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이야기] 독서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정용주·서울 탑산초 | 기사입력 2021/10/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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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이야기] 독서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책 읽기는 단순한 지식이나 지혜가 아닌 비평적 반성이며
종착역을 확인하고 차표를 사는
정신머리를 보장하는 삶의 행위이다.
정용주·서울 탑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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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0/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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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단순한 지식이나 지혜가 아닌 비평적 반성이며
종착역을 확인하고 차표를 사는
정신머리를 보장하는 삶의 행위이다.

독서는 삶의 변경의 초소이며 무지와 독단에 대한 십자군

나에게 있어서 독서는 삶 자체이다. 나에게 책읽기는 세상 속에서 혼자 있는 외로움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며, 외로움의 대안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와 아주 가까워지는 동시에 아주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 싶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책을 통해 나는 다양한 틈이나 모순을 발견하며, 해결되지 않은 질문과 슬픔으로 가득 찬 나의 과거를 풀어헤친다. 때론 현실에서 드러낼 수 없는 나의 폭력성을 소설 속 인물에 투사하여 해결한다. 책읽기는 단순한 지식이나 지혜가 아닌 비평적 반성이며 단순히 삶을 버무려 나가는 기술이 아니라 이의 종착역을 확인하고 차표를 사는 정신머리를 보장하는 삶의 행위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 정용주 교사의 서재  

 

책과 함께 지나온 몇 개의 초소

나는 독서란 그 본질에 있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행의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단번에 갈 수는 없다. 굽이굽이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길에 한 시기를 완성했음을 표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변경의 초소와 같은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이행의 순간에 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날카로운 눈으로 지나온 과거와 현재를 볼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책이 있었다. 나는 책과 함께 살아가면서 몇 번의 초소를 지났다.

 

첫 번째 초소는 중학교 2학년 이전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시를 좋아하는 누나 덕에 서정시를 접했다. 김초혜의 시집 <사랑굿>, 워즈워드의 시집과 같은 서정적인 시를 좋아했다. 감수성이 예민하게 발달하던 시기에 읽던 책의 대부분은 시집이었다. 김초혜의 사랑굿에 나오는 시는 아직도 기억의 서랍에서 떠나질 않는다.

 

시간은/나를 괴롭히고/그 괴로움은/견뎌야만/벗어날 수 있는 것/노곤한 시간은 쌓여/신념을 잃게 하고/격정에 차게 해/바람만 불게하고/나의 괴로움/우울한 떠돌이 별 하나/되 만들어/나를 가둔다

 

김초혜의 시를 포함해 서정시들은 하나같이 내 감수성의 촉수가 되었고끊임없이 내 삶에 생명의 기름을 부어 연소할 수 있게 해주었다덕분에 내 심장이 불꽃처럼 타올랐다내가 가지고 있던 워즈워드의 시집은 하얀색 두꺼운 표지로 되어 있었는데 페이지마다 꽃잎을 따서 넣기도 하고예쁜 껌 종이를 펴서 넣기도 했다.

 

서정시에서 리얼리즘으로 길을 바꾼 초소는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사회 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이 CA시간에 보여준 광주 사진은 중학교 2학년이던 나에게 매우 충격을 주었다. 사진을 본 후 나는 광주와 세상에 대해 물었고, 독서토론 모임에 참석했다. 내 감수성의 촉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초소를 지나며 '내가 알아왔던 것들이 과연 완전무결한 진리일까?' 하는 질문과 함께 책을 읽었다.

 

늘상 일어나는 일이라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피비린내 나는 혼란의 시대제도화된 무질서계획적인 횡포와 인간성을 잃은 인간의 시대에는 아무 것도 자연스럽다고 일컬어져서는 안 돼요아무 것도 변화 불가능한 것으로 통해서는 안 되니까요.“

 

브레히트의 <예외와 관습>에 나오는 위의 내용은 나에게 모든 것을 의심하고 관찰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읽으며,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보았다. 이때부터 나의 독서는 그 부조리함에 대해 알고 싶어서 행한 일종의 반항이었다. 나는 세상은 부조리함, 부당함,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마치 없는 것처럼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음에 분노했고, 책 속에서 그 부조리를 자신의 문제로 사유한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러한 독서 습관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삶의 맥락으로부터 유리되어 책으로 세상을 보고 책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전교조와 함께 고등학생 운동을 시작했고, 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책이 도그마가 되어, 하나의 교조가 되어 책에 있는 대로 실천하려 했던 것 같다.

 

나는 갇힌 텍스트 속에서 폐쇄적인 독서를 계속했다. 현실에서 답을 찾는 대신, 이미 정해진 답을 현장에 구현하려 했다. 특히 독서는 분명 읽는 자에게 예찬이나 비난의 감정을 수반하는 어느 정도 중독적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텍스트를 맹신하여 극히 찬양하거나 내가 읽은 책과 다른 주장을 하는 저자를 비난했던 것 같다. 이러한 반성과 함께 나는 프로이트와 보들레르, 니체, 기형도를 만났다. 그러면서 내면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관심을 접고 자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밤에도 욕망이 멈추지 않아 꿈이라는 기제를 통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나를 부둥켜 앉고 울었고 나를 위로해 주려고 애썼다.

