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개학을 맞이하기도 전이었던 2월 26일. 조합원 가입 소식 중 눈에 띄는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바로 철원지회의 최희원 선생님. 선생님의 가입이 놀라웠던 것은 우선 2000년생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직에 들어선 강원지부 최초의 2000년생 조합원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강원도 최초의 공립형 대안학교인 '현천고등학교'의 1회 졸업생이라는 소식이었다.
최희원 선생님의 학창 시절과 성장 과정 속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의 흔적을 살펴보고, 청년 교사들의 고민을 들어보면서 앞으로 전교조가 무엇에 주목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마련했다. 인터뷰는 원주의 한적한 카페에서 진행되었고, MZ세대의 톡톡 튀는 말 속에도 누구보다 진지하고 치열했던 삶의 고민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조합원 선생님들의 학생들에 대한 헌신과 신뢰가 또 다른 '참교육 세대'를 만들어오고 있다는 점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함께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 전교조 강원지부 최초의 2000년생 조합원인 최희원 선생님의 모습.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의 헌신과 신뢰가 큰 역할을 했는지 깨닫게 된 인터뷰였다.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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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최희원 선생님. 우리 <교육희망> 독자들과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덧붙여 교직에 들어선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임용고시에 합격해 철원중학교로 발령받은 신규교사 최희원이라고 합니다. 현재 철원중학교 1학년과 2학년 도덕을 가르치고 있고요, 2학년 2반 26명의 담임교사입니다. 교사가 되었지만, 밀린 행정업무 때문에 칼퇴근 못 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건 전혀 어렵거나 힘들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이 정말 착해요. 그런데 학교라는 곳이 좀 관료적이고, 업무를 배우고 익힐 시간도 없이 당장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너무 힘드네요. 학교를 '전문적 관료제'라고 배웠는데, 전문성의 측면에서는 교사라는 직업에 100% 만족하지만, 관료제라는 점에서는 100% 불만족스러운 요즘입니다.
Q. 네, 아마 많은 신규 선생님께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학교 현장에 대한 고민과 대안은 잠시 후에 좀 더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고요. 우선 선생님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요. 공립형 대안학교인 현천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로 현천고등학교에 입학하시게 되었나요?
A. 저는 고향에 있는 일반 공립중학교에 다녔어요. 그런데 외우기만 하는 교육이 너무 힘들고 지치기도 해서 결국 부모님과 상의해서 유예 처리를 했고, 사립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입학한 대안학교는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아주 달랐어요. 소위 말하는 ‘귀족대안학교’ 같은 곳이었는데,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고 공부도 많이 하는 곳이었어요. 시키는 공부는 그런대로 잘 따라갔는데,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너무 안 좋았어요. 결국 공황 증상도 심해지면서 학교를 그만두었죠. 이후로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힘들게 지냈어요.
우리집이 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고, 특히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센터를 운영해요. 그래서 많은 분이 봉사하러 오시기도 하는데, 이 시기에 김영복 선생님(현 북원중학교 조합원)께서 한국어 봉사로 오셨다가 제 이야기를 들으셨죠. 선생님께서는 당시 현천고 개교준비팀에 계셨던 터라, 센터장 자녀인 제 소식을 듣고는 현천고등학교가 곧 개교할 텐데 와보는 게 어떻겠냐는 추천을 해주신 거죠. 그래도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장은 땄었고, 이대로 있다가는 뭔가 안될 것 같은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현천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답니다.
▲ 현천고등학교의 정경 © 최희원 선생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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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입학했던 현천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친구나 선생님들이 있을까요?
A.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저는 화가 참 많았던 아이였어요.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대체로 어른들과의 관계였어요. 가족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에 대한 분노였어요.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도 많았고요. 처음에 현천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선생님들에게 던진 질문들도 꽤 공격적이었더라고요. “학교에는 왜 교장선생님이 필요한가?”에서부터 “소수의 학생에게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 묻고요. 직전에 다녔던 사립대안학교에서는 “우리 학교는 문제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와는 다르다”며 뭔가 자신들의 우월함을 돋보이려 했었는데, 현천고도 그런 곳이 아닌지 경계했던 것 같아요. 날카롭게 날을 세웠던 거죠.
