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전교조과 녹색병원은 ‘교사 직무 관련 마음(정신) 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전교조 서대문 대회의실에서 발표했다 © 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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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16%가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4.5%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일반인의 경우 자살 생각은 3~7%, 자살 계획은 0.5~2% 비율로, 교사는 2배 이상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녹색병원은 ‘교사 직무 관련 마음(정신) 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5일, 전교조 서대문 대회의실에서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조사는 전국 유초중등 교사 대상으로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다. 총 6,024명의 교사가 참여, 조사의 신뢰성을 위해 변별을 통해 3,505명의 답변을 분석했다.
전교조에 ‘교사 정신건강 조사’를 제안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고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후 제2, 제3의 선생님들이 계속 생기고 있고 앞으로 또 생길 수 있기에 빨리 사회에 교사정신건강실태를 알리고 대책을 수립하고자 제안했다”라면서 “10여 년 전 고양시의 한 교사가 과로사하여 교사 직무관련 정신건강 조사를 수행했다. 그때는 외국과 비교하여 한국교사는 건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라며 시급히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등 위험 노출을 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교조에 ‘교사 정신건강 조사’를 제안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 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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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발표에 앞서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교사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교사로서 무너지는 자존감, 홀로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어려움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라면서 “정부와 교육당국은 심각한 재해상황에 놓인 50만 교사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속에 홀로 서 있는 교사들을 위한 지원과 시스템을 신속히 마련해야 잇따르는 죽음을 멈출 수 있다”라고 촉구했다.
한국 교사, 타 직업군보다 더 많은 '폭력'에 노출
‘학교 내 폭력 경험’으로 전체 응답자의 66.3%가 ‘언어폭력’을 경험하였다고 답변하였고, 신체 위협 및 폭력 경험은 18.8%, 성희롱 및 폭력 경험도 18.7%, 원치 않는 성적 관심도는 12.9%였다. 반면, 노동부의 ‘일반산업 노동자 대상 근로환경조사’ 결과에 따르면 언어폭력 경험 3~6%, 신체 위협 및 폭력 0.5%, 성희롱 및 폭력 경험 0.4%, 원하지 않는 성적 관심은 1% 미만에 불과했다. 타직종 노동자들보다 교사들이 훨씬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 확인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여성 교사의 폭력 피해 비율(69.3%)이 높았고, 유치원 교사는 언어폭력 피해(76.1%), 특수교사는 신체 위협 및 폭력 피해(54.3%)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그리고 학부모와의 상담 횟수가 증가할수록 폭력 피해도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언어적 폭력 피해의 가해자는 63.1%가 학부모였으며, 다음으로 학생이 54.9% 순이었다. 신체 폭력 피해를 본 경우, 가해자의 96.5%는 학생이었으며, 21.7%는 학부모였다.
▲ ‘교사 직무 관련 마음(정신) 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한 윤간우 녹색병원 과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 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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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 증상 ‘교사 38.3%’, 일반인의 네 배
‘경도의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24.9%, 치료가 필요한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38.3%였다.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 심한 우울 증상 유병률은 8~10%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더 심한 우울 증상을, 유치원과 초등교사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학부모 상담 횟수가 증가할수록, 업무 요구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소진 경험이 많을수록, 학부모・학생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할수록 우울 증상 비율이 높았다.
김성보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교육당국은 ‘교사들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전문가가 분석한 결과, 직무환경이 문제임이 밝혀졌다. 공교육 붕괴를 막으려며 교육재정 확보로 인력과 재정 지원을, 교사의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경찰·소방 공무원보다 높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비율은 ‘폭력 경험 유무’에 따른 차이가 나타났다. 언어폭력을 경험한 교사는 42.3%, 신체 폭력을 경험한 교사 51.1%, 성희롱을 경험한 교사 47.5%, 원치 않는 성적 관심을 경험한 교사의 49.9%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일반인(1~6%), 경찰 및 소방 공무원(15%)과 비교했을 때 월등하게 높은 비율을 보였다.
조사결과를 분석, 발표한 윤간우 녹색병원 과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경찰·소방공무원의 경우는 폭력사건을 경험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훈련받기도 한다. 또, 여러 가지 지원체제가 있다. 교사의 경우,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 직무라 생각하지 않았고 훈련, 지원체제가 전무한 상황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스트레스가 지속되고 만성 질환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라고 해석했다.
‘유치원 교사’ ‘폭력 경험 교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상대적으로 자살의도 높아
교사들의 자살 의도(16%), 자살 시도계획(4.5%)이 일반인(3~7%, 0.5%~2%)보다 높게 나타났다. 경력별로 보면 5년 미만(자살의도18.8%/시도계획4.4%), 5~15년(20.3%/6.7%), 15~25년(14.8%/3.4%)의 비율로 나타났다. 급별로는 유치원 교사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업무 소진, 폭력 경험, 외상후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윤 과장은 “조사결과가 너무 위험한 수준이라 통계분석에 실수한 것은 아닌가 재분석하기도 했었다. 교사의 업무 상황이나 폭력 피해 빈도를 보았을 때 충분히 도출될 수 있는 결과”라면서 “일반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위험상황 전담인력 배치, 정기적인 심리지원, 매뉴얼 제공 등 제도를 마련하는 사업주의 노력이 있어 왔다. 교육현장에서는 그런 노력이 없었다”라면서 앞으로 각종 토론회 등을 통해 구체적 방안을 더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조사를 추진한 김한민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교사들의 긴급한 호소는 ‘폭력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영미의 경우, 3년 전부터 교사정신건강을 매년 조사해 교육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라면서 교육당국에 ‘정기적 교사 정신건강 실태조사’ 실시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