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고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서 각자 겪고 있던 아픔과 고충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내가 실수해서', '내가 못 나서', '운이 좋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알고 보니 많은 교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었고, 그 아래에는 잘못된 법과 방관한 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희망>에서는 마지막날 교실에 홀로 계셨을 고 서이초 선생님을 생각하며 '생존교단일지'를 공모해 선생님들의 아픈 이야기가 교실 밖으로 나오는 장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아, 뭐라고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살아남았네요.”
“이제 살아남은 우리, 저마다 뭐라도 해야겠죠!”
저는 교직 경력 35년 차 지방 도시의 초등 교사입니다. 선생님이 가시기 며칠 전 7월 14일. 명퇴 수요 조사에 2024. 2. 29 자 신청을 한, 선생님과는 한참 먼 선배입니다. 내년 봄이 오기 전 학교를 떠날 겁니다. 아주 오래된 교사인 저에게도 2023년은 너무 고통스러운 해였습니다. 계속 학부모들이 왜 이렇게 했나, 왜 저렇게 하지 않았나 전화로 저를 책망했습니다. 병이 나서 일주일을 쉬는 중에 두 명의 학부모가 교장실로 찾아와 담임이 무엇이 부족하다 민원을 넣고 갔다고 병가를 끝내고 출근한 오후에 교장실에 불려가 눈물을 쏟으며 그 얘길 들었습니다. 그 뒤에 또 다른 학부모로부터 더한 민원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런 교실이 너무 힘들어 아이들 앞에서 한 번 운 적이 있습니다. 아마 아이 편에 전해 들었겠지요. 저들은 하이에나 같았습니다. 민원으로 들어온 모든 것을 맞춰드렸습니다. 그 후에야 조용해졌습니다.
그렇게 어린 후배 선생님이 가셨는데도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행이다 명퇴 시점이 어떻게 이토록 잘 맞아떨어졌지 안도했습니다. 내가 말없이 떠나도 선생님 덕분에 남은 후배들은 좀 나은 교육 현장에서 일할 수 있겠구나. 내가 못 고친 존중 없는, 믿음 없는 교육 현장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나를 위해선 그토록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선 말이죠. 내가 서이초 선생님이구나 하면서도 안 죽으려고, 병들기 싫어서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게 명퇴 결정이었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교사 학대 나라가 대한민국 같습니다. 저는 그나마 명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지금껏 교사로 살면서 요즘 뉴스에 나오는 학부모들의 민원 중 대부분을 제가 보고 들으며 겪은 것이고 지난해엔 아이를 울려서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뻔했습니다. 십 년 전쯤엔 봉급 많이 받으면서 날뛰는 애 하나도 못 잡는 게 교사냐며 치욕을 당하고, 출근하려면 눈물이 자꾸 나서 두 달 병가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전 어떻게 하면 교사가 욕을 덜 보는지 이제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교사 생활로 아픈 만큼 성숙한 제 마음이 그렇게 시키더라구요. 방임하고 학대하는 부모보다 이 학부모는 그나마 과잉보호라도 하고 있으니 나은 것 아닌가 스스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어머님의 감정을 먼저 읽어드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제가 학생에게 한 말을 아동학대라고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라고 교육이라고 그게 어떻게 정서학대냐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일이 확대되는 것이 싫었고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여 다른 선생님들이 내가 일으킨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싫었으며 더군다나 학교 관리자에게 소통을 못한다, (십여 년 전 사건 때)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옛날 교사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나이에 아직도 세태를 읽지 못하고 왜 그렇게 여전히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계시냐는 그러다 선생님이 다치고 상처받는 일은 이제 그만하시라는, 저를 위해 주시는 말이 2차 가해가 되는 말을 다시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왜 이렇게 미련한 교사일까요? 여전히 교사는 다른 직업군과 달리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제 믿음 어디가 잘못됐습니까? 그 마음을 슬그머니 내려 놓고 교직을 수행하게 된다면 저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중심은 세우고 사는 교사였습니다. 만약 저에게 굉장한 초능력 하나가 주어진다면 저는 학부모님들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모두 없애버리겠습니다. 그리곤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교사를 믿고 일 년을 온전히 맡겨 달라고 그럼 진흙 속 진주로 숨겨져 있는 당신의 금쪽이들의 얼굴을 조금 내밀게 해드리겠다고, 아니 반짝반짝 빛나게 해드리겠다고... 말하겠습니다. 아, 그건 안되겠습니다. 안타깝지만 교실에 설 날이 100일도 안남았네요. 우리나라 학부모님들은 참 바보입니다.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 선생님을 믿고 존경하는 것이라 사실을 모릅니다. 십 원도 안드는 방법인데...
“엄마 아빠 보기에 올해 너희 선생님이 정말 좋으신 분 같아.”
이 말만 지나가다 한 번 해주면 끝인데 말입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가 선생님이 최고래요.”
이 말을 들으신 담임 선생님, 입은 절로 귀에 걸리고 신이 나서 사랑으로 웃으며 감사하며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저도 할 만큼 했습니다. 아무 미련이 없습니다. 나도 살아야 하기에, 무너져내리는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서기 싫습니다. 막상 그렇게 망설이던 명퇴를 결정하고 나니까 이제 용기가 좀 납니다. 이제 물릴 수도 물리지도 못합니다. 제가 결단을 내렸으니까요.
앞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말씀드렸지요. 하겠습니다. 남은 시간, 다시 무례한 학부모가 민원을 넣는다면 그건 교육이라고 교사의 권한이라고 의무라고 힘주어 말하겠습니다.
떠나신 선생님의 목숨값. 우리 동료 선·후배가 잊지 않고 큰 은혜로 꼭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바꿔낼 것입니다. 고운 선생님! 선생님처럼 열정 있는 교사는 하늘나라보다 교실이 더 잘 어울리실 텐데 너무나 애통합니다. 부디 하늘 꽃 자리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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