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교직을 마치면서 교직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은퇴를 하면서도 여전히 설렘을 느끼는 철없는 교사의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학교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는 우리 모두의 서사입니다. 그 시대의 아픔도 담겨있습니다. 아이들을 믿음으로 방목할 때 스스로 성장함을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사랑이란 일곱색깔 무지개이기에 해마다 분필로 썼다 지워야 합니다. 그 추억을 다시 소환해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래 글은 마지막 제자들에게 썼던 편지와 마지막 제자들이 제게 써준 편지입니다
마지막 제자들에게 띄우는 마지막 편지
시험이 끝난 후, 오후의 교정은 고즈넉합니다. 썰물 빠져나가 듯 아이들은 학교 밖 세상으로 삼삼오오 사라집니다. 시험 스트레스를 훌훌 털고 롯데월드에 가거나 영화관으로 향하겠지요. 커피숍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친구들도 있네요. 다들 오늘만큼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은 햇살이 비추는 적요한 교정 벤치에 홀로 앉아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봄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와 교정의 나무들이 일제히 나부낍니다. 누군가 단풍나무 아래 꽃분홍 철쭉을 심어 놓았는데요, 두 나무의 나부낌이 미뉴에트 춤처럼 우아하게 느껴집니다. 쿵 짝짝~ 쿵 짝짝~ 여러분은 지금 어떤 춤을 추고 있을까요?
여러분과 함께 한 지난 두 달은 꿈결처럼 흘러갔습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맑고 예쁜 아이들이라니! 저는 주변 선생님에게 올해 2학년 친구들 참 예쁘지요? 물어봅니다. 선생님들은 그렇다고 맞장구쳐 주지요.
올해는 질문 수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할 때 반가웠지요. 질문이 있으면 여러분과 소통이 되어서 좋고, 선생님의 수업이 좀 더 풍성해집니다. 카톡으로 질문해도 좋다고 했을 때, 진짜로 카톡 질문을 보내온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술을 마시고 있을 때도 질문 카톡이 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반가웠답니다. 선생님이 정성껏 풀어서 보내주면 고맙다는 이모티콘이 날라오지요. 그 이모티콘은 얼마나 싱그러웠던지요.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좌석표에 또박또박 적혀 있는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보며 선생님은 말을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는데, 여러분 미소가 제 마음에 또박또박 새겨집니다. 나이를 먹어서 이름을 외우는 게 쉽지 않지만,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외우기가 쉽지 않지만, 자꾸만 이름을 부르니 그대들이 조금씩 제 가슴에 흘러 들어옵니다.
점심시간 교정 앞에서 배드민턴 치는 친구들,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일은 선생님의 작은 기쁨이랍니다. 그거 아세요? 선생님이 점심시간마다 벤치에 앉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던걸요. 그러니 교정에서 우연히 만나 여러분이 사진을 찍자고 할 때마다, 제 가슴에 환한 필라멘트가 켜지곤 했습니다.
앞으로도 교실 밖 만남을 새롭게 이어가고 싶습니다. 점심시간에 선생님을 자꾸만 만나 드디어 선생님이 여러분 이름을 기억하게 되면, 과자 선물을 사줄게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름을 기억하도록 짠~하고 나타나 이름을 마구마구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이름을 몽땅 외우면 처음에 그랬듯이 초코파이를 사겠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몰래 여러분 교실에 화분을 놓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오히려 제가 행복했습니다. 각 반 이름에 어울리는 시를 골라 선생님의 주석을 다는 일도 기뻤습니다. 그걸 꽃처럼 화사하게 꾸며 코팅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더 좋아하더군요. 선생님이 정작 주고 싶었던 것은 꽃보다 추억이랍니다. 소소한 이벤트를 통해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지요.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니까요. 우리의 추억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랍니다.
이제, 선생님이 고백해야 할 시간입니다. 말하지 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미리 말하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명예퇴직합니다. 눈치챈 친구들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교직 36년 차이고 내년이면 정년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권태를 느끼면 그때 퇴직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영원히 퇴직을 못할 것 같았어요. 시골에 예쁜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주말에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이제는 교육 농사 말고 밭농사를 지으려고요.
여러분은 저의 마지막 학기에 마지막 제자랍니다. 다행이 마지막 제자가 너무 잘해주어서 손뼉 칠 때 떠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남은 시간, 선생님의 인생극장을 통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멋진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합니다. 우리의 추억은 계속됩니다.
2022년 5월 어느날...재식 선생님
마지막 제자들의 편지
이 글은 스승의 날 여러 학생이 보낸 편지들을 편집했습니다. 원본 거의 그대로 모아 순서만 재배치했습니다.
♥ 그동안 수업에 적응을 못하고 문제도 풀려고 하지 않았는데, 계속 신경 써주어 감사해요. 저는 수학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수학을 다시 좋아해 볼 용기가 생겼어요. 저는 ‘수포자’였는데 선생님 수업 들으면서 처음으로 수학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수업 시간에 눈 맞추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저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꼭 선생님처럼 멋지게 수학하는 사람으로 성장할게요. 선생님께서는 늘 저희 말 잘 들어주시고 저희를 위해서 수업하시는 기분을 받을 수 있어 좋았어요.
♥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복도 지나가다 인사드리면 ‘은교 안녕~’ 하시면서 인사를 밝게 받아주시는데, 내심 뿌듯해지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 없는 저에게 자신감을 붙여주셨어요. 수학을 포기한 저한테 희망을 심어주신 분, 자존감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끝까지 올려주신 분, 최재식 선생님이었어요. 민트색 바람막이 입고 걸어가는데, 뒷모습이었는데, 어떻게 아시고 이름을 불러 주셔서 좀 놀랐어요. 항상 저한테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작년에 ‘When we disco’ 춤을 추시는 거 보고 저의 ‘원픽’ 쌤이 되셨어요. 올해도 야외 벤치에서 선생님께서 ‘When we disco’ 추셨던 것 잊지 못할 것에요. 축제 때 춤추시는 모습 꼭 보고 싶어요. 처음에 쌤이 녹번동 BTS라고 하셨을 때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수업하실 때 열정적으로 가르치시고 재미있는 이야기 할 때 너무 웃겼어요.
♥ 선생님을 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수업을 들으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나갔습니다. 선생님과 수업 계속하면서 따듯한 추억 더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슬퍼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남은 기간 더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가지 마세요, 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