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혜영 선생님은 경기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40년 가르치시다가 2020년 8월에 안곡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셨습니다. 2016년 10월, 열악한 방송 노동실태를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10·29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으로 참여해 출간된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교사들에게 알리고자 교육희망에 기고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아들 한빛의 7주기(10.26)와 이태원참사 1주기(10.29)를 맞으며 나만의 의식을 갖추고 싶었다. 먼저 서울광장 분향소 지킴이를 신청하고 추모 기간에 함께 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보라 리본을 만들면서 유가족들을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는데 나의 지난 시간이 이입되어서일까 1주기가 다가올수록 유가족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졌다. 가슴이 아팠다.
나처럼 어느 날 갑자기 유가족이 됐는데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고 밀어내고 싶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까? 내가 그랬듯 그날 이후로 멈춘 시간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안간힘으로 버티어내고 있는데 1주기라니? 나도 겪었지만 참사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은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자식이 죽어도 애도는커녕 슬픔을 누른 채 진상규명을 해야 하고 거리에서 투쟁하느라 애도는 뒤로 미루어진다. 특히 이태원참사처럼 1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뀐 것 없고 절망적일 때 기약없이 유보되는 애도는 유가족을 피폐하게 만든다. 159명의 우주가 사라졌는데도 국가도 사회시스템도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유가족 개인이 알아서 추모하고 치유해야 하는 이 현실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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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으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최초의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 함께했다.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고자 약 9개월 동안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형제자매들의 애타는 마음과 트라우마, 참사 이후의 삶을 오롯이 기록하고자 했다.
유가족이 유가족을 인터뷰하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다. 은유 작가는 ‘포옹의 글쓰기’라고 용기를 주었지만 그동안 담담해졌다고 자신한 기억과 상처들이 올라올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이태원참사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측은지심'이나 '동정'이 아닌 '공감'으로 유가족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나를 다독거렸다. 아니 그들의 곁에 서 있고 싶었다. 내가, 우리 가족이 한빛 없이도 7년간 버텼든, 견디어냈든, 살아온 것은 한빛을 기억해 주고 곁에 있어 준 사람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59명의 이태원 희생자 대부분이 청년이어서 많이 힘들었다. 한빛이 겹쳐 보여 고통스러웠다.
벌써 11월이니 학교는 학기말고사와 생기부 작성 등으로 바쁘고 그 틈새에 올해 교육과정 평가와 내년도 교육계획수립으로 정신없을 것이다. 학년말 학교는 몸과 마음이 모두 어수선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하루가 휙휙 지나가는 걸 알기에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책읽기모임을 제안하기가 정말 미안하다.
그럼에도 선생님들께 고백하고 부탁드리고 싶다.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픈 159개의 별들이 그들의 존재만큼 찬란하게 사회를 비출 수 있게 함께 읽는 자리를 마련해 유족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한다. 유가족들은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슬픔을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억할 의지를 만나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식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곁에 두고, 다시는 자신들처럼 파괴되는 가정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1년 전. 환하고 눈부신 얼굴들이 아닌 '이름 없는 국화꽃',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 참사가 아닌 '사고'로 왜곡시켰지만 우리는 이 망각에 저항했고 개인적 애도를 넘어 사회적 애도로 159명의 별을 추모했다. 그날 이태원에서 멈춘 159명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공감과 연대로 다시 묶어내 우리가 응답할 차례라고 교사들이 외쳐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교실에서 사랑했던 아이들이었으니까.
▲ 이한빛PD의 부모님인 이용관, 김혜영 퇴직조합원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참여해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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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학습공동체나 교사동아리 등 모임이 가능하시다면 원하시는 날짜에 전국 어디라도 유가족과 작가단이 찾아가려 한다. 학생동아리도 만나고 싶다. 형제자매 인터뷰를 하면서 이태원참사에 대해 다 이해하고 있음이 엄청난 착각임을 알았다. 그 부끄러운 충격을 같이 나누고 싶다. 그것이 한빛과 159명의 별이 그토록 살아가고 싶었던 미래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의 수익금 일부는 희생자를 기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공익적 활동에 기부된다니 학교 도서관에 비치해주시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아무 희망도 잡을 수 없는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선생님들께서 손잡아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신청: 1029itae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