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영 89년 해직교사 백서편찬위원장

김상정 | 기사입력 2021/12/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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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주영 89년 해직교사 백서편찬위원장
“89년의 기록은 후대의 용기가 될 것”
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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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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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의 기록은 후대의 용기가 될 것”

살아남았으니까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가 해직된 교사들의 기록을 담은 백서 편찬일을 하고 있는 이주영 퇴직교사. 89년 해직교사였던 그는 2010년 말기암 판정을 받고 2011년 교단을 떠났다투병생활 동안 늘 죽음은 곁에 있었고 그렇게 3년을 지냈다그야말로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을 때 먼저 간 이들 생각이 많이 났다.

 

▲ 이주영 89년 해직교사 백서편찬위원장  

 

회복 후, 2015년 지회나 분회연수를 많이 다녔다마침 윤영규 전교조 초대 위원장 기일 전날이기도 해서 젊은 조합원들에게 윤영규 선생님 추모도 하고 광주 망월동 묘역도 함께 가자고 말했다한 조합원이 윤영규샘이 누구냐고 물어왔다그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89년 해직교사들 중 13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던 상황. “윤영규 샘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알까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살아남았으니까 먼저 간 동지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졌다해직교사들 중 먼저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삶의 행적을 찾아다녔다그들의 주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그들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하나같이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나를 만나 참교육 교육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해직이 됐고 더 적극적으로 싸우다가 결국 병을 얻어 돌아가셨고 나는 지금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죄책감이 되는 시간들을 남아 있는 자들이 견뎌내고 있었다.

 

89년 당시 충남의 한 교사는 조합원이라고 이름을 밝히고 옳은 일 하는데 뭐가 잘못이냐며 앞장서 싸우다 보니 가는 데마다 저격을 당했다운동장에서 남자교사한테 배를 걷어차여 장파열이 됐고 그 후 병이 찾아왔다부산의 한 교사는 경찰서에서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어 지문채취에 저항했다감옥에서 오랜 단식으로 격렬히 저항하고 투쟁했던 교사들에게 일찍이 찾아 온 투병생활그렇게 89년 전교조 결성을 위해 투쟁했던 교사들은 30, 40, 50대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먼저 간 동지들의 삶을 풀어놓는 시간은 매번 절로 눈물이 나는 일이다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북받치는 순간과 만난다인터뷰 때도 그랬다그래서 잠시 눈을 들어 큰 숨을 몰아쉬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이주영 교사는 그들의 행적을 찾아 기록하는 일이 내내 마음이 아팠다더 할 수 없었고 다른 이들이 이어갈 작업이기도 했다그렇게 12명의 열사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묶은 교육열전이 전교조 결성 30주년에 세상에 나왔다그는 전교조에 해직교사 합동추모제를 열자고 제안했다그해 5월 28일 전교조 30주년 결성일에는 전교조 역사상 처음으로 전교조 해직교사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지금까지 1600여 명의 해직교사 중 16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여서 살아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하는 일이 시급했다이것이 그가 올해 89년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된 교사들의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담긴 백서 작업을 시작한 연유다해직교사인 윤병선·양운신·이주영 교사가 매일매일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 나와 백서 만드는 일에 열중이다.

  

과거사를 진상규명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3.1만세운동도 통사와 수천 쪽에 달하는 개인사 기록이 있고, 518광주항쟁도 부마항쟁도 그리고 4.16참사도 개인사 기록을 상세히 남기고 있다개인사를 남기지 않으면뼈다귀만 있는 역사는 시간이 되면 사라진다.”

 

지금껏 세 번에 걸쳐 전교조 역사를 엮는 통사가 나왔다통사는 개념이고 뼈다귀만 추린 거다피와 살이 붙어야 했다개개인이 왜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압을 받았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개인사가 절절히 필요했다이주영 교사는 그래야 역사에 남아 소설로도영화로연극으로도 89년 사건이 기록될 수 있고 조명받을 수 있다 생각했다.

  

지금 해서 뭐하는데이미 잊었는데조합원들도 기억 안하는데도저히 기억이 안나는데

 

그가 1989년 개인사를 쓰자고 연락했을 때 해직교사들의 반응이었다그들은 아픈 기억을 삭제하고 살아가고 있었다처음 100편을 모으기도 힘들 거라 예상했던 것이 어느 새 300편을 넘어섰다이것을 엮어 개인사백서를 만들고 해직교사 1600여 명의 약력이 담긴 인명편을 따로 만들고 있다개인사와 인명편 두 권의 백서는 내년 5월 10일 교육민주화 선언일에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지만 해직되지 않은 교사들 또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그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이야기도 어떤 의미와 역사가 있었는지 실증적으로 빍히고 기록하는 것이다. 89년에는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록은 교육과 국가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원상회복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래야만 그 정신을 후세대가 이어간다촌지를 거부했고 부조리에 참여하지 않았던 교사들의 89년 전교조 결성이 정의였다고 역사에 자리매김되어야 그 정신이 살아남을 수 있고 부당한 탄압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줄 수 있다.”

 

이주영 1989년 해직교사 백서편찬위원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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