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원 칼럼] '22 대 4', 우리교육의 민낯

서부원 교사 | 기사입력 2023/11/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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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원 칼럼] '22 대 4', 우리교육의 민낯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 앞에 특기와 적성 따위는 쉽게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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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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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 앞에 특기와 적성 따위는 쉽게 무시된다

▲ 서부원 교사

 

‘22 대 4’

 

우리 학급 전체 26명 중 이과와 문과계열 교과 선택 비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학교와 학급도 수치가 비슷할 것이다. 여학생의 경우, 문과의 비율이 아직 높다지만 역전은 시간 문제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대학마다 이과 계열 수험생의 ‘문과 침공’이 현실화하면서 최근 급격한 이과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태 전 통합 수능 체제가 시작된 이후 문과와 이과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는 통상 구분해 부른다. 선택한 교과에 따라 대강의 진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대입을 종착역 삼은 아이들에게 교과 선택의 기준은 수능 응시 과목일 수밖에 없고, 반 편성도 선택 교과에 따라 이루어진다.

 

대개 수학 선택 과목과 탐구 과목에 따라 문과와 이과를 구분한다.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면 문과고, ‘미적분’을 선택하면 이과로 친다. 문과생이 ‘미적분’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대학마다 내신 성적만큼이나 선택 교과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과생이면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를 모두 이수하는 추세여서 둘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

 

당장 ‘미적분’을 선택하지 않은 네 명의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이미 중학교 때부터 수학과 담을 쌓은 경우라서, 수학 수업은 온전히 잠자는 시간이다. 그들이 선택하는 사회 탐구와 교양 과목 수업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학교 교육과정에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무슨 과목을 선택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과를 선택한 22명 중에도 ‘수포자’는 적지 않다. 인문계고에 진학한 뒤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와 ‘해도 안 된다’는 현실 사이에서 무릎을 꿇은 아이들이다. 스스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줄 알면서도 ‘진인사대천명’을 되뇌며 밤낮으로 수학 공부에 ‘올인’하는 모습이 가엽기까지 하다. 수능이 ‘수학(數學)능력시험’이 돼버린 입시 현실의 씁쓸한 풍경이다.

 

그들 중에는 자타공인 ‘역사 덕후’도, 별명이 ‘움직이는 한자 자전’인 아이도 있다. 뼛속 깊이 문과인 그들이 이과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역사와 한문 실력만으로는 밥벌이가 안 된다는 거다. 아울러 1등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자신의 특출난 재능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도 했다.

 

그들의 선택을 좌우한 건, 교사와 학부모 등 기성세대의 일관된 ‘조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과 계열 전공이 졸업 후 상대적으로 취업의 문이 넓다는 이야기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이젠 중학생들도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자조적인 표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어른들의 경험담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 앞에 각자의 특기와 적성 따위는 쉽게 무시된다. 특기와 적성에 부합하는 직업을 갖게 되는 건, 어디까지나 ‘이상’이라고 전제된다. 발에 맞지 않은 신발도 신다 보면 발이 신발에 맞춰지듯, 진로가 정해지면 그에 맞춰 자기도 몰랐던 특기와 적성이 발현되기도 한다며 다독인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처음으로 마주하는 커리큘럼이 ‘흥미 적성 검사’다. 아이들 각자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서다. 자신의 적성은 물론, 강점과 약점, 어울리는 직업 등을 다각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이와 유사한 진로 탐색 활동이 1년 내내 계속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진로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그저 16가지의 성격 유형으로 범주화한 MBTI처럼 ‘심심풀이 땅콩’일 뿐이다.

 

지금 인문계고는 ‘수포자’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이과를 선택하고,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낮잡아보며, 진로 탐색 과정을 ‘쉬는 시간’으로 여기는 요지경 속이다. 이 와중에 아이들의 진로는 성적에 따라 일렬로 재배열된다. 최상위권이면 열이면 열 무조건 의치대를 지망한다. 성적이 소득과 정비례하는 현실에서, 각자의 진로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성적이다.

 

‘수포자’도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 당당하게 살고, 최상위권이 공직자나 과학자가 되어 사회에 봉사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성적 하나로 서열을 매겨 미래세대 아이들의 다양한 꿈들을 획일화하고 사장시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이는 공동체적인 견지에서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상식적이지도 않다.

 

2024학년도 수능 응시자와 의대 정원을 기준으로, 전국의 수험생 중 0.008%만이 의사가 될 수 있다. 물론, 선발 기준은 성적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다섯 개 중 하나를 고르는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에 무참히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라야 의사가 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22 대 4’는 배가 산으로 가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는 숫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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