이다. 올해도 은행 및 관공서의 출근 시간은 한 시간 늦춰졌고, 영어듣기평가가 치러지는 시간에는 항공기 이착륙마저 전면 금지되었다. 수험장이 된 교실과 감독교사 차출로 많은 중고교가 재량휴업일이 되었다. 진정 중고교 ‘공교육 멈춤의 날’이다.
50만 수험생 이상으로 긴장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수능감독 교사로 ‘차출’된 중고교 교사들이다.
극한 업무, 수능감독
중고교 교사들에게 ‘11월의 공포’로 다가오는 수능감독은 어떤 부담과 문제점을 갖고 있을까?
수능은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치러지지만, 한 달 전부터 감독교사 명단 제출 공문이 내려오고 이에 맞춰 차출 교사 확정과 수능장 세팅을 위한 공문작성으로 교무부장들의 업무는 시작된다. 차출 명단에서 빠지기 위한 교사들의 눈치 작전과 민감한 반응으로 교원 간 갈등도 빈번히 일어난다. 명단에서 빠지기 위한 진단서 제출로 벌어지는 관리자와의 갈등은 매년 들려오는 소리이다.
전교조가 2021년 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수능감독제도 개선을 위한 긴급설문조사’에서 응답교사의 93.6%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능 감독관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수능 감독관 지정시 교사 동의를 구하는 학교는 33%에 불과했다.
차출 명단이 확정되면 수능장으로 지정된 학교의 담임교사는 일주일 전부터는 대청소와 사물함 정리로 분주하다. 특히 방송담당 교사의 긴장은 극에 달한다.
예비소집일 감독관 연수에서 ‘서약서’는 사라졌다지만 문구가 살짝 바뀐 ‘위촉 확인서’에 교사들은 기계적으로 사인하며 머릿속 비판적 생각을 멈추려 애쓴다. 책자 하나인 매뉴얼을 숙지하고 몇 시간의 지루한 연수를 긴장하며 듣는다. 수능 전날 밤, 숙면은 기대조차 하지 못한다.
드디어 수능일! 눈에 띄지 않는 복장, 소리나지 않는 신발을 장착하고 새벽공기를 가르며 수능장으로 달려가면 어제와 똑같은 연수가 다시 이어지고 관리자들의 민원에 대비한 단속의 말들은 긴장도를 더 높인다.
연속 감독이 아니길 기원하지만 늘 기대만큼 운이 따르지 않기도 한다. 중학교 교사는 익숙치 않은 시험과정에 정감독까지 맡으면 어깨 경직도는 더해진다. 몇 년간 교사들의 노력으로 감독 의자는 쟁취했지만 이마저도 편하게 이용할 순 없다. 긴장과 지병으로 감독교사가 감독 중 실신했다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다.
감독교사들이 소심하게 바라는 건, 육체적 심리적 고통 후 아무런 민원 없이 고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매년 감독교사를 상대로 한 민원과 소송은 이어지고 있다.
부담과 두려움의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수능은 단순히 대학에서 수학(修學)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시험이 아닌, 평생 따를 임금과 학력, 학벌에 영향을 끼치는 무게감을 갖고 있는 시험이다. 혹자는 교사들에게 "하루 정도 제자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감독을 하면 되지, 수당도 받겠다 무슨 불만이 많냐"고 한다. 하지만, 수험생이나 학부모에게 수능감독 교사는 ‘스승’이나 ‘선생님’이 아닌, 철저히 공정한 게임을 치르도록 도와주는 ‘심판’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정한 ‘공정한 기준’에 위반될 경우, ‘민감한 소비자’로 변신해 민원이나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을 대한민국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기에 혹자들이 말하는 스승관이 수능에서는 적용되기 힘들다.
수능감독 과정에서 소송에 휘말릴 경우 교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냐는 <교육희망> 질문에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국장은 “국가배상법에 따라 수능 감독 중 사고에 대한 배상책임 주체는 국가(교육부)이다. 경과실이 아닌 고의 또는 중과실인 경우에만 국가는 배상한 금액에 대해 교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서이초 사건 이후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교사에게 변호사 동행과 변호사비 지원 등의 법률적 서비스는 등장했다 하더라도 교사 개인이 민원과 소송을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수능감독 중 일어난 소송의 경우도 예외일 수가 없다.
긴급 해결책은 무엇인가?
교사들은 수능감독과 관련해 몇 가지 요구사항을 말하고 있다.
첫째, 인력 충원이다. 인력 충원이 되어, 현재 기본 3시간 감독에서 2시간 감독으로 낮춰달라는 요구이다. 중고교 교사 차출로도 충원되지 않을 경우, 연수를 받은 대학 인력을 부감독으로 지정해 운영할 방안을 강구해 달라는 내용이다.
둘째는 수당 인상이다. 기본수당이 작년에 비해 올해 만 원이 올라 17만원이 되었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그 돈을 주고서라도 감독을 빠지고 싶어한다. 교사들의 부담감에 비례하지 않는 금액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교육희망>이 교육부 담당자와 통화를 한 결과 “수능 감독에 대한 교사들의 부담감은 알고 있다. 그래서 감독용 의자 준비, 매년 수당 인상, 소송에 대비한 단체보험을 드는 등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인력 활용에 대해 묻자, “현행법상 수능은 교육부장관 관할이고 시도교육감이 시험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시도교육감 소속이 아니라 인력 확보가 어렵다. 법 개정 후 가능하다”는 답을 했다.
매년 수능 후 평가회를 하고 있다는 교육부 관계자들은 예산 확보와 법 개정을 통해 우선 이 두 가지 요구사항이라도 빠른 시일 내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개선은 경제적, 육체적 해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교사들의 피소송 부담감은 덜 수 없다. 근본적 해결책은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는 상대평가 시험인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대학수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문을 닦을 능력(修能)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 되어야 하고, 그 방식은 절대평가로 가야한다는 것이 전교조와 수많은 교육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이다.
경쟁교육에 내몰려 우리 사회가 다함께 피폐한 삶을 지속하지 않기 위해서 ‘수능의 절대평가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수능 절대평가화는 감독교사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과 소송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