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호 칼럼]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한민호 · 제주서중 | 기사입력 2023/09/27 [11:44]
오피니언
오피니언
[한민호 칼럼]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교사의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민호 · 제주서중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23/09/27 [11:4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교사의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 한민호 교사

 

몇 달 전 아내가 대학 동기 A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몇 년간 기간제 교사를 하던 A가 임용고시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른 직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A는 자신이 1년 동안 만나게 되는 사람이 고작 7~8명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새롭게 하게 된 그 일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자신이 기간제 교사일 때에는 매일 아침 성호를 긋고 학교로 출근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20~30%의 에너지 정도만 쓴다고 했다. 아내와 난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한 반에 30명, 하루에 4시간, 그러니까 120여 명을 만나는 거네.’

 

우리는 하루 120여 명을 만난다. 우리가 그들과 펼치게 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생각해 보거나 그들의 보호자와 만나 불편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매일 아침 성호를 긋고 학교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는 120명과 벌이는 줄다리기를 제법 잘 버티어 온 것이다.

 

한편 작년 동학년 선생님들과 대화할 때면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어’로 시작해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대부분 마무리가 되곤 했다. 이것은 학생 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줄다리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많은 업무들이 정보화되었지만 학생 평가나 기록 등에서 철저히 처리해야 하는 것들은 증가했고, 학교 안팎으로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각종 지침이나 예방 교육이 추가되었다. 사라지는 업무는 존재하지 않고 자꾸 새롭게 뭔가가 생겨나기만 했다. 도대체 학교와 교사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분야와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학교와 교사 개인에게 주어지는 책임들이 쌓여가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들을 빼앗겨 왔다. 이건 마치 학교 현장에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의 회색 신사가 나타나 많은 선생님들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랄까? 선생님들의 시간을 ‘쓸모 있는 시간’과 ‘쓸모 없는 시간’으로 칼같이 나눈 뒤, 최고의 효율과 역량을 지닌 교사로 만들려고 한다. 달콤한 몽상에 잠길 시간이나 동료들과 수다를 떨 시간은 철저히 무용한 시간으로 간주하고, 교사들에게는 오직 각종 평가와 감사, 컨설팅에 맞추어서 수업은 물론 업무 처리, 평가, 생활기록부 작성, 연수, 협의회, 교사 동아리 등 해야 할 것들을 줄지어 제시하였다. 그야말로 숨쉴 틈이 없어 어느 것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에도 벅찬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혁신학교, 회복적 생활교육, 수업 연구 동아리, 학생 인권과 학생 자치, 민주적인 교직원 회의와 같이 긴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움직임들이 학교 현장에서 꾸준히 실행되기가 어려웠다. 뭔가를 해내고 있으면서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이 모순적인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결국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와 같은 움직임들이 학교 현장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건 많은 교사들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그것을 감수한 결과가 아닐까?

 

매일 아침 성호를 그으며 학교로 향하던 교사의 긴장감,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동료 교사들과의 한숨, 그리고 홀로 책임을 떠안던 교사들의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렇듯 각박한 노동 현장 속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시선에 갇혀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교육자는 성직자만큼 신성한 직업이라는 그 말은 이제 저 멀리 던져버리고 우리의 노동 환경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그동안 교사 개인이 책임을 떠안았던 학교 구조의 문제를 드러내고, 교사의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충분한 교사와 지원 인력, 그리고 시스템의 확보, 학급당 학생 수와 수업 시수 감축, 관리자의 책임 강화 등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성직이라는 소리나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데, 이를 왜곡하면서 교사들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 왔다)을 운운하면서 교육 정책에 소외시켰던 한계들을 벗겨내고 교육 정책의 기획과 결정에 교사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좀 더 거리에서 들려주어야 한다.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PHOTO News
메인사진
[만화] 여전히 안전하지 못합니다
메인사진
[만화] 조합원에 대한 흔한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