그런데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회복되더라고요.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는 수정이에요. 참 무서운 게 저도 현천고등학교에 와서 ‘나는 얘네들과는 달라’라는 마음을 가졌었어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같은 반이었던 수정이가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와줬어요. 제가 냉랭하게 반응해도, 개의치 않고 또 인사를 하면서 제 마음을 두드려 준 거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정이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어요. 남을 믿지 못해 스스로 가뒀던 제 마음의 문을 열어준 친구죠.
▲ (왼쪽 사진) 최희원 선생님이 학교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 현천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 맨 왼쪽부터 최희원 선생님, '은정이', 그리고 맨 오른쪽의 친구가 인터뷰에서 소개된 친구 '수정이'. © 최희원 선생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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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현천고등학교는 정기적으로 자전거 기행을 다녔는데, 자전거 타는 걸 가르쳐주셨던 변창수 선생님(퇴직조합원)도 기억에 남고요. 자전거 기행 때 한 방송사에서 동행취재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다가 제가 구덩이를 못 보고 가서 고꾸라진 적이 있어요. 그때 인솔 교사였던 이창성 선생님(현천고분회 조합원)께서 저 대신 막 화를 내주시면서 항의했던 모습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가 학교를 많이 답답해하다 보니 무단결과도 많이 했었는데, 2학년과 3학년 담임이셨던 박상률 선생님(섬강중분회 조합원)께서 이야기도 많이 나눠주셨고요.
그리고 저를 현천고등학교로 이끌어 준 김영복 선생님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예체능 계열을 좋아해서 1학년에는 연극활동, 2학년 때는 음악활동에 적극적이었어요. 어머니께서는 반대하셔서 제가 주말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음악학원에 다녔어요. 그런데 학원비 충당으로는 턱없이 모자랐죠. 나중에 제 이야기를 듣고 영복 샘께서 지원을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그런데 계속 지원을 받는 것도 죄송했어요. 선생님의 도움으로 반 년 정도 다니다가 너무 죄송해서 학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그만두려 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학원 선생님께서 또 배려해주시는 거에요. 덕분에 몇 달 정도 학원을 더 다니게 되었어요. 주변에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죠.
▲ 임용시험 합격 후 다시 만난 현천고 선생님들. 맨 왼쪽부터 이창성, 변창수, 박상률, 정수진 선생님.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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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어른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날을 세웠던 친구가, 자신을 응원해주는 친구들, 선생님들과 어른들 덕분에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네요. 그만큼 학교의 역할,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어떻게 해서 교사의 길을 고민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학원도 다녔는데, 사범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사실 그전까지 공무원이나 교사를 장래희망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막연하게 예술 쪽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음악이 질리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음악은 그냥 좋아하는 걸로 두기로 했죠. 고 3이 되어서 ‘난 뭐 하고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계속 물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를 묻게 되더라고요.
저는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 상태라고 정리했고, 제가 주로 고통스러웠던 때를 되돌아보니 누군가를 미워했던 때였어요. 그래서 남들이 저처럼 남을 미워하고 힘들어했던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고, 누군가에게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제가 바라는 꿈을 정리한 거죠. 저는 그 꿈을 위한 역할로서 교사가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제 적성이나 능력, 성격을 비춰보았을 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날이 2017년 5월 3일 석가탄신일이었어요. 제 복잡했던 생각들을 정리했던 날이라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답니다. 이후로 제 능력과 관심사를 고려해서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진학을 준비했고,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에 최종 합격을 했죠.
Q.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졸업과 동시에 임용시험에 합격하셨다고 들었어요. 교사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중등 임용시험에서 초수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A. 저는 임용시험을 봐서 정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되게 늦게 했어요. 기간제교사로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어려운 임용시험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몇 가지 계기들이 있었어요. 우선 사범대학에 입학해서 다니다 보니 1학년 때부터 임용시험을 준비하느라 경쟁에 매몰된 친구들이 무척 많았어요.
