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2년도 12월에 접어들었고 아이들과 작별을 준비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올해까지 온전하게 1년을 책임지고 담임을 맡아서 아이들과 생활한 게 어느덧 10번째가 되었다. 올해는 나름 교직 생활의 업적을 만든 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염원했던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을 한 번씩 맡아 보는 ‘초등 담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의 차이는 매우 크다. 1학년을 맡았을 때 아이들과 만나는 둘째 날 아침, 한 보호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실 우리 아이가 젓가락질을 잘 못 하는데 급식을 잘 먹을 수 있을까요?”
전혀 상상조차 못 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소소한 충격을 받았고, 그때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5명 정도는 젓가락질을 잘 못 한다고 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1학년 아이들은 놀아주기만 해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소소한 행복감을 느꼈다. 반면 6학년은 사건이 발생하면 규모가 크다. 그 와중에 사건 관련자가 여러 반에 걸쳐 있는 경우에는 처리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고 아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체력 소모가 심하기도 하다. 그래도 학급살이가 안정화된 상황이라면 나름의 수준 높은 대화와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눌 수도 있다. 이렇듯 각 학년을 맡았을 때, 아이들에게 힘을 얻을 수 있는 부분과 힘이 드는 부분이 확연하게 다르다. 그만큼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아름다운 작별에 대한 생각해보다
6학년의 경우는 앞으로는 학교에서 만날 수 없게 되니 더 마음 아픈 작별을 해야 한다. 작년 2021년에 6학년을 맡았을 때, 코로나 상황에서 졸업식을 어디에서 해야 하나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졸업식날의 방역 단계와 코로나 확산 정도에 따라 전체가 모여 강당에서 졸업식을 할지 각 학급에서 진행할지 결정되는 상황이었고 근본적으로 강당에서 졸업식을 진행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결국, 졸업식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방역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졸업식을 꼭 강당에서 할 필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아이들의 대답은 “강당에서 졸업식을 하고 싶다”였다. 그 이유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강당에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기념하고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결국 너무나도 급격한 코로나 확산 때문에 학급에서 졸업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작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름다운 작별을 할 수 있도록 학급에서 소소하게 할 수 있는 마무리 활동은 결국 아이들이 나와 함께한 1년 동안 얼마나 많이 성장하고 발전했는지를 확인하는 활동과 담임 교사인 나와 제자인 아이들의 관계를 잘 매듭지을 수 있는 활동이다.
마지막 날 확인하는 ‘타임캡슐 활동지’
▲ 타임캡슐 활동지는 3월 첫 만남 때 쓰고, 학급마무리를 하는 마지막 날 확인한다. 손가락 그림에 손을 대면서 1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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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년이 시작할 때 작성했던 타임캡슐 활동지를 나눠주는 활동과 선생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하는 활동이 재미있었다. 타임캡슐 활동지는 3월 첫날 쓴다. 앞에는 1년 동안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서 써 보고 뒤에는 연필로 자기 손을 대고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날 활동지를 다시 확인하면서 1년 동안 내가 처음에 마음먹었던 만큼 살아왔는지 확인하고, 손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했다. 이 활동은 1년 동안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이 만들어 주는 ‘선생님 사용 설명서’
▲ 우리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이 담임교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 어떤 교사였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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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음 해에 만날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아이들이 설명서를 만들어 준다. 아이들은 설명서를 만들면서 나와 함께 했던 1년을 되짚어 보며 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나는 설명서를 확인하면서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는가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위와 같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활동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1년 동안 아이들이 배웠던 것을 정리할 수 있는 활동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교과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나 영역에 대해 조금 더 전문성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강당에서 열린 다양하고 풍성한 학급 음악회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음악 수업을 할 때 교과서에서 벗어나서 다양하게 수업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교과서를 보다가 생활화 영역에서 학급 음악회를 하는 내용을 보고 제대로 음악회를 열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그해 학년이 끝나갈 때쯤 날을 잡아 강당에서 학급 음악회를 열어보자는 제안을 아이들에게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어떤 친구는 노래를 부르고, 어떤 친구는 리코더를 불고, 어떤 친구는 피아노도 연주하는 등 아이들이 각자 연습하고 준비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학급 음악회를 만들게 되었다.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쓴 ‘자기평가 포트폴리오’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혁신학교다. 학교가 교육과정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와는 다른 것이 있다. 그중에 한 가지가 학기 마지막에 학생들이 ‘자기평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에 선생님들과 함께 자기평가 포트폴리오 서식을 만들었을 때학기 말 할 일도 많은데 굳이 이런 것까지 꼭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아이들이 쓴 것을 보니 교사가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이 배운 것을 확인하고 돌아보는 과정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각자 쓴 포트폴리오는 생활통지표와 함께 묶어서 가정으로 보낸다. 교사가 작성한 생활통지표와 아이들이 작성한 포트폴리오를 같이 가정으로 통지하니 더 좋았다.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어른이 된다는 것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나에게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연락하고 찾아오라고 이야기한다. 올해는 나의 세 번째 제자들이 수능을 치는 해였다. 함께 생활한 지 7년이나 지났고, 그사이에 연락한 제자들은 손에 꼽지만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잘 지내라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찾아 수능 이틀 전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돌렸다. 전화가 가능한 친구들과 전화하고 나니 수능을 앞두고 긴장을 한 친구도 있고, 이미 취업해서 일하는 친구도 있고, 대학에 합격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도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흩어져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제자들에게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함께 한 1년, 그 이후의 삶도 모두 행복하기를
나는 나와 함께한 제자들이 나와 함께한 1년만 행복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언젠가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거나 사회에 진출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공동체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면서도 먹고 사는 걱정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아가 살맛 나고 따뜻한 사회 속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는 어른인 나는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끔찍한 사회적 참사들을 지켜보면서,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젊은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하고 연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올해도 아이들과 어떻게 잘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