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락] 저녁 밥상에서 흰색 아이리스를 이야기하다

이동백 퇴직교사 | 기사입력 2023/05/26 [19:43]
교사공감+
퇴직락
[퇴직락] 저녁 밥상에서 흰색 아이리스를 이야기하다
공적 업무에서 벗어난 해방감도 좋았지만 상실감도 상당했다.
상실감을 느낄 틈을 주지않는 것이 바로 꽃밭에서의 노동이다.
이동백 퇴직교사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23/05/26 [19:4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공적 업무에서 벗어난 해방감도 좋았지만 상실감도 상당했다.
상실감을 느낄 틈을 주지않는 것이 바로 꽃밭에서의 노동이다.

방문을 열고 나서니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다정한 인사처럼 들려온다. 오늘은 어떤 꽃이 얼마나 더 벙그러졌을까, 오늘은 자작나무의 잎이 얼마나 더 자랐을까, 어제 옮겨심은 꽃백일홍은 뿌리를 잘 내렸을까를 살펴보는 일로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보다 안젤라 장미가 세 송이 더 피어났고, 삼색 핑크빛 겹찔레는 어제보다 세 가지 색깔이 좀 더 선명해졌다. 작약은 벌써 꽃잎이 지고 씨앗을 품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삽목을 해서 키운 붉은 인동초는 체리나무를 감아 오르면서 들큰하고 은근한 향기를 뿜어낸다.

 

▲ 아내는 벌써 일어나 마당 아래 꽃밭에 나가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 이동백 퇴직교사

 

나보다 1년 먼저 명예퇴직을 한 아내는 벌써 일어나 마당 아래 꽃밭에 나가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내의 뒤를 이어 나도 올해 2월, 정년을 2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했다. 아내가 먼저 퇴직을 하고서 마당 앞에 큰 꽃밭을 일구어 놓았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아내의 꽃밭 일을 거드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힘쓰는 일과 목공일이다.

 

며칠 전에는 방부목을 한 아름 사다가 장미가 타고 올라갈 장미 아치를 만들었다. 다행히도 몇 년 전에 목공을 배워 둔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 몰랐다. 더욱이 아는 분이 주신 중고 원형 톱이 있어서 나무를 자르는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니 아치 만드는 일의 절반은 거저되는 것 같다. 오벨리스크 모양의 아치, 직사각형 모양의 아치, 지붕이 있는 사다리 모양의 아치, 격자무늬가 있는 울타리 모양의 아치 등 다양한 아치를 만들었다. 처음 만드는 것들이라 서로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고 간격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완성도는 엉성하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한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보다 만드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무엇보다도 아내가 만족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 방부목을 한 아름 사다가 장미가 타고 올라갈 장미 아치를 만들었다.     ©이동백 퇴직교사

 

아직 겨울의 매서움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복수초가 노랗게 피기 시작하면 우리 가재골의 꽃밭 일은 시작된다. 가재골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에 가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가재골. 그 가재골에 터를 잡은 지 벌써 11년째다. 사람들은 퇴직하고 여행이나 하면서 편히 지내지 왜 이리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묻는다. 사실 퇴직을 하고 나니 일정한 공적 업무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어떤 책임질 일로부터 모두 벗어나 있다는 상실감도 상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실감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 것이 바로 꽃밭에서의 노동이다. 풀을 베거나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흙을 열심히 퍼 나르는 일, 호스를 잡고 1시간 넘게 물을 주는 일 등은 육체적으로는 고된 일이지만 다른 생각을 없애주는 데는 아주 그만이다. 일의 삼매경에 빠진다고나 할까. 자발적 노동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노동을 자기가 즐거워서 하면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할 때 나오는 호르몬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 이동백 퇴직교사

좋아하는 꽃을 구해다가 심고, 좋아하는 나무를 한 그루 심을 때마다 마음이 자꾸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매일매일 변하는 꽃과 나무들의 변화가 미세하게 느껴진다. 어제의 나뭇잎 색깔과 오늘의 나뭇잎 색깔이 다르고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바람결이 다르다. 이렇게 자연을 느끼는 일 속에서 오롯이 자연 속에 빠져든다.