하루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수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제작성을 하고 있던 같은 과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이렇게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건 잘못된 게 아니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내가 과제 제출을 못해서 임용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좀 충격이었어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조차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교사가 된다면 어떨지 아찔하기도 했어요. 제가 기간제교사로서 교육활동을 펼치고자 할 때, 학교현장에서 얼마나 제 목소리에 귀기울여줄지 회의적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가장 크게 임용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던 계기는 작년 6월에 교육감이 바뀌면서 현천고등학교의 학교운영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였어요. 내부형 교장공모제도가 방해받고, 예산도 대폭 줄 거란 우려들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현천고등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랐어요. 현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당당하게 교직에 들어선 모습으로 말이죠.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 현천고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최희원 선생님이 첫 출근때 받은 김영복 선생님의 화분 선물. 쪽지에 "사랑하는 제자 희원아, 발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는 이미 훌륭한 선생님이야. 사랑한다."라고 적혀있다. © 최희원 선생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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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임용시험을 준비하셨을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임용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사실 초면은 아니죠? 2월에 있었던 신규교사 연수에서 전교조 홍보하러 갔을 때 인사도 나눴었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원 샘께서 전교조에 가입을 해주셨어요. 어떤 고민으로 전교조에 가입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전교조는 원래 알고 있었어요. 교사가 되었으니 교원단체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소신에 따라 고민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윤리 전공인데, 아이들에게 성숙한 시민으로서 사회에 관심을 두고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가르쳐야 하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죠.
마음을 굳혔던 건 신규교사 연수 때였어요. 전교조가 재밌기는 했지만, 당장이라도 가입해야겠다는 정도의 생각으로까지 이어진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 심기를 건드렸던 연수가 있었는데 바로 ‘교총’ 연수 때였어요. 강사님이 교권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얼마 전 이슈였던 교단 앞에서 핸드폰 충전하던 학생과 관련한 뉴스 보도를 보여주시면서 그 아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나쁜 놈입니다.”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아이의 행동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 자체를 나쁘다고 낙인을 찍는 거예요. 그것도 신규 선생님들 앞에서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나도 무단결과를 많이 했고 그런 친구들도 주변에 많았는데, 나와 그 친구들이 이 단체에서는 나쁜 놈이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전교조를 선택했어요. 일종의 소거법이죠.
Q. 전교조와의 첫 인연은 소거법으로 시작되었지만, 앞으로는 전교조가 더 좋고 필요해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저희도 분발해야겠네요. 그런 점에서 신규 선생님들의 첫 교직 생활은 어떤가요? 개선이 필요하거나, 전교조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지 말씀 부탁드려요.
A. 전교조에 막 가입한 아기 교사로서 전교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참교육이라 생각해요. 같은 조직 구성원이라도 각자의 참교육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다름을 존중했으면 해요. 다만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을 포함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참교육의 기본, 조직의 기본으로 여기는 조직이 전교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신규교사로서 전교조에서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것도 있어요. 다른 지역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니지만 강원도는 신규, 저경력 교사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정식 발령 한 달도 안 되었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정말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에요. 우선 임지 발표가 너무 늦어요. 학교 출근 1주일 전에 발령학교를 알려주는 게 정상인 건가요? 같이 임용을 준비했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경기도는 1달 전에 알려줬다고 하더라고요. 발령지역이 발표되는 날, 철원의 경우엔 담당 장학사가 출장을 가서 학교는 그 다음 주가 돼서야 확인이 되었어요. 출근 3일 전에요.
학교를 와보니 더 놀라웠어요. 행정업무에 대한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고, 배당된 업무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못해도 롯데리아 알바도 사수는 붙여주는데…. 모든 신규 선생님들이 느끼는 고충일 것 같아요. 저는 이미 이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앞으로 내 후배가 될 교사들은 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어요. 뭔가 바꾸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중이에요. 신규교사의 적응을 도울 방안을 제시하거나 알려주면 좋겠어요. 진짜 이대로 두는 건 ‘개노답’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애들한테 뭐 해주지도 못하고, 다른 반 보다 실수도 많이 해서 미안해 죽겠거든요.
▲ 기자가 최희원 선생님의 조합 가입을 축하하며 선물한 작은 화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2000년생의 톡톡 튀는 말 속에서도 삶과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느낄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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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의 지적이 무척 뼈아프네요. 상대적으로 귀기울이지 못했던 신규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것에서부터 전교조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매년 강원지역을 떠나는 선생님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함께 고민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되고요.
오늘 최희원 선생님과 인터뷰를 나누면서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애써주셨던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헌신을 느낄 수 있어서 감동이 더 컸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참교육의 기본정신을 잊지 않고, 전교조 강원지부도 조합원 선생님들의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A.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