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락]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가 몇이나 될까?

양운신 퇴직교사 | 기사입력 2023/04/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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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락]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가 몇이나 될까?
나를 우선하여 돌보는 삶에 익숙지 못하다
2020년 9월부터 1인 시위 참여 후 시위 단상 공유
제자, 동지들의 격려와 응원이 힘이자 즐거움
양운신 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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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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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선하여 돌보는 삶에 익숙지 못하다
2020년 9월부터 1인 시위 참여 후 시위 단상 공유
제자, 동지들의 격려와 응원이 힘이자 즐거움

교육민주화동지회(교민동)!

나는 2019년에 현직교사인데도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모임인 교육민주화동지회(교민동) 사무처장직을 맡았다. 2020년 2월 정년퇴임을 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더더욱 교민동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 작년에 사무처장직을 내려놓았다가 금년에 열 달 만에 다시 맡았다. 노태우 군부독재 정권이 저지른 1989년 전교조 교사 해직은 반드시 원상회복이 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2023년 4월 3일, 대전 kt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교민동 정기총회에서 '윤석열 정부 숭일굴종 매국외교 규탄'을 선언하는 교민동 회원들  © 양운신 퇴직교사 제공


내가 꿈꾸던 삶

“은퇴 후, 저는 느리게, 조용히, 그리고 심심하게 지내면서 저 자신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약속을 많이 잡지 않습니다. 나를 드러내려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면 능력껏 돕습니다.” (<한겨레>, 2023.4.15. 이병남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 이게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나를 우선하여 돌보는 삶에 익숙지 못하다. 바람직한 삶은 모름지기 정의를,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리사의(見利思義)가 그런 것이다. 지금은 원상회복이 중요하다. 나의 1인 시위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촉구 1인 시위 시작!

2020년 9월 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전교조 법외노조취소 선고를 함으로써 전교조는 다시 합법적 지위를 회복했다. 교민동은 2020년 9월 18일 전남에서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그 후, 10월 19일 전교조가 청와대 앞에서 전국적 투쟁 선포하는 기자회견에 나도 참여하였다. 이틀 뒤부터는 내가 사는 고양시의 경기도고양교육지원청 앞에서 공휴일을 제외하고 171일차까지 매일 1인 시위를 하였다. 2021년 7월부터는 매주 수요일로 바꾸어 현재까지 94일차 (총 265일차) 시위를 했다.(2023. 4. 19. 기준) 1인 시위를 마치면 시위 단상을 써서 해직교사 단체 카톡방에 올리고, 제자나 몇몇 후배 교사들에게도 보낸다. 연대하고 싶어서다. 그 단상이 쌓여 240여 편이 되었다.

 

▲ 경기도고양교육지원청 앞에서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필자  © 양운신 퇴직교사 제공

1인 시위 단상

지난 4월 13일 1인 시위할 때는 19년 전 내가 고2 담임을 했던 제자를 만났다. 이제 경찰이다. 작년에도 시위하다 같은 자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아직도 원상회복이 안 돼서 계속 시위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선생님, 아직도 이러고 계셔요? 지금은 출근길이니 바쁘고 주말쯤 연락드릴게요.”

“으, 그래그래! 어서 가봐라.”

 

작년엔 반갑게 ‘사진부터 한 장 찍어다오!’ 했었는데 알아서 빨리 가주는 제자가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제자가 정말로 연락이 왔다. 16일 토요일에 소주를 한 잔했다. 정말 아끼는 믿음직한 제자!

 

“선생님! 시위를 왜 하세요?”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내가 잘못해서 교단에서 쫓겨난 게 아니라는 것을 국가가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시위하면서 마음이 흔들리진 않으세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어?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가 몇이나 될까? 전쟁 중 돌격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 병사가 몇이나 될까? ‘나는 두렵지 않다.’ 자기 최면을 걸면서 돌격하는 거 아닐까?”

“그렇죠. 저도 현장에서 범행 상대와 맞설 때 두렵지만 두려워하는 티 내면 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도 안 무서운 척하죠. 선생님은 저희 가르칠 때 말씀하신 대로 살고 계시네요. 시위도 선생님 자신과 싸우는 거잖아요.”

“그렇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

“저는 선생님을 응원해요. 오늘 선생님 뵈니까 좋네요.”

“허허! 자, 잔 들자!”

 

가수도 박수 소리에 힘을 내고 열창을 한다던데, 제자의 응원 한마디에 나는 어린애가 되고 말았다.

 

오늘은 비가 그치겠지 했는데 부슬부슬 내린다. ‘아, 언제 이 시위가 끝나나?’ 출발 전,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어제 저녁에 후배 교사 박 선생한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수요일인데 비도 오고 해서 안부 차~” 다른 때 보내주던 시위 사진, 단상을 못 보냈더니 연락이 온 거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멀리 고향의 50년 전 동기생이 응원하고 제자가 응원하고 후배 동지가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오늘 내리는 비를 피해 교육청 처마 밑에 서 있으며 드는 생각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수적석천(水滴石穿)! 우리의 시위가 반드시 승리를 부른다. 후회 없이 싸운다. 그래야 훗날 하늘에 부끄러움 없이, 나에게 부끄러움 없이 웃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위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격려

시위 후 써서 보낸 단상에 답글이 온다. 스물여섯 살 제자의 답글이다.

“선생님 답장이 늦었습니다. 요즘 일교차가 커서 감기 걸리기도 쉽고 코로나도 다시 돌고 있네요. 저도 요 며칠 콧물감기를 달고 살아요. 꼭 몸조심하세요! 봄은 다시 오고 꽃은 다시 피지만 애초에 전교조 해직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선생님은 4년의 봄꽃을 더 보셨겠단 생각이 드니까, 음~ 마음이 시려요. 선생님 항상 응원합니다!”

 

나도 직장 생활에 바쁜 ○○에게 답글을 보냈다.

“○○야, 고마워! ○○가 응원해주니 힘이 난다. ○○도 콧물감기라니 걱정이구나. 따뜻한 물 자주 마시고, 옷은 따뜻하게 입자. 마음은 너그럽게 가져보자. 그러면 여유가 좀 생기고 기운도 생기겠지. 힘내라!”

 

눈앞에 없어도 마음이 보인다. 동료들도 격려 글을 보내온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이다. 동지들과 함께 있다. 혼자가 아니다. 이것은 크나큰 즐거움(樂)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들 생각에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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