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성 권력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반면 억압과 차별은 세계 모든 여성에게 전 생애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당신도 이 세계를 균열 내는 데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어디에선가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나 손 내밀어 용기를 줄테니.
작년 어느 날, 차별을 주제로 한 수업 시간에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런데 남자는 군대 가잖아요. 차별 아니에요?'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은 내일 당장 입대라도 할 듯 억울한 투로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군대에 가라고 떠민 것이 아니며, 남성들을 징병하는 주체는 국가다.'라고 말하며 수업을 마쳤다. 이후 나는 며칠 동안 학생들의 의문을 함께 풀기 위해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친구나 교사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응하는 대화법 연습을 하고, 군 가산점 제도 폐지를 위한 헌법 소원에 장애 남성이 동참했다는 사실을 알아보며 수업을 이어갔다. 이 글에서는 학생들과 나누지 못한 얘기를 마저 해보려 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올해 5년 만에 수석 남생도를 배출했을 정도로 그동안 여생도들의 성적이 우수했다고 한다. 심지어 2017년엔 여생도들이 졸업 성적 1~3위를 휩쓸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2년 동안 여성들은 커리어를 쌓았을 테니 남성들보다 높은 직위에서 높은 임금을 받으며 승진도 더 빨리 하는 게 당연하겠지? 정계를 살펴보자. 대한민국 국회는 여전히 남성이 약 80%를 구성하고 있다. 앗, 그럼 경제계를 살펴보자. 국내 상장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여성의 비중은 여전히 3%대에 머물고 있으며 여성 임원의 비율도 4%대에 그친다.(2019년 기준) 교육계를 살펴보자. 서울에 근무하는 초등 교사 중 '여'교사가 너무 많다는 제목의 뉴스기사에 '남교사 할당제'를 도입하라는 댓글이 달린다. 문화계는? 요즘엔 좀 나아졌다지만 여성 배우들은 여전히 수입이 적을 뿐만 아니라 주어진 자리가 적고 역할도 한정적이다.
미국의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베이더 긴즈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에서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나 있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9명 전원'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전원이 남성일 때는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남성 권력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남성들이 취업시장에서 받는 공기 같은 혜택들, 가정에서 남성이 가지는 가부장적 권력, 유리천장 아래 갇힌 여성 동료보다 훨씬 유리한 승진 등 모든 것이 남성들에게는 매일 삼시 세끼 먹는 쌀밥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반면 억압과 차별은 전 세계의 모든 여성에게 전 생애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군 입대'가 성차별이라 느껴질 정도로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 왜 여성들이 받는 고통은 모른 척 눈 감는 걸까? 혹시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남근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이 세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이 세계를 균열 내는 데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어디에선가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나 손 내밀어 용기를 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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