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천적으로 사회성을 타고난다. 사회성을 갖기 때문에 고립을 두려워하고, 다수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 의견이 다수라면 자기 신념을 수정하면서까지 다수 의견에 신경을 쓴다.
하버드대 토드 로즈 교수는 <집단 착각>에서 관련된 사례들을 제시한다. 얼굴 사진을 보고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과제나 음식 사진을 보고 맛 수준을 예측하는 과제처럼 주관적인 평가에서도 다수의 의견이 제시될 경우 피험자는 다수 의견에 맞춰 자신을 조정했다. 심지어 의견이 가짜인 경우도 그러했다. 즉, 인간은 사실 유무보다 다수 여부에 더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다수 의견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판단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를 두고 저자는 ‘집단 착각(Collective Illusion)’이라 표현했다.
집단 착각은 삶 곳곳에 스며있다. 정말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만 다수가 원하는 쪽으로 선택을 바꾼 적이 있는가? 혹은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불편하게 여긴 적이 있는가?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당신은 집단 착각에 노출된 것이다.
토드 로즈 교수는 집단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수’가 누구인지를 의심해보라고 말한다.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신념을 살피다 보면 그 ‘다수’가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가 허상임이 밝혀질 때, 집단 착각엔 틈이 생긴다고 보았다.
9월 2일, 고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3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교사 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인원이었다. 이틀 뒤인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는 교육부의 징계 겁박에도 12만 명 가까운 교사들이 서울과 지역집회에 참여했다.
8차까지 진행된 전국교사집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추모 집회는 교사의 정치 기본권을 금지하는 다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교사는 법적으로 정치 기본권이 없다. 학생들에게 정치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집회 과정을 되짚어보면 과연 교사의 정치 기본권을 반대하는 다수가 누구인지를 의심케 된다. 이번 집회로 학생들이 정치적 피해를 입었을까?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교사의 정치 기본권 반대를 요구하는 다수는 누구인가? 이번 집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교사의 정치기본권’에 대한 집단 착각에 틈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추모 집회는 교사들이 갖고 있던 ‘다수의 교사’라는 이미지가 허상이었음을 알게 했다. 교사들은 교권침해를 경험해 왔다. 동학년의 교사나 같은 학교의 동료 교사, 혹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문제를 털어 놓았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조언을 구했다. 인디스쿨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등장은 교사들의 소통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를 꺼낼 때 교사는 소수였고, 다수는 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추모 집회는 소통의 폭을 넓혔다. 그 속에서 교사들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였음을 알게 되었다. ‘다수의 교사’는 교권침해의 경험을 겪었거나 겪고 있었고, 앞으로 겪게 될 이들이었다. 집단 착각에 틈이 생긴 것이다. 그로 인해 교권침해는 교사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교사가 겪는 문제이므로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추모 집회는 과연 교육부가 교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의문을 갖게 했다. 9월 4일을 앞두고 교육부는 ‘공교육 멈춤’에 참여하는 교사나 이를 승인하는 관리자, 교육감을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 발표하였다. 교사들은 공교육 멈춤으로 인한 파장을 줄이기 위해 재량휴업일과 교외체험학습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처벌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교사들은 교육부가 과연 교사를 대변하고 보호하는 기관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교육부는 지원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관리를 위한 기관임을 알게 되었다. 추모 집회에 대응하는 교육부의 방식을 보며 교육부에 가졌던 기존의 인식엔 틈이 벌어졌다. 이제 교사들은 교육부에 기대지 않고 서로를 지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전국교사집회는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법안들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본회의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이고, 현장에서는 아직 체감되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교사들은 집단 착각을 깬 상태이다. 더 이상 정치적 행동을 주저하지도, 학급의 문제를 숨기지도, 교육부에게 모든 것을 기대지도 않는 새로운 시대의 교사들이 등장했다.
교사들이 광장에 더 자주 모였으면 한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제도적 요구 위에 교사의 정치 기본권 확보를 위한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