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월 23일 발표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의 첫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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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교육희망’은 정부의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정책을 비판하고 초등교사, 중등교사, 학부모 글을 통해 현장에서 우려되는 문제점과 대안적 방향을 다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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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학교, 디지털 사교육 시장의 먹잇감이 되다 • 김상정 기자
2화 : 교육부의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 비판 • 전교조서울지부 디지털문해교육팀
☞3화 : 교육부의 교육 현장 디지털화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 햇살 초등교사
☞4화 : 몰아치는 AI '디지털 교과서', 학교 현장의 우려 • 박범진· 허익현 교사
☞5화 : 사람다움을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 먼저! • 안현주 · 학부모
지난 2월 23일 교육부는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을 실현한다면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모두를 위한 맞춤식 배려 교육이 진짜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방안으로는 진정한 맞춤 교육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방안의 첫머리에 챗GPT를 언급하고 있다. 모든 아이가 획일적 정답을 요구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질문을 하는 교육이 중요하단다. 답은 챗GPT가 다 해주니까, 질문만 잘하면 된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지금부터 교육부 방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무턱대고 사용하는 챗GPT, 교육 ‘방해’
질문을 잘하려면 일단 상황을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통찰력을 키우려면 기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생각은 없는 눈치다. 게다가 현재의 챗GPT는 기계학습에 기반하여 확률적으로 그럴듯한 대답을 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가짜 보고서는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의미있는 질문을 했을 경우 팩트체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질문만 잘하고 대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이 없다면, 오히려 가짜 뉴스처럼 거짓 정보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한계를 모르고 무턱대고 사용하면 챗GPT는 교육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될 수 있다.
2월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텰기반 교육혁신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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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육부는 AI 기술 도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겉으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도 실제로는 수업을 주도하기보다는 수업을 디자인하고 AI를 보조하는 역할로 깎아내리고 있다. 교육부 방안에서 지식 수용자로서의 학생을 능동적 학습자와 대조시키고,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를 멘토와 코치를 넘어 학습 디자이너로서의 교사와 대조시키고 있다. 강의중심수업을 토론, 프로젝트, 거꾸로학습과 대조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구성주의(교육심리학이나 교수 설계에서 구성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지식과 의미를 구성해낸다는 이론) 학습관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교사의 역할을 AI로 대체한다고?
모든 건강한 인간관계의 바탕에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 경청, 존중 그리고 상호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 (스타니슬라스 드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281쪽)
건강한 교육학적 인간관계의 바탕 속에서 교사는 ‘직접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시각적 접촉과 언어 접촉을 통해 학생들의 주의를 끌고 주의를 공유하면서 학생들에게 학습이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바로 그런 학습을 통해 학생의 발달을 선도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이런 교사의 역할을 AI로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학습의 구상, 실행, 평가를 총체적으로 담당하는 교사의 역할 중에, 학습 디자이너로서의 역할만 강조하고 있다.
현실의 교사는 자신의 수업 준비에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방과후 수업이나 자유학기제 수업 개설, 강사 섭외, 채용, 때로는 강사비 계산까지 해야 한다. AI 활용 교육을 위해 수많은 디지털 기기의 준비, 점검, 충전, 보관까지 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교육부는 능동적 학습자로서의 학생과 학습 디자이너로서의 교사를 강조하고 있다. 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강조하면서 학생은 보다 적극적으로 학습에 참여하고, 교사는 설계자로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다. 물론 이런 수업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과거의 OECD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Competentence) 프로젝트에서 핵심역량을 강조한 이후, 역량이 지식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듯한 인식이 퍼졌다. 그러면서 기본적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은 이번 교육부 방안에도 “수업 또한 지식 전달을 위한 강의 중심에서 벗어나 토론, 프로젝트 학습, 거꾸로 학습 등 새로운 교수・학습방식이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OECD는 DeSeCo 프로젝트 이후 ‘미래의 교육과 기능 2030 프로젝트’에서 지식과 역량(기능)의 관계에 대한 보다 발전된 생각을 제시한다.
창의력은 기본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지식과 기능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보강합니다.
(OECD 미래의 교육과 기능 2030 프로젝트 개념 노트: 2030을 위한 지식 ‘요약’ 중에서)
학문적 지식이나 교과별 지식은 여전히 이해를 위해 필수적 토대이자, 학생들이 다른 유형의 지식을 발달시킬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학문적 지식을 습득할 기회는 형평성의 기초가 됩니다.
(OECD 미래의 교육과 기능 2030 프로젝트 개념 노트: 2030을 위한 지식 ‘핵심지점‘ 중에서)
위에서 지적하듯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기르고자 하는 창의력과 같은 많은 역량은 기본적 지식의 바탕과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인터넷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암기와 지식 교육 경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물론 장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쌓아온 온갖 지식을 학생들이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수만 년 간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갓 태어난 어린이가 19세 정도의 성인이 될 때까지 학교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습득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면서 창의적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도 점점 가능해지는 것이다.
2월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텰기반 교육혁신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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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교육부 방안은 이러한 기능을 AI에 떠맡기려 하는 듯하다. 과도한 학습량과 난이도에 시달려 수학을 포기하는 수많은 ‘수포자’들이 과연 AI 튜터가 제공하는 맞춤 학습을 통해 쉽게 수학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는 말인가? AI 음성 인식 기능을 이용해 AI와 말하기 듣기 연습을 하면 많은 학생들이 영어로 쉽게 대화하는 수준에 오른단 말인가?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코딩교육을 하는 것이 과연 새로운 대전환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교육인가? 나아가 이 교육부 방안이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기 위해 교사를 늘리는 것보다 진정 효과적이란 말인가?
그런 증거나 교육학적 이론이 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4차 산업혁명, 알파고, 메타버스, 챗GPT 등 센세이셔널한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그와 관련한 기술을 이용한 교육을 하면 선진적인 교육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2월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텰기반 교육혁신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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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실패는 고스란히 교사, 학생, 학부모의 몫
더욱 놀라운 것은 교육부는 이를 위해 교사들은이 ‘민간’ 전문가에게 집중 연수를 받아야 한다고 버젓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 중심 교육에 몰빵하기 위해 공교육을 사교육(민간)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겠다는 심산인가? 교육부 방안에 나와 있는 ‘에듀테크 구매 편의 제고’를 보면, 향후 에듀테크 시장에 공교육의 문을 활짝 열겠다는 포석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 외의 방안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옛 정책들의 반복일 뿐이다.
▲ 디지털 선도학교 운영, 인센티브 제공, 디지털교육지원센터 운영, 디지털 인프라 확충(1인 1디바이스, 학교 유무선망 확충), 부작용 차단(기기 과몰입, 과의존 방지, 유해콘텐츠 차단) 등등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옛 정책들의 반복일 뿐이다. © 2월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텰기반 교육혁신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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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육부 방안을 보면서 과거 이명박 정부 시기 교사와 학생에게 고통만 남기고 사라진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집중이수제’가 떠오른다. 당시 집중이수제는 특정과목을 특정 학기 또는 학년에 몰아서 배우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고 적은 과목을 깊게 배우게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진정한 교육이 주의의 공유를 통한 교사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교육부 방안이 별다른 교육적 효과나 성과 없이 공교육의 사교육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리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고통과 실패는 고스란히 교사, 학생, 학부모의 몫이 될 것이다. 교육부는 인구 절벽의 시대 학령기 아동 감소를 교사수를 감소시키는 핑계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맞춤형 개별화 교육을 진행하기에 지금도 많은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