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서재이야기]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책은 친구요 여행이다

이민수·서울삼정중 | 기사입력 2021/12/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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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재이야기]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책은 친구요 여행이다
이민수·서울삼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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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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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정중학교 도서관 ©이민수 선생님 제공

  

 교사 독서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이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안 끝난다. 마음은 급하고 일은 꼬이고, 겨우 겨우 수습을 하고 오늘의 모임 책 <편의점 인간>을 들고 뛰어간다. 교실을 빼꼼히 열고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바탕 폭풍이 쓸고 간 느낌. 둘러앉은 얼굴에 흥분과  착잡함이 묻어있다. 모두들 말이 없다. 나만 빼 놓고, 무슨 얘기를 한 거지? 궁금해서 물어보려는 찰라, 나에게 먼저 질문이 들어온다. 언제나 일등으로 책을 읽어오는 한문샘이다. 

 

 "우리 지금까지 열심히 다 말했어요. 근데 민수샘은 이 책을 왜 추천했어요?"

 "아, 저도 어떤 작가가 추천해서 알게 된 책인데요. 내용이 재밌게 술술 잘 넘어가고, 분량도 부담 없고, 무엇보다도 새롭더라고요. 샘들은 이 책 별로였나요?"

 "아니오, 재밌게는 읽었는데 의견이 다 달라서요. 교장샘이랑 Y샘이 가장 잘 공감하며 읽으셨고, 저랑 S샘은 읽는 내내 영 불편하고, 작가가 대체 뭘 말하려는 건가 싶어요"

 "아, 그럼 잘 된 거네요. 저는 그동안 우리가 모임에서 읽은 책들이 주제가 딱 떨어지게 나오고, 결론이 하나로 모아졌던 것 같아서, 이번 책은 좀 다양한 생각이 나오는 책을 읽고 싶었거든요."

 

 그렇다.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취직도, 연애도 관심 없이 편의점 진열대 물건들과 물아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주인공이 신기하기만 했다.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성실하다고 해야 하나? 불행하다고 해야 하나?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봤던 소설 속 인물들과는 확실히 다른데, 딱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작가도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단다. 작가와 주인공이 100프로 일치하진 않겠지만, <편의점 인간>은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알리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일본만이 아닌, 지금 우리 사회의 이야기다. 3포 세대에서 5포, 7포에 이어 결국 N포 세대가 된 청년들. 결혼, 연애, 출산에 이어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줄줄이 포기하는 이들이 바로 내 자식이요, 제자들이다. 

 

 우리 세대는 가난했어도 꿈이 있었다. 부모가 못 배웠지만 통제하진 않았다. 학원이 없었기에 친구들과 실컷 놀 수 있었고, 공부를 한 만큼 성적이 나오고, 대학을 가서 방황을 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휴대폰만 잡고 뒹굴거리는 모습이 한심하다고, 속을 모르겠다며 부모들은 답답해 하지만, 실은 속을 알아도 딱히 답이 없다. 기승전공부하란 말에 아이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진다. 도전 정신이 없다지만, 공부 말고 다른 도전으로 무엇이 가능한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입시와 학벌사회의 벽이 공고하기만 하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앞으로 이 사회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게 될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책 <편의점 인간>. 교장선생님은 이미 10년 전에 이러한 변화를 체감했다고 하신다. 학급에서 소통이 불가능한 한 아이를 만났는데 쉽지 않았다고, 승자 중심의 사회에서 도태되고 배제되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라고. 신규 2년차 Y샘은 친구들한테 책 이야기를 하니 너무나 공감이 된다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고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50대 한문샘은 퇴직 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생각을 했는데, 이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냐며 우울해하고, 40대 역사샘은 이런 젊은이들이, 분명 낯선 존재들이긴 한데 과연 사회적 약자나 소외자와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의 방식이나 태도의 차이가 아닐까 질문을 던졌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시혜적인 차원으로 접근하기는 조심스럽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로서 책임은 통감하지만, 내 삶의 잣대로만 타인을 평가했다간 나 또한 소통 불가, 라떼를 읊어대는 꼰대가 될까 두렵다. 

 

 책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저마다 달랐지만, 소설 속 이야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현주소임에 모두 동의했다. "아니요, 몰라요, 상관 없어요" 익숙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왜 소설 속 주인공만 걱정했을까? 꿈도 야망도 없다고 타박했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시대의 징후를 온몸으로 알아챘기에, 허황된 꿈이나 무모한 도전보다, 지금 여기에 안주함을 선택한 게 아닐까? 튕기듯 거부했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버티고 살아내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었을까? 

 

 혼자 읽을 때는 이해가 안 되던 책이, 함께 나누면서 조금씩 선명해진다. 지난달에 읽은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읽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 이어 오늘 <편의점 인간>으로 불행의 3종 셋트가 막을 내린 느낌이다. 더 이상은 불행하지 말자고, 병든 사회의 폐부를 들춰낸 586세대 지식인의 일침에 젊은 두 작가가 응답한 셈이다. 대기업을 그만둬도 아직 불행하지 않다고, 편의점 인간으로 살아도 불행하진 않으니, 그리 이상하게 보지 말라고.

 

 내 생각과 같은 책을 만나면 반갑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는 즐겁다. 하지만 때론 내 생각에 균열을 내주는 불편한 책도 읽어야 한다. 책이 좋아서 국어교사가 된 나는 책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아이들과 독서동아리를 할 때도 재밌지만, 선생님들과 책 모임을 할 때면 더욱 흥미진진하다. 올해로 7년째 교사독서동아리가 이어진다. 몇 년 전 독서동아리 선생님들과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고 제주 오름을 다녀왔다. 다문화, 이주 여성과 아이들 삶을 고민하는 <후아유>를 읽고 이항규 선생님을 초대했다. 2년째 여행을 못가는 아쉬움을 <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작가님을 만나 달랠 예정이다. 

 

 내게 책은 친구요, 여행이다. 일상이고 휴식이다. 딱딱한 책, 어려운 책은 피해 가고 소설과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책이 좋다. 교육 관련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학교 교사독서동아리는 잘 돌아간다. 사람 사는 이야기, 그 안에 교육의 방향도 보인다. 내가 추천하는 책을 재밌게 읽어주는 선생님, 아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이민수 - 서울 삼정중학교에서 아이들과 독서 수업을 합니다.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할 때 제일 신이 납니다. 책도 읽고 아이들의 마음도 잘 읽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랜선 독서수업>(서해문집), <그림책에서 찾은 책 읽기의 즐거움(1,2)>(휴머니스트)를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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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냄새 21/12/17 [17:06] 수정 삭제  
  글을 읽으며 선생님이 신날 때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샘들과 독서동아리하는 얘기 재밌게 읽었어요. 편의점 인간, 읽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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