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탄생 '막전막후'

이주영 ·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 기사입력 2022/04/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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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탄생 '막전막후'
천도교소년회, 1922년 5월 1일 최초로 '어린이날'을 선포
이주영 ·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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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4/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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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소년회, 1922년 5월 1일 최초로 '어린이날'을 선포

 

▲ 어린이날이 제정될 당시, '5월1일'이었음을 보여 주는 깃발 자료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운동은 우리 겨레 최초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시작하는 봉기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3.1혁명으로 불렀다. 3.1혁명으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청년운동, 여성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운동이 일어났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이 운동이다. 

 

3.1혁명에는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대거 참여했고, 만세운동에 나섰던 소년들이 스스로 소년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1921년에 천도교소년회가 결성됐고, 그 1주년을 기념하는 1922년 5월 1일 최초로 '어린이날'을 선포했다.

 

방정환은 1923년 3월 동경유학생 중심으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색동회를 조직하고, 4월에는 전국 소년단체들을 모아서 조선 소년운동협회를 결성했다. 조선 소년운동협회 이름으로 5월 1일 어린이날을 주관하면서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담은 유인물을 종로 거리를 행진하면서 배포했다. 

 

당시 유인물 제목은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이지만 그 내용은 최초의 '어린이 해방 선언'이었다.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절을 행하게 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1922년부터 일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날 시가행진을 하면서 어린이 만세를 불렀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나가는 걸 막아서 1928년부터는 첫 공휴일로 하기로 했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1937년 일제가 소년회를 강제 해산시켜서 어린이날 기념식도 못 하게 되었다. 해방되고 1946년 색동회가 중심이 되어 어린이날을 다시 시작하면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91년 5월 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위원회에서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라는 이름으로 한양대학교 대운동장에서 한 대학생회와 시민단체들과 함께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하였다. 지역사회 단체들이 함께하는 어린이날이 한때 시도지부나 지회 사업으로까지 확산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어린이날이 하루 놀러 다니면서 외식이나 하고 선물이나 주는 날이 아니라 어른들이 어린이 문제를 생각하고, 어린이 권리를 되새겨보는 날이 되기 바란다. 나아가 참된 어린이 해방 세상이 되어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 어린이날 어른들의 실행 다짐

 

-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 가며 기르십시오.

-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보십시오.

- 어린이들에게 잡지를 자주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각각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1923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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