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고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서 각자 겪고 있던 아픔과 고충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내가 실수해서', '내가 못 나서', '운이 좋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알고 보니 많은 교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었고, 그 아래에는 잘못된 법과 방관한 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희망>에서는 마지막날 교실에 홀로 계셨을 고 서이초 선생님을 생각하며 '생존교단일지'를 공모해 선생님들의 아픈 이야기가 교실 밖으로 나오는 장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나는 과원 교사다. 보통 과원 교사는 2학기에나 생기는데 내가 사는 도시에 임용 안 된 발령 대기자들이 많다 보니 구제책으로 과원 교사를 3월에도 낸다. 나는 지역교육청 인사 사고로 올해 현 학교로 발령이 났다. 와보니 이미 업무분장이 끝났고 남은 업무는 학교폭력 생활 업무였고 학년은 작년에 대부분의 학폭 사건을 일으켰다는 6학년 담임과 1, 2학년 통합 체육 전담이 남아있었다. 1, 2학년 과목은 원래 담임이 다 가르쳐야 맞다. 그런데 과원 교사가 있으면, 다른 학년보다 시수가 많은 1, 2학년 통합 과목 중 신체활동만 떼서 가르치게 한다. 난 생활부장과 1, 2학년 통합 체육을 가르쳤다.
올해부터 1학년은 한 반에 16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다. 1학년은 한두 명 정도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교사의 말을 잘 들었고 학생 수도 적어서 지도할 만했다.
문제는 2학년이었다. 작년에 문제를 많이 일으키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 반에 24~25명씩 있는 아이 중 네다섯 명 정도가 수업에 집중을 못 했다. 그중에는 ADHD 약을 먹다가 끊은 아이도 있고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이 쳐다본다고 악쓰고 우는 애도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체육실을 계속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2학년 수업만 있는 요일은 병가를 내고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급기야 한 반에서 아이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고 체육실을 탈출하는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가 괴롭히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나에게 이르기 시작하고 맞아서 훌쩍훌쩍 우는 아이까지 생기면 이제 수업은 의미가 없어진다. 체육실을 나가려는 아이 손목을 잡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다.
“선생님, 00이가 또 체육실 나가려고 해요. 와서 도와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도와줄 수 없다’였다. 이해는 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지만 나는 너무 절박했다.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도망치는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이 오셔서 00이를 교무실로 데려가 상담을 했다. 나는 남은 수업을 마무리하고 교무실로 가서 00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교감 선생님은 이미 6학년 한 학생이 의자를 던지는 등 수업 방해를 해서 6학년 교실에 붙박이로 있어야 할 정도였다. 내 살길을 찾아야 했다.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시니어 클럽 어르신이라도 수업에 들어와서 도와주게 해달라고 했다. 시니어 클럽 어르신들은 코로나 방역을 위해 배치된 인력이라 수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또 어르신들 다치기라도 하면 학교에서 어떻게 책임지냐고 했다. 그리고 왜 다른 선생님들은 가만히 있는데 선생님 요구만 들어줘야 하냐고도 했다.
“제가 너무 힘들어서요.”
하고 말하자 교장 선생님도 말을 못 이었다.
그 이후 나는 수업을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을 다방면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함께 모임을 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교육청에 ‘생활 도우미’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교육청에는 1학년 학습지원 도우미가 있었다. 우선 2학년에 아직 한글 못 뗀 아이가 한 반에 두세 명 정도 있어서 교감 선생님께서 도우미를 신청해주셨다. 나는 시니어 클럽에 전화를 걸어 학교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수업 지원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시니어 클럽에서는 원래 목적이 수업 지원이었다고 하며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 오시는 시니어 클럽 어르신들께 수업 지원을 부탁드렸더니 난색을 보였다.
“우리는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그런 건 안 해봐서.”
