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교단일지②] 나는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다

누명을 벗은 초등교사 | 기사입력 2023/08/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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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교단일지②] 나는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다
죽음의 끝에서 희망을 보다
누명을 벗은 초등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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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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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끝에서 희망을 보다

 

[편집자주] 고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서 각자 겪고 있던 아픔과 고충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내가 실수해서', '내가 못 나서', '운이 좋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알고 보니 많은 교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었고, 그 아래에는 잘못된 법과 방관한 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희망>에서는 마지막날 교실에 홀로 계셨을 고 서이초 선생님을 생각하며 '생존교단일지'를 공모해 선생님들의 아픈 이야기가 교실 밖으로 나오는 장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5월부터 시작된 불안과 스트레스 장애로 매일 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작 직전 교실 앞에 찾아와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를 지르던 한 엄마의 얼굴과 “교사 자질이 없다!”고 소리치는 환청에 잠에서 깨었다. 놀란 마음과 리듬을 잃은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정제를 찾아 삼키고 누웠지만 환각과 환청은 잦아들지 않았다. 몇 분 뒤 다시 일어나 한 알을 더 먹었지만, 나를 괴롭히던 목소리와 표정들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하는데, 내일 아침에도 또 쫓아오면 어쩌나 하던 생각 끝에 보이는 대로 약을 다 털어 넣고 삼켰다. ‘저걸 다 먹으면, 내일이 없겠지’하는 바람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는 눈을 떴고, 비틀거리는 몸과 다잡아지지 않는 정신으로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리는 나를 발견한 학교 선생님들은 응급실로 데려가 위 세척을 시키고 나를 다시 살려놓았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왜 나는 응급실이 아니라 학교로 갔던 걸까. 학교는 나에게 살기 위한 장소였던 것일까, 죽을 자리였던 것일까.

 

2022년 6월 21일 낮, 겨우 다시 정신을 찾은 나는 여름방학까지 병가를 내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겨둔 채 교실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고소장을 받았다.

(죄명)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아동학대 법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가중처벌)

‘선생님 언제 오냐’고, ‘기다리고 있다’는 아이들의 문자에 눈물을 삼키며 내가 한 일은 2학기 수업 준비가 아니었다. 행정기관의 조사와 경찰조사, 변호사를 만나고 상담 치료를 받는 일이었다. 행정기관은 학생과 학부모의 신고만으로, 해당 학생과 학부모의 진술만으로 내가 교실에서 폭력을 멈추기 위해 한 행동들이 아동학대라 인정했고,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넘겨져 재발 방지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관리대상이 되었다.

 

행정기관과 경찰, 검찰에서는 책상이 넘어지는 큰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겁을 먹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반성문을 찢는 그 행동이 아이들에게 충격이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친구를 주먹질하는 폭력에 노출되어 놀라고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분을 못 이겨 쿵쿵거리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멈추게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상을 넘어뜨리는 것 뿐이었다. 친구를 ‘그냥’ 때려놓고도 ‘잘못한 것이 없다’ 고 쓰인 반성문을 이렇게 쓰면 안 되지.. 라고 찢는 것뿐이었다. 이유 없이 맞은 아이가 선생님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데...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당당히 선생님 앞에 서서 “나를 건들지 않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말을 선생님이 어떻게 해결할 건지 보고 있는데...

 

내가 좀더 훌륭한 교육자였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교사는 아이를 붙잡아도 안 되고, 큰 소리를 쳐도 안 되는데 무슨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반성문을 찢지 않고 그냥 받아 서랍에 조용히 넣어놓고, 알았다. 집에 어서 가거라. 했다면 나는 아동학대교사가 되지 않았을까?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개학하면 만날 수 있느냐고 연락해오는 아이들이 눈에 선해 2학기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사 중인 나는 강제 분리되어 내 반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멀리 떨어진 다른 학년의 교과전담교사 자리로 가야 했지만 한 건물에서 학급 아이들을 볼 수 있어서, 달려와서 안기는 아이들을 안아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행히 교육청에서 직위해제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선생님을 구해내겠다고 검찰청 조사실에 가서 검사님과 조사관님을 만난 3학년 어린아이들,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탄원서를 쓴 제자들, 학부모님들, 은사님들 덕분에 나는 일년간의 긴 싸움 끝에 모든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생존자였다.

신고자의 말 한마디만으로 아동학대 피의자가 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법리와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사들은 매일 매일 움추러들고 포기하게 된다.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 트집 잡히고 민원에 시달리는 것을 교사들은 알고 있다.

 

일기 검사도, 숙제 검사도, 학급밴드에 사진을 공개하는 것도 점점 그만두고, 최소한의 것만 하는 것. 이것이 아동학대라는 덫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다. 이러한 무력감과 무능감이 대한민국의 교사를 사로잡고 있던 2023년, 7월 18일 서이초 막내 교사의 자살은 숨죽이고 엎드려 있던 선생님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33℃가 넘는 7월 29일, 3만 명이 넘는 교사가 광장에 모여 소리쳤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고.

이제 더 이상은 잘못된 법과 폭력적인 민원에 교육권을 짓밟히지 않겠다고.

월급을 인상해 달라는 것도,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교사들은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게 해달라고 외쳤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민형사재판을 이겨낸 1년의 싸움이, 어린 교사의 죽음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희망을 보았다. 2학기의 시작에는 새로운 법과 제도가 교사와 교실, 그리고 소중한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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