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넘어⑤] 10.29 이태원 참사, 슬픔과 분노로 49재를 맞이합니다

김고종호·전북지부 정책실장 | 기사입력 2022/12/16 [10:09]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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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넘어⑤] 10.29 이태원 참사, 슬픔과 분노로 49재를 맞이합니다
운 좋게 살아남아 안일하게 살고 있는 제가 감히 말씀드려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필요없다. 배신하지 않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자
김고종호·전북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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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2/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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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살아남아 안일하게 살고 있는 제가 감히 말씀드려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필요없다. 배신하지 않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자

편집자주 : 1029 참사로 많은 선생님들이 아파하고 계십니다. 교육희망은 선생님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교사로서 고민을 확장해나가자 합니다. 12월 16일은 1029 이태원 참사 49재 추모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49재를 맞으며 오피니언 김고종호 선생님이 그간 느껴온 슬픔과 고민을 보내오셨습니다. 함께 나눕니다. 

 

 

 

슬픔과 분노로 힘들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에 이 글을 청탁받았다. 슬픔과 분노를 차분하게 표현해달라고 했다. 항상 늘 그렇듯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글로 담아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내 능력치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상에는 참사를 보도한 종이신문만 수북이 쌓였다. 옆에서 "놓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신문들은 보내주자"고 했다. 기사 제목들만 다시 봐도 그때로 돌아가며 울컥 했다. 그리고 어느덧 한달도 훨씬 지나 오늘(12.16.)이 49재 날이다. 내가 불교도는 아니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일곱번,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그 거리에 서 있었을 사람들을 온몸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인파에 이리저리 밀리며 참석했던 여러 가을 밤 축제 공기의 촉각과 후각을 떠올리며, 나를 끊임없이 이태원 그 자리로 들여보냈다. 숨이 막혔다. 이제 내세로 떠나는 그분들을 위해 이 글을 시작해야만 한다.

 

▲ 책상에는 참사를 보도한 종이신문만 수북이 쌓였다. 옆에서 "놓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신문들은 보내주자"고 했다. 기사 제목들만 다시 봐도 그때로 돌아가며 울컥 했다.  © 김고종호 주재기자


편안한 아침에 늦잠을 자다가 참사 소식을 들었다.

"이태원 할로윈에서 사람이 죽었대." 30여년전 어느 가을날 아침 뉴스에서 한강 CCTV를 보여주며 "출근하실 때 성수대교 말고 다른 다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들었을 때처럼, 동화 속 앨리스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그 말을 들었다. "무슨 소리야? 건물이 무너졌어?"

 

텔레비전을 켰다. '압사'라고 했다. 화면에는.. 길바닥에 축 늘어져있는 사람들과.. 급박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들 모습이 나왔다. 수십명이 동시에... 뉴스는 그날 하루종일 그 장면을 무한 반복했다.

 

그날 정오에 정부의 첫 공식브리핑이 있었다. 국무조정실장, 보건복지부 장관,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이 쭉 섰다. 기분이 쌔했다. 사고 처리를 잘하겠다는 말뿐,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의례적인 표현조차 없었다. 그리고 질의응답.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말들을 했다.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건 아니었고.. 경찰이나 소방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수 있었던 건 아니었고.. 서울시내 소요와 시위에 경찰 병력이 가있었다.."

 

"저 새끼가 뭐라고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마 그 브리핑룸에 있었다면 신발을 던졌거나 너 제정신이냐고 물었을 것 같다. 이게 10월 30일 일요일의 이야기다.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들여다본 여파는 그 다음날 왔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아, 이게 트라우마라는 거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의 그때 그 태도가 49일동안 이어졌다.

참사 당시 경찰청장과 행안부 장관은 보고도 늦게 받았고 적절한 대응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싶다"더니, 두꺼운 낯짝으로 나와 화물연대 파업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라며 엄정대처하겠다고 떠들었다. 집권여당은 처음에는 물러나야 한다고 하더니 대통령 의중을 확인하고나선 국회 파행을 감수하며 열심히 쉴드 치고 있다. 윗선들의 법적 책임이 명확한데 경찰은 밑에서 구조했던 사람들 쪽만 수사하고 있다. 세월호 때 123정장을 구속했던 것처럼 말이다.