어르신들께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아이들 쓰다듬어주며 “예쁘다”라고만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드디어 두 명의 어르신이 수업에 들어오셨다. 가만히 뒤에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차분해졌다. 나와 달팽이 놀이나 8자, 얼음땡 같은 놀이를 하다 지치면 아이들은 어르신께 가서 귀염을 받고 다시 수업에 참여했다.
어르신이 수업에 참여하면서 나는 수업 형식을 바꿨다. 비석, 실뜨기, 공기, 딱지, 고무줄 등 놀잇감을 구비해 놓고 아이들에게 자유 놀이 시간을 10분에서 15분 정도 주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교사와 같이 전체 놀이를 하기도 하고 어르신들과 실뜨기, 공기, 딱지치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개별화 수업이 되니까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더 좋아하게 되고 교사의 말을 귀담아듣게 되었다. 하지만 개별 행동을 하는 아이는 아직도 있다. 처음보다 나아졌다는 말이다.
2학년 중 두 반은 수업 지원 강사가 돌발 행동하는 아이 옆에 서 있으면서 돌봐주고 아이 행동을 수첩에 자세히 적기도 한다. 적은 것을 담임 교사에게 넘기면 담임 교사가 학부모와 상담을 한다.
학교폭력 업무도 만만치 않았다. 3월부터 반이 다른 6학년 학생 10명 이상이 연루된 사건이 생겼는데 방과후, 학교 밖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따졌다. 아이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한 담임선생님은 ‘왜 미리 상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 내가 다른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느냐?’ 하는 민원을 들었다고 했다. 아직 업무 담당인 나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시기였다. 담임선생님은 ‘죄송하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반이 다 다른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니 상담할 시간을 찾기도 어려웠다. 방과 후엔 학원가야 한다고 하고 아이들 수업권은 침해하면 안 된다고 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밖에 없으니 상담하다 점심을 거르는 때도 있었다. 각 아이를 다 면담하고 사과시키고 학부모에게 재발 방지 약속까지 하며 마무리했다.
담임선생님들이 많이 애써 주셔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거의 학교폭력 담당 교사에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117 신고 건은 대부분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 내가 다 처리해야 했다. 117 사건 처리를 하면서 내가 교사인가, 경찰인가 하는 정체성 혼란이 왔다. 예전엔 부모들끼리 만나 알아서 처리하던 것을 왜 교사가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교사가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동의를 얻어 연락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중재 역할까지 법으로 정해놓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말고 이런 일을 교사가 해주는 나라도 있나? 정말 이상한 나라다.
과원 교사로 있으면서 2학년도 학급당 인원수가 20명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1학년이 24~25명이고 2학년이 16명이었다면. 이렇게 힘든 아이들이 많은데 담임 교사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았다. 2학년도 학급당 인원수를 줄이고 담임을 한 명 더 만들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이런 것을 학교에서 상황에 맞게 정할 수 없다. 학급당 인원수는 모든 학교가 다 똑같이 맞춰야 한다. 과원이 있다면 융통성 있게 학급 인원수를 조정해 운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접했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교육경력이 10년이 넘은 나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교단에 선 지 1년 6개월밖에 안 된 교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교장 선생님 찾아가서 따지고 여기저기 알아봐서 살 길을 찾았지만, 과연 내가 저경력 교사였으면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만약 신규 교사가 과원 교사로 들어와 내 업무와 학년을 맡았다면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생존교단일지①] 헬학교 속 신규교사 • 10년차 초등교사
[생존교단일지②] 나는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다 • 누명을 벗은 초등교사
[생존교단일지③] 명퇴를 신청했습니다 • 지친 선배교사
[생존교단일지④] 과원교사의 과로한 나날 • 업무과다 과원교사
[생존교단일지⑤] 그 해를 나는 잊을 수 없다 • 좋은 어른이고픈 교사
[생존교단일지⑥] 금쪽이를 만난 건 그저 운명일까 • 안전한 환경을 바라는 교사
[생존교단일지⑦] 홀로 두지 마세요 • 절박한 초등교사
[생존교단일지⑧]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후 혼자 싸웠습니다 • 살아남은 두꺼비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