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락] 아이들 생일축하로 시작한 '붓글씨' 퇴직후 삶 열어줘

나승인· 퇴직교사 | 기사입력 2022/09/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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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락] 아이들 생일축하로 시작한 '붓글씨' 퇴직후 삶 열어줘
아이들과 나를 위한 일을 찾아보세요.
퇴직후 삶을 열어주는 디딤돌이 될거에요.
나승인· 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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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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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나를 위한 일을 찾아보세요.
퇴직후 삶을 열어주는 디딤돌이 될거에요.

▲ 나승인 선생님 책 '시의 마음 붓의 노래'에 담긴 작품 중 '참스승'  © 나승인 선생님 제공

 

신기해요. 퇴직 전과 후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서울서 시작한 교직생활을 무주로 옮겨 16년을 더하고 퇴직한 지 3년 반이 지났습니다. 서울에선 용마산 수락산 도봉산 밑을 찾아다니며 살았고 무주에 와서는 아예 백두대간 품에 안겨 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 삶도 산과 물을 닮아갔는지 퇴직 전과 후가 뜻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 저도 신기합니다. 이런 제 삶을 후배 선생님들께 전해드려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고맙게도 기회가 주어졌네요~^^

 

무주마을교육지원센터장, 설천면 풍물패 상쇠, 무주신문 서예만평작가, 60+기후행동운영위원... 지금 제가 가진 직함들인데요, 간단히 하나씩 소개드리고 붓글씨에 대해선 (편집자 요청에 따라ㅎ) 조금 길게 말씀드릴게요.

 

무주마을교육지원센터는 교육지원청으로부터 마을교육프로그램 전반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곳인데요, 무주깊이알기 탐방안내와 특강이 주된 활동입니다. 무주에 와서 바로 시작한 일이 농촌학생의 정체성 찾아주기였고 무주시민회에도 깊숙이 참여하게 되었기에, 마을과 학교를 잇는 마을교육공동체운동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퇴직하고선 센터장의 책임도 맡게 되었습니다.

 

풍물은 국어선생으로서 우리 것을 좀 알아야겠다고 교직 초기에 시작했는데, 너무 신명이 나서 몇 달 배운 실력으로 겁도 없이 풍물동아리를 만들어 배우면서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퇴직할 때까지 근무한 모든 학교에서 동아리를 만들어 동네방네 북치고 장구치고 다녔더랬습니다. 그 사이 실력도 시나브로 늘어났던지 주민센터 풍물강사 겸 상쇠를 10년 넘게 맡고 있고(무주세계태권도대회 때 공연도 했어요^^), 퇴직하고 나니 초등학교 음악 협업수업 및 자유학기제 풍물수업 강사로도 불려다니게 되었네요.(초등학생들이 너무 귀여워요!)

 

붓글씨는 반아이들 생일축하로 시작했어요

이제 붓글씨 얘기를 해야겠네요. 지난 7월에 그동안 써온 글씨들을 다듬어서 무주도서관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도록을 겸해서 책도 출간했는데요, 작품이 무려 40점 가까이 팔렸고요, 책도 자비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내줬습니다!(‘시의 마음 붓의 노래’, 문학의 숲)

 

붓을 잡아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아이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생일이나 졸업을 맞는 아이들에게 예쁜 카드를 써주는 여선생님들처럼 나름 축하해줄 방법을 찾다가 생각해낸 것입니다. 과목도 국어이니 좋은 시 하나씩 써주면 좋겠다 생각하고 무작정 붓을 잡았습니다. 작은 종이에 작은 글씨로 쓰는 것이어서 따로 서예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를 만났습니다(서예집 ‘손잡고 더불어’, 1995, 학고재). 선생님처럼 내 글을 (선생님 글씨체가 아닌) 내 글씨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어려웠는데 20년쯤 쓰다보니 책도 냈어요

본뜨지 않고 내 글과 글씨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의 괴로운 시간들을 거쳐 처음으로 ‘뚜벅뚜벅’이 탄생했습니다만, 차지 않은 샘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글과 글씨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한 해 고작 두어 편 정도, 그나마 몇 년이 지난 뒤에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써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20여 년쯤 치러내고 보니 행운처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7년 전 고마운 출판사를 만나 글씨와 글을 섞어 엮은 책을 내게 되었고, 전교조 벽달력 글씨로도 대접받아 갔더랬습니다. 그리고 4년 전 무주의 유일한 지역신문(무주신문)이 창간되면서 ‘나승인의 붓글/마음글’이 격주로 실렸습니다.

 

▲ 나승인 선생님 책 '시의 마음 붓의 노래'에 담긴 작품 중 씨과실  © 나승인 선생님 제공

 

풍물도 그렇지만 붓글씨를 취미로 삼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텃밭일을 마치고 몇 시간째 글씨를 쓰면서 보냈습니다. 올초부턴 60+기후행동에 참여하면서 환경문제를 담은 글씨를 써보려고, 심각하지만 즐거운 고민을 늘 품고 지냅니다. 제 글씨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세상에 평화와 정의와 생명을 불어넣는 작은 숨결이 되기를 소망하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저에겐 평화입니다.

 

아이들과 나를 위한 일을 찾아보세요. 퇴직후의 삶을 열어줄거에요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후배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이미 파악하셨겠지만), 퇴직 후에 할 일을 따로 찾기보다 아이들을 위하면서도 나를 위한 일(취미) 두어 가지를 찾으셔서 교직생활 내내 이어보시라는 말씀이네요. 그러다보면 그것이 퇴직 후의 삶을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디딤돌이 될 거니까요. 그리고 학교라는 섬에 머물지 말고 마을(지역)과도 소통하며 지내시면 더욱좋고요. 선생님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 나승인 선생님 책 '시의 마음 붓의 노래'에 담긴 작품 중 뚜벅뚜벅  © 나승인 선생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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