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퇴직교원 정부포상 포기 사유서

최영자 · 전북 남원중 | 기사입력 2022/09/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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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퇴직교원 정부포상 포기 사유서
평생 아이들 곁에 있었던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값진 상입니다.
더이상 바라는 포상 없습니다.
최영자 · 전북 남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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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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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아이들 곁에 있었던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값진 상입니다.
더이상 바라는 포상 없습니다.

편집자주 : 전북 남원중 최영자 선생님께서는 8월말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정년퇴직을 앞둔 4월 훈장 포기 사유서를 작성해서 학교에 제출하셨습니다. 포기 사유서를 읽은 선생님들이 여러 조합원과 함께 읽고 싶다며 교육희망에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최영자 선생님 동의를 얻고 교육희망에 담습니다. 무언가를 포기할때 이렇게 멋짐 폭발할 수 있음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퇴직교원 정부포상 포기 사유서 전문 


   

본인은 1983년 3월 1일부터 2022년 4월 22일까지 전라북도에 있는 5개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39년 2개월 동안 재직했으며 오는 8월말 39년 6개월의 교직생활을 마치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부의 ‘퇴직교원 포상 계획'에 따르면 저는 근정훈장 중 3등급인 홍조훈장이나 2등급인 황조훈장의 포상대상자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 훈장을 받지 않겠습니다.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는 교육공무원으로 '장기간' 근무했다는 이유로 모든 교육공무원에게 훈장을 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육공무원은 수많은 직업 중에서 제가 선택한 직업이었고, 그 직업에 대한 직무를 수행한 대가로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가 주는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직업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기본사항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직업이든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 훈장까지 받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월급을 받으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으로 훈장까지 받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국가와 공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많은 분들에 대한 형평성에 어긋나는 지나친 혜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 저는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비판적이었고, 옳지않다 싶으면 이의제기를 하였습니다.

  

'정부 포상'이란 국가가 아닌 정부가 주는 것입니다. 정부가 주는 포상은 결국 정부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른 사람들이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교사로서 정부가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고 나서서 반대했습니다. 서명하고 집회에 참여하여 시위도 하고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우연히도 큰 징계를 받지는 않았기에 포상대상자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와는 달리 국가와 사회, 학교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참교육을 위해,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징계받고 해직된 동료 교사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분들 중 대부분은 '제외대상자'입니다.

 
퇴직시 포상 대상에서조차 제외되는 그런 분들 때문에 나라와 사회 그리고 학교가 조금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을 보면 저는 늘 부끄럽습니다. 훈장은 제가 아닌 그 분들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셋째, 저는 제가 퇴직할 때 저에게 훈장을 줄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도 정식 출범을 하기도 전부터 공정과 상식에서는 벗어나는 정부, 40여 년 동안 제가 청춘을 바쳐 이루려 애써왔던 교육의 가치를 훼손하는 교육정책을 표방하는 정부,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해 교육으로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려 안간힘을 써온 제 노력과 의지를 역행하는 정부에서 줄 훈장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런 사유로 저는 이 정부에서 주는 훈장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넷째, 퇴직교원 정부포상 신청과정에 문제가 많습니다.

  

학교에 배포된 공문을 보니 포상 신청서에 들어가는 공적조서를 신청자 자신이 쓰게 되어있습니다. 훈장 하나 타겠다고 제 손으로 제 공적조서를 쓰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훈장을 타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려 하니 '포기각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합니다.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훈장을 받을 수 없게 될 텐데, 교육청은 왜 '포기각서'까지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포기각서'란 신청한 사람이 후에 신청한 것을 포기할 때 쓰는 게 맞습니다. 신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포기각서'를 받는 것은 포상대상자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오로지 관료들의 '행정편의'라고 볼 수 밖에는 없습니다.

 

40여 년을 오로지 교육에 매진한 교육자를 참 스승으로 보고 포상하려 하는 정부라면 이런 업무편의적인 지침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자에 대한 존경과 참 마음이 없고 오로지 관례적으로 주는 포상이라면 받고 싶지 않습니다.

  

다섯째, 저는 지금 현재까지도 아이들의 곁에 있었던 것으로 훈장보다 훨씬 값진 포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였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 스스로 배움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늘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었고, 변화해 가는 아이들 곁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온 39년이 넘는 세월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그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훈장보다 값진 상이었기에 더 이상 바라는 포상이 없습니다.

  

그 밖에도 소소한 이유들이 있지만 이것으로 줄이고, 저는 위와 같은 사유로 퇴직 교육공무원에게 주는 정부포상을 받지 않겠습니다.

 

2022년 4월 22일 

 

전라북도 남원중학교 교사 최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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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주가 고향 2022/10/03 [14:50] 수정 | 삭제
  • 음,,, 전체적인 내용에 공감이 되긴 합니다만... 아마도 이 선생님은, 세 번째 이유를 참고로 했을 때 정부가 바뀌기 전이었다면 훈장을 신청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제 추측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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