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슬픈 여름을 보내는 지점에 서 있다.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 이후 9회까지 이어진 검은 점들의 연대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동료 교사의 고통을 들었고, 그 안에서 내 자신의 고통을 다시 마주했으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먼저 손 내밀어 도와주지 못했던 동료 교사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함께 지켜주지 못한 순간을 아프게 돌아보았다. 나는 후배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선배 교사의 고백을 듣는 순간을 기억하는데,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반짝, 마음에 빛이 난다. 반성과 다짐, 치유의 장이 된 교사들의 집회를 통해 우리는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그런데 죄 없는 교사들이 동료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파하는 동안에도 반성에 이르지 못한 존재들이 있다. 악어의 눈물 교육부 장관, 교육부의 눈치만 보는 다수의 교육감, 더 가까이에는 교장들이 그렇다. 교육을 잘 알지 못하는 자인 교육부 장관이나 선거를 의식하는 교육감들이야 그렇다 치고, 한때 같은 교사였던 교장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말 통렬한 반성과 변화의 과정을 겪어야 할 이들은 교장들이 아닌가?
스스로 삶을 이어가지 못한 선생님들의 소식 속에는 대부분 교사를 지키지 못하는 교장이 있었다. 그들은 교사에게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교사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역할을 했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 앞에서 교사에게 질타를 하고 사과를 종용하는 교장, 군대에 간 교사에게까지 학부모 민원에 대한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교장,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구를 묵살하는 교장, 심지어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교장들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접할 때, 치솟는 분노를 누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교장이란 무엇인가.
교장은 교사와 달리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법적 권한이 많다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은 학교 학생에 대한 교육, 평가, 지도, 징계 등 모든 권한을 학교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권 침해나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한 경우 적극적으로 나서 학생을 지도하고, 학부모 응대를 통해 상황을 정리하고, 피해 교원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한을 활용한 학교장의 사례를 듣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오죽하면 그런 교장을 ‘유니콘 교장’이라 하겠는가? 간혹 교장 선생님이 분리 학생을 교장실에서 직접 상담하겠다고 나섰다는 미담 사례를 듣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이고, 우리가 학교에서 보는 교장의 대부분은 여전히 문제 상황을 교사들에게 내맡기고 있다. 사실 교장이 권한을 적극 행사하면 상당 부분 다른 국면이 열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기에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력감과 싸우는 중이다. 30만의 집결과 공교육 ‘멈춤’까지 진행했지만 학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이 가능한 학교가 될 때까지 긴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그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지만 때로 불쑥 또는 스멀스멀 찾아오는 무력감을 다루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제 다시는 선생님을 잃을 수 없다는 이 마음을 내가 발 딛고 있는 학교에서 지금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
그래서 나는 지극히 소소하게 결심한다. 내 옆의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 것과 함께 학교에서 괴이한 교장의 행태를 목도하는 순간 교장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돌려주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아직도 9월 4일 병가·연가를 승인하지 않은 교장을 볼 때, 위기 학생들에 대한 대책에서 어떻게든 빠지려는 교장을 볼 때, 악성 민원에 교사를 총알받이로 내세우며 뒤로 빠지는 교장을 볼 때, 그런 순간이 닥친다면 나는 물어볼 것이다. 교장이란 무엇인가? 그런 순간이 동료 교사에게 닥친다면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물을 것이다. “도대체 교장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상상해 본다. 법과 제도를 고치고 교육이 가능한 학교가 될 때까지 무력함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한 덩어리로 질문을 던지면 어떠한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질문의 힘으로 옮겨 부으면 어떠한가? 우리가 매일매일 서야 하는 학교에서 함께 던지는 질문으로 교장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면 어떠한가? 학교에서도 끝까지 나아갈 힘을 서로에게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