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일어난 서이초 선생님 사건 이후,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큰 기대를 가지고 7월 말에 참여한 4박 5일간의 교육부 주최 양성평등교육 연수에 너무 실망했고 이는 곧 큰 절망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전교조 여성위원회 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의 추천으로 9월 9일과 10일 이틀간 열린 '2023 페미교사캠프'에 참여하게 됐다. 난생 처음 참여해 본 그곳에서 성평등 수업의 아이디어를 얻고, 전국의 페미니스트 교사들을 만나며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2023년 페미교사 캠프는 나혜석의 고향 수원 행궁동에 있는 수원호스텔에서 열렸다. 잘 짜여진 강의와 프로그램들로 한 달 넘게 지속됐던 절망감들은 끼어들 겨를이 없었다.
<첫 번째 시간> 이충열 작가의 ‘나다운 나, 내가 원하는 나’
이충열 작가는 여성주의의 시선으로 서양미술사를 다시 해석한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의 저자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글쓰기 클럽을 운영할 때 회원들과 같이 읽은 책이고, 서양 미술 작품을 바라보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줘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던 책이다.
이 책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시각으로 유명 작품을 알아보고, 나혜석의 '자화상'이 천경자의 '여인상'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었다. 타자화된 시선으로 본 여성의 얼굴(천경자의 여인상)과 자신의 고뇌에 찬 얼굴을 그대로 그린 것(나혜석의 자화상)은 어떻게 다른지 느껴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 후, 문장 완성 검사와 비슷한 ‘나다운 나, 내가 원하는 나’ 설문지를 같이 해보고 자유롭게 자신을 나타내는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오일파스텔을 처음 써보고 그 질감이 어떤지 느껴보는 것도 생경했다. 스스로를 ‘자유롭고 똑똑한 문어’로 정리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순간이 참 재밌었다. 제각기 창의력 넘치는 작품들을 서로 감상하고 각자의 설명을 듣는 시간도 물론 즐거웠다.
<두 번째 시간> ‘민주적 조직 운영’ 워크숍과 '캠페인 전략 세우기'
두 번째 프로그램은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 망치의 ‘민주적 조직 운영’ 워크숍이다. 여는 활동으로 서로 손을 잡고 놀이하는 활동(쿵쿵짝)을 하면서 친밀도가 높아졌다. 이어 비폭력 행동은 무엇이며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직접 행동과 연대를 위한 방법을 조별로 논의하는 활동을 했다. 민주화 운동 세대 이후 대가 끊긴 시위와 집회, 의견 표출 활동을 다시 소생시키기 위한 활동처럼 느껴져서 다시 연대의 힘(임파워먼트)을 느낄 수 있었다.
캠프 이틀 차인 10일, 일요일 아침에는 조별로 달성하기 원하는 정치적인 의제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에 이어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 망치가 진행하는 ‘캠페인 전략 세우기’ 프로그램이다. 10년 안에 우리가 원하는 목표(생활 동반자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부모성 같이 쓰기 법제화 등)이 모두 이루어지는 행복회로를 같이 돌려보며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 목표가 연대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 또한 가져보았다. 지지세력을 얻기 위한 전략을 짜보면서 토론과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다.
<마무리>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작은 점들이 모여 큰 바위가 되는 상상’
지난 7월 말 교육부가 주최하고 세종시 교육청이 주관한 양성평등교육 현장지원단 연수에 130명이 넘는 교사들이 신청하여 5일간 연수를 들었다. 많은 수의 교사가 신청했다는 것만 봐도 성평등 이슈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반증했다. 하지만, 연수의 수준이 그야말로 많이 실망스러웠다. 메타버스 프로그램 제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세종시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등 연수 프로그램은 성평등 교육과 관련이 없었다.
이번 페미교사캠프에서 드디어 만나고 싶은 선생님들과 안전한 공간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아이디어의 확산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이는 곧 큰 안도감을 가져다줬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들과 연대감을 강하게 느꼈다는 것.
첫째 날 뒤풀이에서 교육부 연수에서 만났다가 다시 점으로 흩어졌던 선생님들과 다시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현장에서는 성평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동료를 만나기 쉽지 않다. 하나의 섬으로서, 점으로서, 개인 수업에서 혼자 성평등 주제를 다루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뱉고 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에 감동을 느꼈다. 우리가 달성하고 싶은 의제도 실현 가능하다는 희망도 같이 연대하면서 느꼈다.
우리 교사들의 연대의 힘이 많이 약화되고 점으로 흩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7월 중순 서이초 교사 사건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교사 집회에 교사들은 다시 하나의 작은 점으로 참여하면서, 개인의 점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을 해내고 있었으며, 또 정당한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수한 작은 점들이 연대하면서 큰 바위덩어리로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일수록 옆에 있는 다른 점과 연대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을 페미교사캠프에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연대하게 만들어 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보낸다. ‘각자 도생의 시간일수록 연대는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