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혹시나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염려되어 6시, 6시 10분, 6시 20분. 마지막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6시 50분 알람을 맞춰놓고도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친다.
7시! 푸석한 얼굴로 창원종합운동장에 나가면 버스 십여 대가 주르륵 줄 서 있다.
“우리 버스다!”
둘레길 버스도 아니고, 기행 버스도 아닌 50만 교원총궐기 집회에 가는 버스를 ‘우리 버스’로 부르는 마음에는 자긍심이 넘쳐난다.
경남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출발 지역도 다양하다. 양산에서부터 창원, 거제, 함양까지. 참가신청서에 고를 수 있는 장소 선택지만 해도 열 군데이다. 이번 7차 집회에는 경남에서 1,700여 명의 선생님이 61대의 버스에 몸을 싣는다. 평소에 300명 수준인 참가자가 5배 이상 늘어나면서 인솔 일은 50배로 늘어난 느낌이다.
서울이라고 하면 지하철부터 덜컥 겁이 나고, 고층 빌딩에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은 지방 사람으로서 버스 인솔을 한다는 것은 어마무시한 일이다. 그래서 다들 "저... 길을 잘 몰라서 버스 인솔은 못하겠어요"라며 주저한다.
그런 선생님들을 모아 61명을 만들고 버스를 섭외하고, 버스배치표를 만들었다. 이 와중에도 61명의 버스 인솔교사들은 설렌다. 내 옆의 동료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일이 답답한 학교 현장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한다.
“선생님! 더 도와드릴 거 없어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일은 선생님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과 꼭 같이 타게 해주세요”, “내가 무릎 수술을 했는데, 앞에 앉을 수 있을까?”, “남자 친구랑 바로 옆에 앉을 수 있어요?”, “우리학교 신규 선생님 1차 신청 못 했는데 나랑 바꿔도 돼요?”
질문도 많고, 요구도 많은 선생님 덕분에 내 폰의 알람은 밤 12시가 지나도 울린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 진짜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사람 맞아?’ 그러다가도 집회에 어떻게든 올라가려는 애닲은 마음이 느껴져서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렇게 5차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롯이 이 집회버스만을 준비했다. 체중은 3kg가 빠지고 얼굴은 푸석해지고, 나의 세 아이는 엄마가 컴퓨터만 한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우리야, 누리야, 아름아! 엄마가 교사로서 살아가는 게 매우 힘들어. 그런데 엄마만 힘든 게 아니고, 선생님들 모두 다 힘들대. 그래서 이번에 바꿔보려고 싸우고 있거든. 조금만 기다려줘. 사랑해!”
이렇게 밤마다 이야기하며 잠을 재우고 다시 컴퓨터를 켠다.
7시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그 다음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휴게소의 찐 풍경은 새까만 개미떼이다. “선생님! 서울 가면 개미떼만 따라다니면 됩니다”라고 말해줘도 불안해하던 선생님들이 휴게소 풍경을 보고는 방긋 웃는다. 그리고 또 운다.
여기저기 버스에서 쏟아지는 선생님들 틈에서 신규 때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부터 기숙사 룸메이트, 같은 학교 선생님까지 만나게 된다. 휴게소에서 만난 대학 동기는 환했던 목소리가 중저음의 쉰 목소리로 변해 있었고, 내 마음의 최강 미녀였던 후배는 뼈만 남아 서 있을 힘조차 없어 보였다. 화장실 앞에서, 호두과자 가게 앞에서 선생님들의 수다는 결국 눈물로 끝이 난다.
3차 집회를 앞두고 처음 버스 인솔을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란 것이 대부분 혼자 오는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혼자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고, 혼자 집회장에 앉아있다. 비가 와도 우산이 없어 고스란히 맞으면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다가가 “선생님!”하고 부르면 환하게 웃는다.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아서 7차까지 5차례나 버스 인솔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 오는 우리 가슴에는 저마다 무언가가 있다.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조차 눈물이 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집회 버스를 탄다. 흩어진 외로운 교실에 하나의 섬으로 있던 우리를 수만 마리의 개미떼로 만들어 줄, 그리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학교 현장으로 데려다 줄 버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