 

얼마 전에는 정말 심고 싶은 나무를 여기저기 다 수소문해 보았으나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사람이 인터넷 상에 소나무 묘목을 판다고 올려 놓았다. 그런데 그 소나무 뒤 배경에 우리가 사고 싶은 나무가 찍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소나무 대신에 그 나무를 팔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그 나무도 팔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나무를 파는 조건은 우리가 직접 나무를 캐가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나무를 캘 때 나무 분을 어떻게 뜨는지 동영상을 보아가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트럭을 빌려 타고 달려가 난생 처음 나무 분을 떴다.

 

다행히도 그 나무를 파는 분이 나무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라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무 분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끈을 이용해서 차로 들어 올리는 것도 그분이 알려준 방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태산목이라는 나무가 우리 꽃밭에 심겨지게 되었고, 지금은 뿌리를 잘 내리고 꽃봉오리도 여러 개 맺고 있다. 태산목의 꽃은 크기도 크고 향기도 좋다고 하는데, 정말 기다려지고 기대가 되는 꽃이다.

 

꽃이나 나무를 심고 기르며 산다는 것은 이러한 일들의 연속이다. 그것이 무엇 때문에 즐겁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만족할 답변을 찾지는 못하겠다. 내 몸 안에 식물과 교감하고 싶은 호르몬이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오늘도 우리 부부는 저녁 밥상에서 새로 핀 흰색 아이리스를 이야기하고 낮에 다녀온 누구네 꽃밭을 이야기한다. 세상사는 속 시끄러운 이야기 말고, 이런 대화가 밥상머리에서 오간다면 그럭저럭 살만한 삶이 아니겠는가?

 

▲ 저녁 밥상에서 새로 핀 흰색 아이리스를 이야기하는 그럭저럭 살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동백 퇴직교사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 콩새 2023/06/06 [14:54] 수정 | 삭제
  • 선생님 ~ 안녕하세요? 저도 4년뒤에 명퇴를 하려고 합니다. 퇴직하면 살 수 있는 산골집도 8년전에 구해두고 일주일에 한번씩 갑니다. 마당에 잔디를 깎아주고, 가우라(바람꽃)를 가꾸고, 텃밭에 기른 상추를 따고, 고추, 깻잎, 적겨자, 대파 모종에 물을 주고. 그렇게 하루를 보냅니다. 여기는 일주일동안 제가 머물렀던 도시와 차이가 많습니다. 바람과 공기가 다르고, 물과 풍경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릅니다. 주말에 머무르다가 일요일 오후에 이곳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그래도 그 꽃과 식물들이 그리워서 학교에서도 텃밭가꾸기를 합니다. 7명의 선생님과 함께 빈공간에 화분을 놓고 많은 모종들을 심었습니다.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가지, 딸기, 양파, 마늘, 돼지감자, 장미(란도라, 샤넬 드골, 이름도 처음 듣는 고급진 장미들을 학교 정원에서 꺾꽂이 해서 키워보려고합니다), 파인애플세이지, 도라지, 산딸기, 달맞이꽃... 아이들도 많이 참여합니다. 나쁜 말 하면 예쁜말하기를 벌로 줍니다. 욕을 하다가 걸린 00군은 *방울토마토야~~ 사랑해! 방울토마토야. 니가 열리면 내가 따먹어줄게~~* 하면서요. 그 모습이 예쁘네요. 아직은 좀더 교직에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정원에 놀러 가고 싶습니다. 그 정원처럼 두분 선생님도 아름다우실 거라 생각합니다. 늘 평화로운 나날 되세요.^^
광고
광고
PHOTO News
메인사진
[만화] 교육은 도박이 아니잖아요
메인사진
[만화] 어른이 교사의 어떤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