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종호의 문어의 꿈] 청소 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김고종호·전북지부 정책실장 | 기사입력 2022/07/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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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의 문어의 꿈] 청소 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중앙도서관 앞에서 집회할때 항의하는 학생은 늘상 있었다
우리 옆에 어떤 노동이 있는지 묻고 노력해야한다
서로 지켜주는 것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김고종호·전북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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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7/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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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앞에서 집회할때 항의하는 학생은 늘상 있었다
우리 옆에 어떤 노동이 있는지 묻고 노력해야한다
서로 지켜주는 것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1. 처음에는 이분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학생회관 한 켠에서 매일 먹고 자다보니 일단 이분들이 적절히 쉴 곳과 씻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생하신다고 귤 한 박스를 사서 드리려고 했는데, 이분들의 공간이 없으므로 귤을 가져다 놓을 공간도 없었다. 동아리방에 두고 들러서 드시라고 하는 수 밖에 없었다.

  

2. 어느날 선배 한 명이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왔는데 남자 주인공의 유쾌함이 나를 연상시켰다고 말해주었다. 무슨 영환데요? ‘빵과 장미’. 호기심이 생겨 영화를 보러 광화문으로 갔다.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한복판에서 일하는 청소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리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하고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빵과 장미' 영화 포스터 

 

이 영화를 보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영화는 외주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인력 감축으로 노동 강도를 높여가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다. 무엇보다 여자 주인공 마야가 자신의 언니 로사에게 따지는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펑펑 쏟지 않을 수 없었다.

  

3.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안에는 많은 ‘마야’가 있었다.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 주차관리 노동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 가슴팍에는 서로 다른 회사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오며 가며 물어봤다. 노동조합은 따로 없다고 했다. 힘든 점은 없으시냐는 질문에, 학생이 뭐 그런 걸 묻냐며 얼버무리시다가 “퇴직자가 있는데 왜 새로 안 뽑는지 모르겠어. 일이 더 힘들어졌지.” 이런 말씀을 하곤 한숨을 쉬셨다.

  

나는 학교 외부의 수많은 노동단체들과 연대주점을 하고 연대파업을 했지만, 정작 학교 내부의 노동자들과는 끝내 연대하지 못했다. 근로환경실태 조사라도 해보자고 학내 여러 단위에 제안했지만, 이분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럴때면 ‘내가 뭐 <빵과 장미>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되려고 그러는 건가, 선민의식은 경계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단념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학생회관의 청소·경비노동자 분들에게 편지 한 줄 써놓고 나는 졸업을 했다.

 “지난 7년 동안 돌봐주셔서 잘 머물다가 무사히 졸업합니다. 감사합니다.”

  

4. 그로부터 불과 2년 뒤 내가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이 청소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당노동행위를 인식했고, 몰래 만나 조직을 해서 드디어 노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너무 기뻤다. 내가 하고 싶었으나 못한 일을 누군가가 대신 해주었을 때의 쾌감이란! 학생들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대위’를 만들어 이분들과 연대했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최근 뉴스에 이분들 이야기가 나오면서 깨달았다. 노조와 공대위가 결성되고도 벌써 14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대학생인 것만 같다고요)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매일 한 시간씩 진행한 집회에 대해 일부 학생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이분들을 고소했다. 업무방해 혐의란다. “네. 열람실에 책 펴놓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니 중요한 업무지요.” 미래에 취직 안 될 것도 걱정되는지 손해배상소송도 냈다. 반동의 흐름 덕분에 언론에 노출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분들의 비참한 근무환경이 다시 조명되었다. 14년 동안, 도대체 뭐가 바뀐 걸까.

 

“2011년 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휴게실도 함께 바뀌었는데 그 무렵 학교가 밥상도 하나 사준 일이 있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대우받는 느낌을 받았다.” 

한 언론에 보도된 중앙도서관 청소노동자 이경자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괜스레 눈물이 났다. 우리에겐 빵 뿐만 아니라 장미가 필요하다.

  

5. 중앙도서관 앞에서 집회할 때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학생들은 늘상 있었다. 왜 하필이면 도서관 앞에서 하냐고 힐난하는 학생에게, 그럼 어디서 하냐고, 집회할 수 있는 장소가 여기밖에 없지 않냐고 되묻던 게 내 일상이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 엄혹한 7~80년대에도 그렇게 항의하는 학생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런 학생들과 싸우기 위해 집회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은 엄청난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고, 수익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으며, 교수와 교직원들도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반면 청소·경비·시설 노동자 인건비는 전체 인건비의 십분의 일에 불과하고, 인상 요구분은 전체 재정의 천분의 일 수준에 불과하다. 학생을 비난할 게 아니라, 원청인 학교를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이분들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6. 우리 교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분들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사실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노조를 만들고 집회를 하며 가시화할 때, 일부는 심리적 불편함을 겪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직고용이나 무기직 같은 고용안정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능력주의의 첨병인 교사답게 “어딜 시험도 보지 않고 발을 디밀어”하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삶 자체가 늘상 시험이다. 가끔 다른 학교에 가서 노동인권교육을 할 때면 김제동이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이야기한 영상을 틀어준다. 프랑스의 어느 학교에 갔는데, 건물 공사장 외벽에 노동자의 사진과 이름을 붙여놓고, “이분들의 소중한 노동으로 우리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써 놓았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가 매일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이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노동자들은 자긍심을 가지고 더 튼튼한 건물을 짓는다.

  

우리에게는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옆에 어떤 노동이 있는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행복한 노동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는지 묻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물론 나도 너무 힘들다. 그럴수록 나만 보면 안 된다. 내가 다른 노동에게 물으면, 다른 노동도 나에게 물어올 것이다. 학교 안의 모든 노동이 소중하다. 어느 한 노동자라도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면 학교가 엉망이 된다. 우리네 사회도 그렇다. 그렇다면 서로 지켜주는 것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7. 영화 <빵과 장미>는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청소원들에게 공정한 대우를(Justice for Janitors)”이라는 구호를 걸었던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은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LA 위클리》는 청소원들의 승리를 가리켜 “LA를 다시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계급 세력 균형이 다시 형성되었고, 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계급으로서 자신의 힘과 운명에 대해 새로운 자신감을 획득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승리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나 역시 이런 승리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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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쥬 2022/07/20 [08:38] 수정 | 삭제
  • 좋은 글 공감합니다!
  • 빵과장미 2022/07/15 [19:13] 수정 | 삭제
  • 내가 다른 노동에게 물으면 다른 노동이 나에게 물어올 것이다! 두둥! 연세대 관련 글 중에 가장 사려깊은 글이에요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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