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에 들이닥친 대혼란
한때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1,2학기 중간·기말고사 기간을 ‘교사 4대 명절’이라고 부르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이 기간은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때가 되었다. 시험문제를 내기도 힘들 거니와 그에 딸린 평가 관련 교내연수, 문항정보표 작성과 입력, 시험지 분철, 시험 감독 등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 중 가장 가슴 졸일 때는 해당 시험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교무실 문으로 성적 상위권 학생이 시험지를 들고 들어올 때일 것이다.
시험 문제 오류가 발생하면 그 뒷감당은 참으로 험난하다. 일명 ‘교사 징계위원회’라 불리는 학교성적관리위원회에 호출되어 가야하고, 재출제·재시험 때로는 징계까지 받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기에 학년말 시험기간에 교사들의 긴장은 절정에 이른다. 이런 분위기는 중학교, 일반고, 특목고, 특성화고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나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예민하고, 업무가 폭주하는 때 교육부는 4세대 NEIS(네이스) 전환 날짜를 잡았다.
▲ 6월 21일, 로그인이 되지 않는 네이스 화면 ©SNS 갈무리
|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행정·평가 업무 마비
6월 21일, 전국의 학교는 ‘지능형’이라는 별칭을 단 4세대 네이스로 대혼란을 맞이했다. 네이스 로그인이 되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다운되거나 버퍼링을 거듭해 공문 처리, 복무 상신 등 교무·급식·행정 업무가 마비되었다. 거기다 타학교 문항정보표가 출력이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교육부는 서둘러 공문을 통해 문항정보표의 객관식 문항지 번호를 바꾸고 서술형 문항은 재출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간단한 공문 내용이었지만 학교로 이어진 파장은 엄청났다. 시험문제 재출제, 시험일 연기, 인쇄했던 시험지 파쇄. 단축 수업, 급식 차질 등 뒷수습으로 학교는 대혼란에 빠졌고 그 혼란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교사의 성적 비위는 관용 없는 문책
이 혼란 중 ‘문항정보표 유출’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내신시험의 답안이 학교 밖을 넘어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유출된 것이다. 전교조 논평을 인용하자면 ‘시스템이 답안지를 유출하는 성적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교사들은 수행평가 점수 하나를 잘못 입력해도 감사에 걸려 경고 처분을 받고 지역신문에 오르내리기까지 한다. 하물며 시험 문제나 답안을 유출하는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거운 죄로 다스려진다. 대한민국 공교육 내에서 시험 문제 유출자는 지위나 사안에 따라 파면, 해임, 감봉, 구속 등의 처분을 받는다.
▲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 © 교육부
|
사람보다 디지털을 신뢰하는 장관님
28일 현재까지 4세대 네이스 오류와 관련한 이주호 장관의 공식적인 사과는 27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교육부 현안질의에서 야당의원의 질타와 사과 요구에 응해 “현장에 많은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요”라는 짧은 말이었다. 이어 의원이 질문한 “현장 교사들이 네이스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이주호 장관은 2022년 12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시의 가장 큰 문제는 수업의 변화인데 교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교사는 무풍지대였다”라고 질타하며 “수업을 잘해서 수시의 신뢰성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앞으로 수업진도와 평가를 AI튜터에게 맡기면 수시에 대한 신뢰성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를 불신하며 디지털에 대한 극진한 신뢰와 사랑은 보여주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디지털 교과서 도입 등도 추진이 되고 있고, 덩달아 관련 사교육업체의 주가는 올라가고 있다.
국가적 혼란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면서 교육 현장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교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이주호 장관은 현재, 공교육의 신뢰를 가장 크게 무너뜨리는 주범이 되어있다. 교사들은 시험 출제 실수 하나에도 어려운 행정 절차를 밟으며 감사와 징계까지 받고 있다. 이에 반해 현장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밀어부친 행정 과오를 저지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의원들 앞에서 사과 한마디로 퉁치며 이 상황을 종료할 예정인가?
이주호 장관에게 묻습니다.
킬러 문항 배제로 공정한 수능을 치르고 사교육을 경감할 수 있다는 장관님, 학교가 가장 바쁜 시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장관님, 교사보다 AI를 더 신뢰하는 장관님! 신뢰하고 사랑하는 디지털 시스템이 저지른 이 혼란과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총책임자로서, 교사들처럼 ‘공정하게’ 문책 받을 준비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