 

법적 책임을 따지기 전에 정치적 책임부터 져야 상식이다. 그러라고 정무직 '어공'이 있는 거다. 일주일의 애도기간이 끝나면 책임을 묻는 시간이 될 거라고, 윤 대통령의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며, 개각 수준의 경질이 있거나 적어도 경찰청장은 경질할 거라고 언론은 군불을 피웠지만, 대통령은 50여일이 되도록 아무런 결단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태세다. 경질은커녕 '공식 사과'도 하지 않았다. 오며가며 '슬프고 미안하다'라고 하면 사과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윗대가리들의 잘못된 시그널은 정치권과 공직사회 전반에 뻔뻔한 태도의 당위성을 안겼다. 국무총리는 외국기자들 앞에서 농담이나 해대고, 총괄조정관이란 사람은 "기자들 질문을 다 받아줘야 하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실 수석들은 "웃기고 있네" 메모를 남겼다. 인사혁신처는 검은색 리본에 글자를 넣지 말라고 했고, 경찰은 슬퍼하는 사람들을 사찰하고 동향을 보고했다. 이런 만행들을 다 늘어놓기 힘들 정도다.

 

그분들은 한날 한곳에서 죽었다.

그런데 합동장례식을 하지 않았다. 각자가 여러 장례식장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슬픔으로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 나는 이게 제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거 사례를 놓고 봐도 외국 사례를 놓고 봐도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사고든 재해든 재난이든 사회적참사든, 한날 한곳에서의 죽음이라면 여러 희생자들을 함께 모셔서 합동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상식이다.

 

유가족들과 조력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1대1로 매칭했다 하고, 면담을 요청해도 혼자만 만나자고 했다. 명단도 공유해주지 않았고, 유가족끼리 연락하지 못하도록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는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모여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함께 모여서 정부에 사과와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체적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삶을 회복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겨우 유가족협의회가 만들어지자, 집권여당 정치인들은 "세월호의 길을 걷고 있다"며 망언들을 쏟아냈다. 정부와 서울시가 손놓은 사이 유가족협의회가 겨우 희생자 영정과 위패를 모신 '시민분향소'를 열었다. 국가는 없었다. 참사 전에도, 참사 당시에도, 참사 후에도.

 

우리 일상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내가 운이 좋았다. 등교와 출근을 위해서 항상 미아삼거리역에서 10-4번 문으로 지하철을 탔다. 이미 꽉 차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밀고 들어가야 했다. 기다려봐야 그 다음차도 다다음차도 마찬가지니까. 숨이 막히고 호흡곤란이 온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그랬으니 키가 작으신 여성분들은 더했을 것이다. 출근시간대 연착에 따른 급정거 급출발에는 파도에 쓸리듯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환승을 위해 휩쓸려 우르르 내릴 때, 흥건히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게 우리 일상이었다. 인파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며, 서울을 살았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 그래도 죽지 않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안도감이 있었다. 다른 말로, 그래도 죽지 않고 지나갈 거라는, 안일함이 있었다. 모든 참사는 그런 느슨함에서 온다. 국가는 그러면 안 된다.

 

119 상황실 신고 녹취록을 보면, 신고자들은 '압사', '통제'라는 정확한 표현을 쓰면서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국가에 전달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내 일상의 안일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로 다른 그 분들은 냉철하게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국가가 마땅히 그 제안을 수행해주길 기다렸다. 무려 네 시간에 걸쳐서 말이다. 그런 믿음을 국가는 배신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군림하기만 하는 권력이 왜 필요한가?

 

이츠 낫 유어 폴트.

미안함, 죄책감은 늘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에게 그런 감정은 연대의 마음을 부여잡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서 겨우 살아돌아온 생존자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가족들에게 미안함, 죄책감은 위험하다. 이들은 주위에서 다 아니라고 해도 이런 감정을 과도하게 가지게 된다. 이를 떨쳐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회의 책무이다. 그런데 되려 '니들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인행위다.

 

정부가 '토끼 머리띠'니 '마약'이니 흘리며 살인행위를 추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어제 봤다. 당시 참사 현장에 40여분 넘게 깔려 있던 이 학생은 의식을 잃기 직전 구조되어 생존했지만, 바로 옆에서 친구들이 숨지는 모습을 그대로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인터넷에 쏟아지는 악플에 힘들어했다. "연예인 보러 놀러 가서 그렇게 된 거 아니냐.",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우리 세금으로 배상해줘야 하냐.", "다 큰 자식들 놀러가는 것을 부모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냐." 이렇게 죽은 친구들과 가족을 모욕하는 각종 발언과 악성 댓글을 보며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고 한다. "나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꼭 내가 가르치는 교실의 학생일 것만 같아서 먹먹했다.

 

트라우마 심리상담을 지원하겠다고 정부는 떠들었고, 피해자와 소통하는 재난조사의 필요성을 전문가들은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진짜 책임있는 자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변명과 막말을 늘어놓으며,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죄책감을 먹이삼아 빠져나가는 사이에, 우리는 좀 더 열심히 돌보지 못했다. 이 말을 강하게 해드리지 못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늘 저희가 각자의 위치에서 49재 추모제를 지내고자 하오니, 

조금이나마 위안 받으시고 잘 건너가셔서

부디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 못다이룬 꿈 꼭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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