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위해제 결정 신중해야
교육공무원법이 2021년에 개정되기 전까지 교원의 직위해제는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 3 제1항에 의해 이루어졌다. 국가공무원법상 직위해제 제도는 공무원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직무로부터 배제시키는 처분이다. 주로 비위 공무원에 대해 직위해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공직에 대한 신뢰 확보와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원에 대한 무분별한 직위해제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개정된 교육공무원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에 개정된 교육공무원법에는 직위해제 조항이 신설되었는데 여기에 직위해제가 가능한 대상으로 ‘「아동복지법」 제17조에 따른 금지행위(아동학대 행위)로 인해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는 자’ 항목을 명시해 놓았다.
우리나라 직위해제 제도는 유독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 직위해제가 직무배제에 그치지 않고 추가 불이익이 뒤따른다. 교사가 직위해제 통보를 받는 순간 직무배제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물론이고 최대 70%에 이르는 봉급 및 수당의 감액, 호봉승급 및 승진의 제한, 연가 및 연금 산정에서 재직기간 제외 등 다양한 추가적 불이익이 발생한다. 그래서 직위해제 처분은 징계는 아니지만 소청심사 청구의 대상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수사 및 재판에서 경징계 정도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중징계 또는 당연퇴직형과 동일하게 불이익이 전혀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직위해제는 교사에게서 근로의 권리(헌법 32조)와 재산권(헌법 23조)이라는 기본권을 박탈하는 처분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신고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박탈해도 되는 것일까? 기본권 제한은 반드시 ‘과잉금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다.(헌법 37조) 그만큼 직위해제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 및 적용되어야 한다. 실제로 아동학대로 수사받는 교원의 직위해제 근거가 되는 법령 조항을 살펴보자.
<교육공무원법 제44조의 2(직위해제)>
① 임용권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할 수 있다.
1~3. <생략>
4. 금품비위, 성범죄 등 다음 각 목의 비위행위로 인하여 감사원 및 검찰ㆍ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자로서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자
가~라. <생략>
마. 「아동복지법」 제17조에 따른 금지행위
바. 교육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크게 손상하여 그 직위를 유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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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어디에도 신고당한 교사에게 무조건적인 직위해제를 부여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비위의 중대함’,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현저하게불가능함’. ‘교육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크게 손상함’이라는 표현을 통해 신중한 법 적용을 주문하고 있다.
아동학대는 아동학대 의심만으로도 누구나 신고할 수 있고 학교 종사자들처럼 신고 의무자는 지자체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하여야 하며,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기에 신고가 빈번할 수 밖에 없다. 아동의 인권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고 아동학대가 반인륜적인 중대 범죄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많은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원에게 징벌적 성격이 강한 직위해제를 선제적으로 내리는 교육청의 정책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김민석 전교조 교권 실장에 따르면 ‘2018년부터 4년간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학대 행위자로 등록된 인원 중 형사처벌을 위해 검찰이 기소한 인원은 전체의 1.6%에 불과하고 실제 교육청으로부터 징계받은 인원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수치에 의하면 지금 전국에서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직위해제는 과도하다 못해 직권남용죄로 형사고발을 검토해야 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교육부 아동학대 매뉴얼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 교사가 아동학대행위자로 신고된 경우, 학교장은 교육(지원)청 아동학대 및 교원업무 담당자와의 협의를 거쳐 필요한 대응(교사 면담, 동선 구분, 수업 교체, 담임 교체 등)을 할 수 있음
※ 「교육공무원법」 개정(2021.12.25. 시행)으로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 개시된 교원의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경우 직위해제를 할 수 있게 됨
<2023 아동학대 예방 및 대처 요령 교육부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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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매뉴얼의 여러 문제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직위해제의 요건만 보자면 개정된 교육공무원법과 동일하다. 결국 아동학대 신고와 수사기관의 수사 자체만으로 직위해제가 가능하다고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교육청과 전교조의 역할
현재 근무하는 지역에서 지난해 선생님 한 분이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당했다. 두 가지 혐의 중 하나는 이미 경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의견이었고, 두 번째 혐의도 보호자 측과 교사 측의 의견이 상반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교육지원청은 발 빠르게 직위해제를 결정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접하고 교육청에 항의했으나 이미 이루어진 직위해제를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이후 검찰에서 두 번째 혐의도 형사처벌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냈지만 교육청은 이번엔 징계 규정을 근거로 징계의결 요구를 하겠다고 한다. 일 년 넘게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직위해제로 인해 입은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이루 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전교조에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듯이 현재 아동학대 관련 법의 테두리에서 교사가 아동학대자로 민원이 제기되거나 신고될 경우 교육청과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전무하다. 학생 측과 교사 측의 이견이 있어도 이를 청취하고 조정할 기구도 없고 권한도 없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노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신고 의무와 분리 조치 역할만 알뜰히 챙긴다. 교사 보호에는 뒷짐만 지다가 교사에게 내리는 형벌적 조치에는 빠르고 가혹하다. 이는 마치 민원인이 교사를 째려보면 교육청이 나서서 교사의 멱살을 잡는 격이다. 교사들이 다른 교육 주체와의 갈등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분노하고 좌절하는 지점이 이 부분이다.
혹여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직위해제 결정이었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담임 교체, 교과 수업 교사 교체로 인해 겪게 되는 학교 현장의 혼란과 다수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교육청이야 직위해제 결정을 내려놓고 할 일 다 했다고 하겠지만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온전히 감내해야하는 교사는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교육청에서 직위해제 요건을 엄격히 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전교조 지부도 사례 수집,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정책 협의 등을 통해 억울한 직위해제가 남발되지 않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2021년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통계자료에 의하면 아동학대행위자의 83.7%는 부모에 의해서 발생했다. 보육교직원에 의한 아동학대는 3.2%였다. 그러나 작년 6300여 명이 참여한 전교조의 설문결과에 의하면 교사 10명 중 9.3명은 자신이 아동학대자로 신고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어쩌면 과도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공포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는 등한시하면서, 아동학대 신고 및 수사만으로 징벌적 성격의 직위해제를 남발하는 교육청의 책임이 크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