 

해석된 책에서 해석되어야 할 책으로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늦게 교대에 입학했다. 교대에 입학해 가장 먼저 찾은 곳도 도서관이었다. 임시 출입증을 발급 받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누군가 질문하면 소개하는 일화가 있다. 동기이지만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과 건설현장에 일을 하러 가서도 점심시간에 먼지 나는 현장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며칠 일한 돈으로 책을 사서 방학 내내 읽었다.

 

나는 교사가 되었다. 지금 교사다. 나는 월급의 일정액을 고정적으로 책을 사는 데 지출한다. 그런데 언제나 과다 지출이다. 책을 살 때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가지고 있으면 폼이 날까봐 사고, 어떤 책은 표지가 예뻐서 사고, 분야별 신간을 업데이트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속된 말로 나에게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루이비통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원래 좁은 집에 책을 놓을 곳이 없다. 2천여 권은 교실에 쌓아 두고 있고, 지금도 점점 쌓여 간다.

 

교사는 수업하는 것이 직업이다.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면서 내가 했던 수업의 좌절과 걱정을 주제로 삼아부단히 교사로서 나의 삶을 재구성함과 동시해수업의 변화를 꾀한다. 그 중심에 책이 있다. 책은 교사인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점검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의 책 읽기는 책과 대화하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책은 엄청난 해석적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는 다의적 텍스트이기 때문에 저자가 쓴 해석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책은 좋은 수업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유는 수업에 대한 교사의 사유가 명확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으로 자기의 전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교사는 수업의 실천만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교사는 수업에 대해 깊이 있는 해석적 이해로서 독서를 필요로 한다. 특히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을 하는 나에게 교과를 가로지르는 교육과정 설계를 위해 책 읽기는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발령 이후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진행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학부모의 고발부터, 교장, 교감의 검열, 교육청의 감사까지.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나는 책읽기를 통해 내가 쌓아올린 사변을 파상(破像)시키고 수업을 새롭게 상상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강해졌다. 특히 책 읽기를 통해 타자적 시점을 도입한 것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수업은 당사자적 시점을 구현하는 과정이라면 책읽기는 교사가 자신의 수업 실행에 대한 일종의 반성행위로서 항상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과정이다. 교사는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을 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수업에 대한 일종의 불편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수업 행위에 타자의 겹눈을 도입하는 것은 수업장학, 수업컨설팅, 수업평가의 수업관찰 행위에서 제3자가 교사와 학생의 수업행위를 관찰하는 것과 다르다. 책읽기라는 타자의 시선은 당사자의 시선과 분리되지 않고 겹쳐지면서 수업의 의미를 재확인하게 된다.

 

수업의 과정이란 학습자라는 타자와의 끊임없는 교환의 과정이기 때문에 책읽기는 일상적 시야가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을 보는 눈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읽기를 통해 교육과정을 넘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교사로서 책 읽기는 수업과 교육과정 그리고 교육을 어떻게 기억할지를 끊임없이 겨루는 논쟁의 장으로 살아 움직인다.

 

“책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나는 다시 리얼리즘이라는 초소로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낭만적 리얼리즘이라는 초소다. 그 초소에서 만난 사람은 김수영이었다. 김수영은 나에게 현재 눈앞의 상황에 직관적으로 얻어지는 인상에 지배되지 말고 스스로 그 인상을 지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기억의 서랍 속에서 떠나지 못하게 계속해서 소환하는 글이 '시여, 내게 침을 뱉어라''어느 날 고궁을 걸어 나오며'이다. 김수영이라는 초소를 지난 책읽기는 나를 이해하는 여정이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온몸으로 책을 읽는 과정이라고 김수영은 나에게 이야기 했다. 그래서 책읽기는 나를 바로 이해하는 국면부터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잘 다듬어진 오솔길을 벗어나는 항해를 즐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바꾸는 상상을 했던 혁명가, 그 시대의 불의와 싸우다 넘어지고, 쓰러진 사람을 만났다. 스스로 세상과 불화하며 시대의 이방인이 된 시인과 소설가를 만났고, 그 속에서 나는 우울했다. 내가 만나온 책 속의 친구들의 생각을 하나하나 모아 하얀 종이위에 그림을 그리면 과정은 그로테스크하지만 마지막에 완성되는 그림은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교사이며 교육비평가 그리고 현장에서 교육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자신이 머무는 장소 혹은 지반의 정당성을 묻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존재방식,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며 적극적으로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탐색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책읽기는 수업하는 교사, 교육을 고민하는 연구자로서 자기형성을 위한 의무이다.

 

 사유의 근육을 키우는 데 힘이 되는 책

 <앤 드루얀 코스모스> (앤 드루얀, 사이언스북스)

 <은둔기계> (김홍중, 문학동네)

 <모차르트 호모사피엔스>(김진호, 갈무리)

 

 정용주. 서재의 책을 모아 공유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서울 초등 교사

 쓴 책: <청소년 인권이야기>(리젬), <교육학의 가장자리>(교육공동체 벗),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교육공동체 벗, 공저), <불온교사 양성과정 1,2>(교육공동체 벗, 공저), <교육농 이야기>(교육공동체 벗, 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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